법 테두리로 들어오는 가상자산 시장…신뢰 회복의 조건들

한겨레 2023. 1. 12. 09: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가상자산]국회 법안들, 불공정거래 규제에 초점
‘이용자 자산보호’ 시장 안정화 효과
금융당국 “글로벌 규제 맞춰 2차 보완”
“유동성 잔치 끝난 업계 홀로 서려면
서비스와 지표로 존재 의미 입증해야\"

지난해 대형 사고들로 얼룩진 가상자산(암호화폐) 시장이 올해 사실상 '규제 원년'을 맞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외부 규제에 앞서 업계 내부에서 지속가능한 가치를 입증하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11일 국회에는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과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률안을 포함해 10개의 가상자산 기본법이 병합심사를 앞두고 있다. 이들 법안은 오는 16일 정무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여야가 발의한 가상자산법안들은 규제 측면에서 대부분 비슷하다. 백혜련·윤창현·의원의 법안도 불공정거래 규제와 이용자 보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난해 5월 테라-루나 가격 폭락과 11월 가상자산거래소 에프티엑스(FTX) 파산보호 신청으로 투자자들이 큰 피해를 입은 만큼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내부자 거래, 시세조종, 부정거래 등 불공정 행위를 규제하겠다는 것이다. 가상자산 거래소를 주된 대상으로 삼아 자본시장법 수준의 규제와 처벌 조항을 옮겨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법안에 공시 의무에 대한 규정이 없어 미공개 정보 이용 행위를 처벌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론도 나온다.

이용자 자산 보호 조항은 시장을 안정시키는 효과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5대 가상자산거래소들은 이미 고객과 거래소 고유 자산을 분리 보관하고 있지만 이를 의무화하면 신뢰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 2단계 입법은 다양한 생태계 포괄 필요

기본적인 법안 추진을 끝낸 유럽연합(EU)이나 일본, 영국 등 주요국에 견줘 상대적으로 입법 속도가 느리다보니 시장 전반의 규율체계 정립과 산업 육성은 뒤로 미뤘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가상자산 산업 육성도 중요하지만 지금 당장은 시장의 존립과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는 불공정 행위 규제가 시급해 단계적 입법이 불가피하다”고 짚었다.

금융당국도 투자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규제를 우선 도입하고 나머지는 보완해 나간다는 입장이다. 이동엽 금융위원회 금융혁신과장은 지난달 국회 정책토론회에서 “투자자 보호 중심의 규제 입법을 먼저 마련하고, 나머지 시장 질서와 관련된 규제는 글로벌 정합성을 갖춰 2단계에서 반영하는 게 현 상황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가상자산은 국가 간 거래가 자유로운 ‘초국경성’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국제기구와 주요 국가의 규제 논의가 아직 진행되는 중임을 고려해 가상자산기본법의 완결성을 채워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향후 기본법은 거래소 외에도 다양한 가상자산 생태계를 고려해 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한진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탈중앙화한 금융(디파이)과 거래소(덱스) 등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를 수용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탈중앙화 서비스는 중앙에서 중개를 하는 금융기관이 없기 때문에 기존의 규제 틀이 맞지 않게 된다. 이한진 변호사는 “입법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므로 현행법 아래서 가능한 과제부터 적극 발굴해 시행해야 한다”며 혁신금융서비스 등 제도의 유연한 운영을 통해 가상자산 생태계의 경쟁과 혁신을 유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법안이 규제에만 치우쳐 국내 가상자산 산업의 경쟁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정엽 서울회생법원 부장판사(블록체인법학회장)는 “투자자 보호가 가장 잘 되는 거래소에 자금이 몰리는 건 당연하다”면서도 “다만 그런 거래소가 상장이 가장 어렵거나 다양한 토큰을 교환할 수 없는 곳이 돼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가상자산을 전적으로 금융 규제의 영역 안에만 가두는 게 타당한가라는 의문도 제기된다. 박선영 동국대 교수는 “자율규제의 영역도 어느 정도 남겨두는 게 생태계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율규제 기구인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 닥사(DAXA)에 대한 근거 조항은 마련돼 있지 않다. 이동엽 금융위 과장은 “최근 이슈가 된 가상자산 거래소 상장과 상장폐지 기준은 자본시장의 한국거래소처럼 자율규제 영역에 포함되는 측면이 있어 관련 규정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블록체인 혁신성으로 자율규제 가능

가상자산 시장은 그동안 프로젝트나 거래소에 대한 명성과 규모를 투자의 가늠자로 삼아왔다. 하지만 유동성이 꺼지면서 업계는 이제 투명한 운영과 제3자에 의한 관리를 통해 ‘신뢰 지표’를 만들어 홀로서기에 나서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이정엽 부장판사는 “중앙화 거래소가 고객의 자산을 맡아두는 역할을 하려면 투명한 거래 장부와 제3자의 감시·감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준우 크로스앵글(쟁글) 대표는 “공통의 규칙을 만들어 간다는 차원에서 업계 내부적으로는 프로젝트의 존립과 지속성에 대한 가치를 증명해내기 위한 노력이 성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권고했다.

업계는 결제, 대체불가능토큰(NFT), 게임, 엔터테인먼트, 소셜네트워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프로젝트를 내놨지만 이용자들이 실제로 효용을 체감할만한 사례는 부족했다는 평가가 많다. 김준우 대표는 “지난 몇 년간 끊임없이 제기된 근본적인 질문인 ‘그래서 크립토(암호화폐)가 왜 필요한가?’에 대한 답을 서비스로 증명하고 지표로 보여주는 과정에서 신뢰가 쌓이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효율적인 시장 감시가 가능한 블록체인 상의 탈중앙화 네트워크 등 가상자산의 혁신성을 활용하라는 주문도 이어진다. 이정엽 부장판사는 “전통적인 회계감사나 관리감독시스템과는 달리 가상자산은 고객이 실시간으로 회계를 감독할 수 있는 혁신성을 품고 있다”며 “믿을만한 신탁회사와 자산관리회사를 통해 프로젝트 핵심 관계자들의 지갑과 잠금(락업) 물량, 거래소 유입물량 등에 대한 정보 전달 시스템을 곧 시장에 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김제이 코인데스크 코리아 기자 jey@coindeskkorea.com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