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유지 약속은 포퓰리스트 정당이란 증거 [핫이슈]
영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찰스 굿하트는 “연금을 유지하거나 늘린다는 약속이 포퓰리스트 정당들의 선언 중 중요한 부분이었음을 주목하라”고 했다. 2018년 이탈리아 총선을 예로 들어 그의 책 ‘인구 대역전’에서 한 말이다. 그렇다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최소한 포퓰리스트가 아니라는 것은 입증된 셈이다. 그는 연금 수령을 시작하는 최소 나이를 62세에서 64세로 늦추겠다고 했다.
포퓰리스트 정당은 표를 얻기 위해 돈을 퍼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대규모 재정 적자가 뻔히 보여도 그렇게 한다. 그 적자를 미래 세대가 짊어질 게 뻔해도 상관하지 않는다. 그들만이 민중을 대변하기에, 그들만이 집권할 자격이 있기에 ‘표’가 최우선일 뿐이다. 다른 모든 것들은 부차적인 게 된다. 그러니 기존 연금이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해도 연금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심지어는 늘릴 수 있다고 약속한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선거 캠프에 참여한 한 인사의 말이 기억이 난다. 그에게 “지금 이대로 가면 국민연금 고갈이 보이는데 개혁 방향이 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성장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경제가 성장하면 국민연금 보험료를 올리지 않아도 보험료가 더 많이 걷힐 것이므로 기존 연금 제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참으로 달콤한 말이다. 그러나 경제가 성숙기에 이르면 고도성장은 불가능하다는 게 진실이다. 2%대 성장만 해도 괜찮은 편이고 3%대 성장을 하면 잘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인 인구는 급속도로 늘고 있다. 반면 젊은 층 인구는 출생률이 급락하면서 급감하고 있다. 연금을 받아 갈 사람 수는 빠르게 느는데, 연금 곳간을 채울 사람 수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다. 이 같은 인구 변화는 선진국 공통의 현상이고, 한국은 그 속도가 훨씬 빠르다. 그 인사가 경제 성장으로 연금 고갈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면 그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증거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런 데도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기초연금을 올리겠다고 했다. 국민연금이 고갈될 게 뻔한데 이를 해결할 대안을 내놓지 않고 별도의 연금을 올리겠다고 한 것이다. 굿하트의 기준에 따르면 한국의 양대 정당은 모두 포퓰리스트 정당이 되는 건가. 이제라도 우리는 스스로에게 정직해야 한다. 연금은 지금 세대가 받아가고 미래 세대에는 기금 고갈이라는 시한폭탄을 떠넘기는 건 참으로 불공정한 일이다.
김인수 논설위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브랜드아파트의 ‘굴욕’…478가구 청약에 단 10명 신청 - 매일경제
- “칼군무 화려한 댄스”…한국 걸그룹 뺨치는 ‘북한판 걸그룹’ 등장 - 매일경제
- “검찰이 함정 팠다”는 이재명, 이걸 믿으라는건가 [핫이슈] - 매일경제
- “인천 앞바다는 이제 성지가 될 것”...한국인만 몰랐나 - 매일경제
- 대출조건 확 풀렸다…최저 3%대 고정금리대출 이달 나온다 - 매일경제
- “10년 넘게 쓴 카드인데 배신감”…한도상향 신청했더니 - 매일경제
- [단독] 몇 달째 변호인 못구한 이성윤…‘尹 찍어내기 감찰’에 수임 꺼려 - 매일경제
- 빈 살만의 사우디 국부펀드 카카오엔터에 1.2조원 투자 - 매일경제
- 애플에 허찔린 K디스플레이, 매출 3분의1 날아갈 수도 - 매일경제
- ‘왕따 주행 논란’ 김보름-노선영 화해 실패, 법원은 강제 조정 명령 내려 -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