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유지 약속은 포퓰리스트 정당이란 증거 [핫이슈]

김인수 기자(ecokis@mk.co.kr) 2023. 1. 12.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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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찰스 굿하트는 “연금을 유지하거나 늘린다는 약속이 포퓰리스트 정당들의 선언 중 중요한 부분이었음을 주목하라”고 했다. 2018년 이탈리아 총선을 예로 들어 그의 책 ‘인구 대역전’에서 한 말이다. 그렇다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최소한 포퓰리스트가 아니라는 것은 입증된 셈이다. 그는 연금 수령을 시작하는 최소 나이를 62세에서 64세로 늦추겠다고 했다.

포퓰리스트 정당은 표를 얻기 위해 돈을 퍼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대규모 재정 적자가 뻔히 보여도 그렇게 한다. 그 적자를 미래 세대가 짊어질 게 뻔해도 상관하지 않는다. 그들만이 민중을 대변하기에, 그들만이 집권할 자격이 있기에 ‘표’가 최우선일 뿐이다. 다른 모든 것들은 부차적인 게 된다. 그러니 기존 연금이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해도 연금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심지어는 늘릴 수 있다고 약속한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선거 캠프에 참여한 한 인사의 말이 기억이 난다. 그에게 “지금 이대로 가면 국민연금 고갈이 보이는데 개혁 방향이 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성장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경제가 성장하면 국민연금 보험료를 올리지 않아도 보험료가 더 많이 걷힐 것이므로 기존 연금 제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참으로 달콤한 말이다. 그러나 경제가 성숙기에 이르면 고도성장은 불가능하다는 게 진실이다. 2%대 성장만 해도 괜찮은 편이고 3%대 성장을 하면 잘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인 인구는 급속도로 늘고 있다. 반면 젊은 층 인구는 출생률이 급락하면서 급감하고 있다. 연금을 받아 갈 사람 수는 빠르게 느는데, 연금 곳간을 채울 사람 수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다. 이 같은 인구 변화는 선진국 공통의 현상이고, 한국은 그 속도가 훨씬 빠르다. 그 인사가 경제 성장으로 연금 고갈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면 그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증거에 불과하다.

지난해 6월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양국 정상회담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마크롱 대통령은 이달 10일 연금 수급 나이를 2년 늦추는 개혁안을 내놓았다. 윤 대통령도 연금 개혁을 약속한 만큼 이행 여부가 주목된다. <매경 DB>
국민연금 기금 고갈을 막으려면 보험료를 올릴 수밖에 없다. 한국의 현행 보험료율 9%는 프랑스 27.8%, 독일 18.6%에 비해 턱없이 낮다. 15%로 올려야 한다는 게 국민연금공단의 계산이다. 심지어 보건사회연구원은 22%까지 올려야 한다고 했다. 보험료를 덜 올리겠다면 연금 수령 액수를 그만큼 줄여야 한다. 수급 나이를 2년은 늦추어야 할 것이다.

상황이 이런 데도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기초연금을 올리겠다고 했다. 국민연금이 고갈될 게 뻔한데 이를 해결할 대안을 내놓지 않고 별도의 연금을 올리겠다고 한 것이다. 굿하트의 기준에 따르면 한국의 양대 정당은 모두 포퓰리스트 정당이 되는 건가. 이제라도 우리는 스스로에게 정직해야 한다. 연금은 지금 세대가 받아가고 미래 세대에는 기금 고갈이라는 시한폭탄을 떠넘기는 건 참으로 불공정한 일이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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