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세 도시의 하모니

김다미 기자 2023. 1. 12.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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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우옌 왕조의 숨결, 호젓한 시골 풍경, 사람들의 이야기. 이 모든 걸 베트남 다낭과 호이안, 후에에서 만났다. 세 도시가 만들어 낸 하모니에 하루가 빛난다.

스트레스와의 작별 인사

한국의 추운 겨울에서 벗어나 베트남항공을 타고 햇볕이 내리쬐는 다낭에 도착했다. 숨이 턱 막힐 듯한 더운 열기에 놀란 것도 잠시, 여기저기서 들리는 캐리어 바퀴 소리와 눈앞에 있는 야자수를 보자 설레기 시작했다.

다낭은 세로로 길쭉한 베트남에서 가운데에 위치해 중부지방을 여행하기 좋다. 바다와 숲이 있는 다낭을 거점 삼아 역사를 간직한 호이안과 후에도 돌아보자. 다낭에서 호이안은 차로 약 1시간이 소요되고, 후에는 약 2시간이면 닿는다. 푸른 바다와 초록의 숲, 역사의 숨결이 함께하는 곳. 다낭과 호이안, 후에가 만들어 낸 환상적인 하모니에 지난 한 해 묵혀 놨던 스트레스에 작별 인사를 건넸다.

●역사가 말을 거는 곳
후에

응우옌 왕조의 숨결
후에 왕궁

다낭국제공항에 내리자마자 베트남의 옛 모습을 보기 위해 곧장 후에로 향했다. 후에는 한국의 경주처럼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다. 다낭과 약 100km 떨어진 고대 베트남의 수도로, 베트남 마지막 왕조였던 응우옌 왕조가 후에를 수도로 삼고 베트남을 통치했다.

응우옌 왕조의 이야기는 도시 곳곳에 서려 있다. 1802년부터 비교적 최근인 1945년까지 베트남을 통치한 응우옌 왕조가 기거했던 후에 왕궁은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될 만큼 역사적인 가치가 높다. 100년이 넘는 역사에 프랑스 식민지 시절을 거쳐서인지 중국식 건물과 프랑스식 성이 혼합된 건축양식을 볼 수 있다. 정문인 오문, 왕이 집무를 보던 태화전(지금은 보수공사로 관람이 어렵다), 응우옌 왕조의 종묘인 세조묘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중국의 자금성을 본떠 만든 만큼 그 모습도 화려하다. 전쟁으로 남은 건물보다 유실된 건물이 많았지만, 화려하고 웅장했던 모습을 상상하기에는 충분했다.

후에 왕궁은 복잡한 베트남 역사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 준다.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대부분 전각이 파괴된 후로는 빈터들이 왕궁을 지키고 있었다. 다행히도 지금은 정부의 체계적인 관리와 지원 아래 복원 사업이 진행 중이다. 투어 내내 눈에 담겼던 건 화려한 건물들이 아닌 잡초만이 무성하게 자란 빈터였다. 빈터를 보며 어딘가 공허한 마음이 드는 건 외세의 침략으로 허물어졌었던 우리의 경복궁을 떠올렸기 때문이겠지.

콘크리트 건물 속 화려함
카이 딘 황제릉

카이 딘 황제는 응우옌 왕조 12대 황제로 1916년부터 1925년까지 9년간 재위했다. 황제릉은 1920년에 짓기 시작해 사후인 1931년 완성됐다. 카이 딘 황제릉에 도착한 순간 그동안 봐 왔던 왕들의 무덤과 다른 모습에 호기심이 일었다. 잘 정돈된 초록초록한 봉분 대신 석조와 콘크리트 건축물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카이 딘 황제릉은 중국의 건축물에 영향을 받은 다른 응우옌 황제들의 능과는 다르게 유럽식 건축양식을 갖췄다. 프랑스 지배에 반기를 들었던 전 황제들과 달리 카이 딘 황제는 프랑스에 우호적인 입장을 유지했다고. 황제릉이 서양식으로 꾸며진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난간에 새겨진 용을 따라 계단을 오르다 보면 큰 비석을 만난다. 카이 딘 황제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이자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황제인 바오다이가 세운 비석이다. 문인석과 무인석, 호위무사상과 말, 코끼리 동상이 비석 양옆에 서 있고, 황제의 위엄을 보여 주기 위한 오벨리스크도 양쪽에 놓였다. 계단을 한 차례 더 올라가자 황제가 묻혀 있는 계성전이 나왔다. 계성전 안은 그야말로 휘황찬란했다. 벽은 자기와 유리 모자이크로 꾸며져 있었고, 카이 딘 황제 등신상은 청동에 금박을 입혀 화려함을 뽐냈다. 등신상 아래에는 황제의 유골이 안치됐다. 프랑스 식민지 시기 백성들의 고통과 정반대에 있는 호화로운 무덤을 보고 나니 조금은 씁쓸해졌다.

●경기도 다낭시? 오히려 좋아
다낭

스트레스를 훌훌
하이반 고개

'경기도 다낭시'여도 괜찮다. 다낭은 첫 베트남 여행지로 손색없으니 오히려 좋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친절한 한국말은 새로운 여행지에 대한 두려움을 깨 줬다. 다낭의 첫인상이다.

다낭에 도착해서 다낭과 후에를 이어주는 하이반 고개로 향했다. 베트남에서도 손꼽히는 높고 긴 고갯길이다. 베트남어로 하이는 '바다', 반은 '구름'이다. 이름대로 바다와 구름이 있다. 꼬불꼬불 이어진 도로를 달리고 있으면 아무 데나 오토바이를 세워 놓고 풍경을 즐기는 현지인들을 만날 수 있다. 버스를 타고 후에로 이동하는 동안 오토바이가 쉴 새 없이 지나가고, 젊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도로 연석에 앉아 풍경을 배경 삼아 대화를 나눴다.

절경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하이반 고개엔 노상 카페가 곳곳에 있다. 관광객의 신분으로 이런 비경을 놓칠 수 없어 정상에 위치한 카페에 들러 연유 커피를 시키고 어슬렁거리며 경치를 구경했다. 저 멀리 보이는 바다와 풀숲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멋진 풍경을 보며 달달한 연유 커피를 마시는 순간, 쌓여 있던 스트레스가 훌훌 날아갔다.

다낭 속 쁘띠 프랑스
바나힐 테마파크

다낭의 쁘띠 프랑스, 바나힐 테마파크로 향했다. 해발 1,487m의 시원한 기후와 뛰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라는데. '지상의 천국'이란 별칭이 정말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출발 전 호텔 로비에서 가이드는 긴팔 옷을 꼭 챙기라며 신신당부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무더위에 긴팔 옷을 챙기라니.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혹시 몰라 가져 온 여름용 카디건을 두 손에 쥐고 버스에 탑승했다. 바나힐에 도착 후 케이블카에 올랐다. 발아래로는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고 있었고, 계곡이 시원한 물줄기를 뽐냈다. 20여 분이 지났을까. 바나힐 정상에 내리자 여름용 덧옷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아랫 공기와 다른 서늘한 바람이 뺨을 계속 스쳤다.

바나힐은 프랑스가 베트남을 지배하고 있을 때, 프랑스 사람들이 별장을 지어 휴양지로 이용했던 곳이다. 지금은 베트남그룹 썬월드 소유의 놀이공원으로 탈바꿈했고, 한국인이 많이 방문하는 관광지 중 하나로 우뚝 섰다. 산 정상에는 프랑스 마을을 통째로 옮겨온 듯한 유럽풍 성당과 광장, 집들이 테마파크를 이루고 있다. 어트랙션도 다양하다. 레일바이크와 놀이기구, 루지 등을 즐길 수 있고, 공연도 다채롭게 열린다.

바나힐 최고의 명소는 해발 1,000m에 세워진 전망대, 골든 브릿지다. 두 손이 다리를 받치고 있는데, 멀리서 바라볼 때 그 위용이 대단해 감탄이 절로 나온다. 골든 브릿지는 황금색 띠를 잡고 있는 신의 손을 형상화했다. 손 조형물은 얼핏 보면 돌로 만든 것 같지만, 유리섬유와 금속으로 만들어져 매우 튼튼하다고 한다. 골든 브릿지에서 바라보는 전망을 즐기기 위해서는 날씨가 중요하다. 바나힐의 날씨는 변화무쌍해 시시각각 구름이 생겼다 흩어지며 요변을 부린다. 날씨요정의 기운이 따라 줘야 진정한 지상 천국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한국인으로 가득
한시장

한시장은 다낭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이다. 과거에는 현지인들 사이에서 비싼 수입품을 판매하는 부유층을 위한 고급 시장이었지만, 지금은 기념품부터 라탄 백, 과일, 식료품, 신발, 옷 등을 판매하고 있다. 1층에는 야시장처럼 다양한 기념품이 있고, 말린 과일이나 과자 등이 진열돼 있다. 한국인이 어찌나 많이 방문했는지 점원들은 웬만큼의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한국어를 구사한다. 2층으로 올라가자 신발과 옷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전통의상 상점이 모여 있는 공간에서는 '드르륵'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오자이를 만들기 위해 직원들이 재봉틀을 바쁘게 돌리는 소리였다.

한시장을 구경한 후에는 야경을 감상하는 게 알맞은 코스다. 한시장 앞에는 한강이 흐르고, 그 유명한 용다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용다리는 다낭의 아름다운 야경을 책임져 주고 있고, 그 뒤로는 썬그룹의 관람차가 베트남 국기를 그리며 밤을 빛낸다.

●올드타운 밖의 모습
호이안

숨겨진 또 다른 풍경
짜꿰 채소마을

호이안은 올드타운과 야시장의 이미지가 지배적이지만 호이안 올드타운에서 자전거로 20분 거리에 호젓한 시골 풍경을 가진 짜꿰 채소마을(Tra Que Vegetable Village)이 있다. 호이안의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장소다. 짜꿰 마을에 들어서자 전통 모자를 쓰고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 바람에 흔들리는 허브들, 밭에 앉아 쉬고 있는 물소가 반긴다. 한국에서 높은 스카이라인만 보다 뻥 뚫린 하늘과 녹색의 허브들을 보고 있으니 마음에도 평화가 깃든다. 채소마을답게 텃밭에는 각종 허브와 파파야 등이 자라난다. 짜꿰 마을의 허브는 유기농으로 유명하다. 마을 근처에 있는 강에서 채취해 온 해초를 비료로 사용한다고. 그래서인지 허브들은 싱그러운 모습으로 좋은 향을 내뿜는다.

짜꿰 마을에서 쿠킹 클래스는 놓쳐선 안 될 필수코스다. 아직 한국인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아 한국인 손님은 우리가 유일했고, 주로 서구권에서 방문하는 듯했다. 쿠킹 클래스 시작 전 농부를 따라 텃밭을 구경했다. 흙은 돌이 없고, 손으로도 부담 없이 팔 수 있을 만큼 부드러웠다. 우리를 안내해 줬던 쓰어씨는 무려 40년 경력의 농부로 각종 허브를 소개해 주고, 텃밭 경작 과정을 보여 주는 데 손놀림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텃밭을 다 둘러보고 난 뒤엔 반쎄오 만들기에 돌입했다. 한국에서 먹기만 했던 음식을 직접 만들다니. 생각보다 간단한 조리법에 직접 만들어서 그런지 더 맛있게 느껴졌다. 쿠킹 클래스가 끝난 뒤 텃밭이 보이는 자리에 앉아 반쎄오를 입 안 가득 넣었다. 흐르는 시간을 붙잡고만 싶었던 순간이었다.

▶국제선 타면 국내선이 무료!
베트남항공 Vietnam Airlines

베트남항공은 베트남 국적 항공사로 100개 이상의 노선에서 20개 이상의 국내선과 30개 이상의 국제선 여객 서비스를 제공한다. 베트남항공에 탑승하면 베트남 전통의상 아오자이를 입은 승무원이 승객들을 반겨 출발 전부터 베트남을 물씬 느낄 수 있다.

현재 베트남항공은 인천-하노이·호찌민·다낭·나트랑 노선과 부산-하노이·호찌민 노선을 운항 중이다. 국제선 탑승객이 국내선을 함께 구매할 경우 국내선 노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프리 애드온 서비스'도 제공한다. 베트남 내 여러 도시를 한 번에 여행할 때 유용하다. (2022년 12월 기준)

글·사진 김다미 기자 에디터 트래비 취재협조 베트남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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