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야비야] 기로의 나경원
정권과 서먹해진 건 부담 요소
대의 입각해 숙려 시간 갖기를
국민의힘 당대표 출마 문제와 맞물려 있는 나경원 전 의원이 정치인생 기로에 서 있는 모양새다. 맥락이 어떻든 대출 탕감과 연계한 저출산 대책 발언으로 대통령실 공격을 자초한 게 시발이다. 정치인은 휘발성 있는 정책 이슈를 던지는 것에 유혹을 느끼기 마련이지만 이번 경우는 긁어 부스럼 형국이 됐다. 한마디로 'TPO(시간·장소·상황)' 측면에 대한 고민이 미약했다. 대통령실이 즉각 부정하고 나선 데다 나 전 의원도 선은 이렇고 후는 이렇다며 설득력 있는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맥을 잘 못 짚은 것이다.
이번 갈등 양상이 정책적 간극이고 견해차였으면 오해는 해소하면 그만이다. 현실은 그렇게만 볼 사정이 아니니 반작용이 커질 수밖에 없다. 나 전 의원은 단순한 원외 정치인이 아닌, 경쟁력 있는 당권 주자다. 그런 인사가 당 대표 경선에 뛰어들면 이른바 흥행성을 자극하는 효과가 수반될 수 있다. 최근 여러 여론조사 기관에 발표한 여당 지지층 적합도 조사에서 경쟁 후보들을 앞서는 것으로 나온다. 이 추이에 변동성을 일으킬 요인들이 잠복돼 있을 것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나 전 의원의 기반이 가볍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렇게 보면 나 전 의원이 당 대표 출마를 접으면 그게 부자연스러워 보일 수 있다. 현재 지지율 가도 1위에다 수도권을 지역구로 둔 4선을 지낸 여성 중진 정치인이고 전국구 지명도를 지녔으면 당권을 노려볼 만한 정치적 자산을 얼추 갖춘 것으로 볼 수 있다. 더구나 경선 게임의 룰을 당원 투표 100%로 바꾼 것도 나 전 의원에겐 유리한 선거지형이다. 2년 전 전대에서 여론 지지율에서 차이가 벌어져 2위에 그쳤지만 당원 득표율 부문에선 수위를 찍었던 나 전 의원이다.
그런 나 전 의원이 지금은 정권 핵심부의 집중적 공격표적 신세다. 이 또한 정치 영역의 일면이고 염량세태일 수 있다. 정치를 업으로 삼는 이상 개인의 정치적 부침은 항용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전대 길목에서 나 전 의원이 직면해 있는 상황 전개도 다르지 않다. 만약 나 전 의원이 지난 21대 총선에서 생존했으면 당내 5선의 최다선 그룹을 형성하면서 위상이 강화될 수 있었지만 운이 닿지 않았다.
이는 나 전 의원의 가까운 미래에 닥칠 정치적 전조였는지 모른다. 정권을 차지하기 위한 여야 대격돌의 장인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나 전 의원의 경우 정권 이너서클에 편입될 정도에 이르지는 못하면서 여권내에서 입지를 모색하기가 애매해졌다. 그런 나 전 의원에게 3개월 전 장관급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이 부여됐다. 지난 10일 사의를 표명했지만 대선 전후 무직 상태였던 나 전 의원에게 감투를 씌워준 것으로 아해되는 대목이다.
그 자리 역시 크게 보면 논공에 따른 행상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나 전 의원이 감지하지 못한 게 있었던 듯하다. 자리를 받는 순간 3·8 전대 당대표 옵션으로서의 효력이 사실상 유보되는 상황이었다 할 것인데 그 부분을 놓친 듯 싶다. 이런 암묵적 거래관계 성립을 명시적으로 증명할 길은 마땅치 않다. 다만 대통령실이 나 전 의원을 압박하고 나선 데엔 그만한 내면의 사정이 있었다는 징후고 그런 까닭에 나 전 의원이 당대표 경선 링에 오르지 않았으면 하는 주문을 발신한 것으로 보면 맞는다.
여당 전대는 정권 주류 핵심이 어렵사리 세팅한 정치 경연장이라는 성격이 없지 않다. 평상시 2년 주기 당대표 교체와는 결이 또 다른 것이다. 게다가 그 무대의 주인공도 대략 염두에 두고 있는 마당에 나 전 위원이 플레이어로 나서면 예측불허의 레이스가 펼쳐질 게 자명하다. 이런 현실을 어떻게 헤쳐나갈지는 나 전 의원 몫이다. 마음은 굴뚝일 것이다. 다만 무엇이 이번 전대를 관통하는 대의와 명분에 부합하는지 자문하고 나서 결심해도 늦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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