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미친 사람으로 오래 기억될 자격 있습니다”
한국 대표 사진가 고 김중만 작가를 기리며
2022년 12월의 마지막 날 걸려온 한통의 전화는 나를 패닉으로 몰아넣었다. 김중만 선생이 영면하셨다는 그의 아들 래오의 전화. 불과 이틀 전만 해도 “이제야 해외를 무대 삼아 작품세계를 펼칠 준비를 마쳤다”며 새해엔 건강한 얼굴로 한번 보자던 당신의 목소리를 영영 듣지 못하게 되다니, 정신이 아득했다.
한국 최고의 상업사진가, 한국을 대표하는 포트레이트 사진가…. 김중만 이름 석자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수식어는 많다. 연예인은 아니지만 사진계 스타로 대중적 관심과 이슈를 몰고 다녔던 그는 아프리카를 시작으로 꽃, 연예인, 패션, 영화 포스터, 한국의 사계, 독도, 그리고 나무 작업까지 사뭇 다른 다양한 시리즈를 매번 새로운 시선과 감성으로 녹여냈다.
첫 인연은 2004년 초여름이었다. <뉴욕 타임스> 기획 시리즈를 시작으로 ‘북한 인권’을 주제로 한 중국 탈북민 다큐멘터리 작업을 진행하던 중 중국 공안에 체포돼 1년 반이란 긴긴 감옥살이를 끝냈을 즈음, 선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선생과 단둘만의 만남이라니. 설렘을 가득 품은 채 찾은 그의 스튜디오에서 참 많은 대화를 나눴다. 앞으로의 작업에 대한 고민과 한국 사진계가 나아갈 길까지 고민하는 그를 보며 그 자리에서 ‘스타’가 아닌 김중만, 따듯한 마음을 지닌 사진계의 든든한 선배를 한분 더 알게 됐다.
그 후 편하게 오가며 사진예술에 대한 그의 열정과 노력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이제 나이가 드니 나의 뿌리를 찾고 싶다”며 상업사진가의 화려한 경력을 뒤로하고 한국의 산하와 독도를 작업한 이야기도, “사람들 발길이 잦아든 뚝방길 상처 난 나무가 마치 내 모습 같다”며 10년간 중랑천 다니며 나무들의 목소리를 들은 이야기도, 긴 세월 동안 가까이에서 듣고 지켜볼 수 있었던 건 내 인생에서 큰 행운이었다.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걸린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꿈을 선물해주고 싶다며 축구 골대를 지어주고 세월호 참사 때 희생된 아이들을 잊지 않기 위해 로마숫자 ‘304’를 목에 새겼던 선배. 사진가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참 배울 점이 많고 따스한 마음을 지닌 그였지만 가끔은 사회적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과 예술가 기질로 인해 당혹스런 상황을 마주하는 경우도 있었다.
“내 영혼이 침침하고 암울해서 그래.” 7년 전, 짧은 이 한 문장으로 헝가리 부다페스트 전시 오프닝에 참석을 못 하겠다고 했던 한통의 전화를 기억한다. 해외기관과 협업으로 기자간담회와 다양한 프로그램이 정해진 상황에서 출국 하루 전, 연락을 하신 거다. 청천벽력 같았다. 선생의 성격과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마음을 돌이킬 수 없음도 분명했다.
하지만 그대로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딱 한 말씀만 문자로 드렸다. “약속된 일정을, 하루 전에, 영혼 때문에 취소한다면, 선생님이 아니라 한국 사진가들 전체가 욕을 먹는 일입니다.” ‘너 이제 나한테 협박 문자까지 보내냐’며 한소리 듣긴 했지만 그렇게 선생은 후배를 위해 아내가 담근 김치 한 박스를 손에 든 채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돌아보면 이스탄불, 부다페스트, 베이징과 샤먼 그리고 브뤼셀 등 여러 기획전시를 그와 함께했다. 새해 12월엔 스위스 바젤의 H. 가이거 문화센터에서 초대 전시도 열리는데 갑작스러운 선생의 영면에 ‘조금만 더 버텨주시지’, 이래저래 아쉬운 미련들이 마음에 머문다.
필름카메라의 본질적 입자를 사랑했던 사람, 자연을 담으며 한국인의 정체성을 찾아가던 사람, 대한민국을 사랑하며 죽을 때까지 사진으로 담겠다던 사람, 사진에 미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던 선생. 그는 이제 우리 곁에 없다. 하지만 그의 순수한 마음과 자유로운 영혼이 깃든 작품들이 남아 그나마 위안이 된다.
“내가 찍을 자격이 있냐?” 뚝방길 버려진 나무들을 작업하며 그는 나무에게 물었다고 한다. 선생의 그리운 말투를 떠올리며 이렇게 글을 마친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오래 기억될 자격이 있으십니다.”
석재현 사진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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