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빵야’ 일제 장총이지, 이 모진 삶을 들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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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총이 말을 한다.
'빵야'란 이름의 구식 장총이다.
장총을 의인화한 연극 <빵야> 에서 주인공은 일본 제국주의 마지막 주력 화기, 99식 소총이다. 빵야>
"일제가 남기고 간 장총을 들고 남북한 군대가 싸웠다." 작가 김은성은 "당시의 비극적 역사를 이보다 더 명료하게 정리할 수 있는 문장을 찾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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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총이 말을 한다. ‘빵야’란 이름의 구식 장총이다. 장총을 의인화한 연극 <빵야>에서 주인공은 일본 제국주의 마지막 주력 화기, 99식 소총이다. 독창적 설정과 뚜렷한 주제 의식, 입체적 서사와 속도감 있는 전개로 눈길을 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지원 신작이다.
“일제가 남기고 간 장총을 들고 남북한 군대가 싸웠다.” 작가 김은성은 “당시의 비극적 역사를 이보다 더 명료하게 정리할 수 있는 문장을 찾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그가 창작을 결심한 계기는 낡은 장총을 담은 한장의 사진이었다. 자료를 조사하다 보니 그에게 장총은 현대사의 아픔을 상징하는 참담하고 비극적인 몸체로 다가왔다. 일제 99식 소총은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과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베트남전쟁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김은성 작가는 “99식 소총이 무대 소품이 아닌 인물로 등장하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면서 구성의 가닥을 잡았다”고 말했다. 희곡은 2020년 여름에 완성했지만 코로나19로 무대에 올리는 게 여의치 않았다. 지난해엔 이 가운데 일부를 인용해 서울오페라앙상블과 창작 오페라 <장총>을 만들어 호평을 받았는데, 연극과는 스토리가 다르다.
연극은 두 가닥으로 흘러간다. 역사를 소재로 드라마를 쓰는 ‘한물간 작가’ 나나의 시선, 그리고 굽이치며 흘러온 한국 현대사와 명운을 함께한 장총 한자루의 모진 여정이다. 1945년 부평 조병창에서 탄생한 빵야의 운명은 기구하기만 하다. 군수 열차에 실려 만주로 운송돼 독립군을 토벌하는 간도특설대 소속 조선인 병사의 손에 쥐어진다. 첫 주인이 죽은 뒤엔 중국 팔로군 여성 전사에게 흘러갔다가 우여곡절 끝에 제주도 조선경비대에게 넘어가 4·3의 아픔을 겪게 된다. 이후 지리산 토벌대를 거쳐 한국전쟁이 터지자 낙동강 전선에서 국군과 인민군의 손을 오간 뒤 소녀 빨치산의 총이 된다. 그의 죽음과 함께 ‘살인’의 사명을 다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다시 사냥꾼과 포경꾼의 손에서 동물 살상에 이용되고, 도박꾼의 판돈, 기업가의 로비 선물로 쓰이다 80년대엔 전쟁영화의 소품으로, 2000년대엔 뮤지컬의 소품으로 활용된다. 낡고 닳아 더는 쓸모가 없어진 뒤에야 마침내 물품 창고에서 쉬게 됐는데, 여기에 미니시리즈를 쓰는 드라마 작가 나나의 이야기가 보태진다. 김은성 작가는 “99식 소총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제국주의, 군국주의, 전체주의라는 거대 악의 잔재가 어떻게 살아남아 세상 곳곳을 참담한 폭력으로 멍들게 했는지 실감했다”고 창작 당시를 돌이켰다.
연극의 주요 무대는 장총이 놓여 있던 소품 창고. 김태형 연출은 “빵야의 주인이 바뀌어가면서 그 안에 새겨진 역사를 보여주는 이야기이자 극 중 작가인 나나가 창작자로서 이런 이야기를 어떤 마음으로 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11일 창작산실 간담회에 참석한 고강민 프로듀서는 “연극이 관객을 작가 나나의 창작 과정으로 데려갈 것”이라고 소개했다.
화제작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에서 열연했던 배우 하성광과 문태유가 빵야 역을, 배우 이진희와 정운선이 작가 나나 역을 맡는다. 오는 31일부터 2월26일까지 엘지(LG)아트센터 서울에서 만날 수 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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