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산악부] 기수 없고 자율 존중…문턱 낮아 한 해 지원자 100명

한효희 2023. 1. 1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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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과대 별로 흩어져 있던 산악부 통합...새 출발하는 서울대산악부
백운대 슬랩 정상에서.

서울대산악부의 역사는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한다. 과거 서울대는 캠퍼스가 흩어져 있었던 탓에 단과대별로 산악부가 난립해 존재했다. 관악캠퍼스가 생기며 대학이 통합된 이후에도 이전의 전통에 따라 문리대, 사범대, 법대, 치대, 농대, 의대, 공대, 미대 산악부가 독자적으로 활동했다.

분열과 혼란의 시대를 마무리 지을 난세의 영웅은 나타나지 않았다. 2000년대를 지나 산악부의 인기가 식어들며 농생대와 문리대를 제외한 대부분의 단과대 산악부가 절멸했다. 가뜩이나 산악부가 침체기인데 단과대별로 따로 모집하다 보니 신입부원이 모이기 힘든 구조적인 문제가 원인이었다.

이후 산악부 통합에 대한 논의가 꾸준히 있었지만 단과대별 전통과 선배들의 입김, 어디가 중심이 될 건지와 같은 복합적인 문제가 얽혀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궁여지책으로 연합 체제를 만들어 '총산악부'라는 조직이 생겼지만 실질적인 통합을 이루진 못했다. 기나긴 진통 끝에 2019년에 들어서야 서울대 통합 산악부가 탄생하게 된다.

춘추전국시대에서 삼국시대로

통합 산악부는 문리대, 사범대, 공대, 미대를 포함한 단과대 산악부가 합세해 탄생했다. 하지만 완전한 통합은 아니었다. 의대와 농생대 산악부는 아직도 독자적인 조직으로 활동한다. 의대생 위주로 워킹 산행만 진행하는 의대산악부를 제외하면 서울대에는 두 개의 산악부가 공존하는 셈이다. 일개 대학 산악부가 통합되는 것도 이리 힘든데 '우리의 소원'이라는 민족 통일은 얼마나 요원한 일일지 문득 깨닫게 된다.

"가끔씩 등반도 같이하고 장비도 빌려주고 친해요. 라이벌 의식 같은 건 없어요."

농생대산악부에 대해 경쟁의식이 있을 법도 한데 서울대 통합 산악부원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농생대산악부는 대학산악부가 침체기였던 때도 명맥이 끊이지 않고 활발한 활동을 유지해 왔다. 굳건한 조직력과 서슬 퍼런 선배들이 남아 있었던 탓에 통합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독자적인 산악부로 남아 있게 된 것이다. 재밌는 점은 농생대산악부에 농생대 학생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반대로 통합 산악부에서 활동하는 농생대 학생도 있다. 차기 통합 산악부 대장이 농생대 소속이다.

"농생대와 통합 산악부의 성격이 약간 다른 것 같아요. 농생대산악부는 정기 활동에 필수 참여 조건이 있고, 소수의 인원을 강하게 키워요. 반면 서울대산악부(통합)에는 강제나 억압이 없어요."

두 산악부를 보고 있자니 스파르타와 로마가 떠오른다. 농생대는 규모가 크지 않지만 소수의 정예인원이 똘똘 뭉쳐 활동한다. 반면 서울대산악부는 80여 명의 재학생이 활동하는 큰 조직이다. 누구나 가입할 수 있고 자율적으로 산행을 즐기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추구한다.

안전교육 세미나에서 신입부원들이 교육을 받고 있다.

문턱 낮추고 다양성 존중

서울대산악부는 대학 커뮤니티 SNS인 에브리타임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온라인에서만 모집을 진행한다. 굳이 오프라인 모집을 진행하지 않아도 감당하기 힘들 만큼 많은 신입생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서울대산악부도 코로나 덕을 톡톡히 봤다. 2021년에는 120명 가까운 부원이 활동했으며, 2022년 한 해 지원자만 100명에 달한다. 수시모집도 진행하지 않는다. 대체로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모집이 마감된다.

"학기 초에 등반 시스템을 배우는 '안전 세미나'라는 걸 해요. 학기 중간에 들어오면 아무래도 교육에 차질이 생겨서 수시모집을 하지 않아요. 그리고 보통 초반부터 열심히 나온 사람들이 끝까지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서울대산악부는 가입 문턱이 낮다. 구글폼을 이용해 지원서를 제출하고 회비 3만 원을 내면 누구나 들어와 활동할 수 있다.

"대학 동아리는 취업이나 입시가 아니잖아요. 들어올 때부터 가려 뽑는 건 동아리 본질과 맞지 않는 것 같아요. 문턱이 높은 것보다 즐겁게 활동하고 이후에 남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서울대산악부가 추구하는 가치는 자율과 다양성이다. 나이 학번 상관없이 누구나 활동할 수 있다. 산행 필수 참여 조건도 없다. 워킹·등반·실내암벽 중 특정 활동에 편중하거나 산행 참여율이 낮다고 내쫓지 않는다. 기수제가 없는 건 당연한 얘기다.

"이곳에선 자기가 산에 가고 싶은 방식으로 활동해요. 다양하게 산을 즐기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거죠."

서울대산악부는 1주일에 3번 공식 활동이 있다. 주말에는 주로 등반 위주의 산행을 진행한다. 평일 중 하루는 실내암장에서 운동하고, 수요일에는 교내 인공외벽에서 리드 등반을 한다. 동기부여 차원에서 선등에 성공한 신입부원에게는 하네스를 증정한다.

2022년에는 관악산 개강 산행을 시작으로 부경대 합동 부산 해벽등반, 울산바위 문리대길 청소등반, 설악산, 인수봉, 선인봉에서 활동을 진행했다. 아직 생긴 지 3년밖에 안 된 신생 산악부지만 그 어느 대학산악부보다도 활발하다. 등반에 열정적인 부원이 많아 멀티피치 선등을 설 수 있는 인원도 여럿 있다.

"대학산악연맹 춘계 아카데미 때 25명이 참여했어요. 1인당 카라비너가 4개 있어야 하는데 신입부원이 많아서 카라비너 100개를 준비하느라 진이 빠졌어요. 암벽화, 하네스, 헬멧도 구비하느라 돈이 많이 들었는데 비용을 모금하고 선배들의 지원을 받아서 해결할 수 있었어요."

서울대산악부는 사진 찍을 때 양손을 모아산 모양 포즈를 취한다.

남은 숙제는 OB선배와의 통합

"2019년 재학생 산악부가 통합되면서 통합 OB회도 생겼지만 아직 선배님들께 많이 알려지진 않았어요. 통합 OB회에서 활동하시는 분도 적어요. 다들 다른 단과대 산악부 소속이다 보니 단과대별로 선배님들께 따로따로 연락을 드리고 있어요."

서울대 재학생 산악부는 어느 정도 통합을 이루어냈지만 OB회에는 아직도 단과대 위주의 문화가 남아 있다. 이러한 점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 11월에는 재학생 주도로 홈커밍데이 행사를 진행했다. 선배님들께 통합된 산악부를 알리고 친목을 도모하자는 취지다. 단과대 구분 없이 선배를 초청해 학교 잔디밭에서 밥을 먹고 인공외벽 등반도 함께했다. 최근에는 의대산악부 OB와 함께 인수봉 의대길을 올랐고, 문리대산악부 OB와 울산바위 문리대길을 오르기도 했다.

"아직 선배님들 중에 '우리 과 후배가 아니다'는 배타적인 인식이 남아 있는 것 같기도 해요. 그래도 홈커밍데이 행사 이후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지금이 과도기라고 생각해요. 언젠가는 하나의 산악부로서 선배들이 후배를 받아들일 날이 올 거라 생각합니다."

3인 미니 인터뷰

정해은 20학번 자유전공

어릴 때 아버지 영향으로 가족들과 산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바위를 할 생각은 추호도 없이 '산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가입했다. 가입하자마자 춘계 '등산' 아카데미라고 해서 갔는데 갑자기 바위를 타라고 했다. 그런데 등반이 너무 재밌었다. 그렇게 매주 다니다 보니 주장까지 하게 됐다.

최장혁 20학번 재료공학

전 여자친구가 같이 활동하자고 해서 따라 가입했다. 인수봉 처음 갔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등반길을 잘못 들어 정상도 못 가고 쩔쩔매다가 밤에 하산했다. '이게 암벽 등반이구나'라는 걸 처음 느꼈다.

양현준 19학번 의학

문리대 선배님과 울산바위 문리대길을 올랐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막연하게 '선배가 선등 서시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선배께서 "너희가 한 피치씩 선등을 서라"고 하셨다. 1피치 시작이 까다로워서 아무도 안 하려고 했는데 뭔가 내가 해야 될 것 같았다. 인생 첫 멀티피치 선등이었다. 부원들과 함께 으으 돌아가며 선등을 서서 울산바위를 올랐다.

월간산 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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