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73)얼빛 틔운 속알
말에 마루가 있다. 참올(眞理)로 곧이 선 말씀은 올발라서 하늘땅을 하나로 이어 뚫는다. 맨꼭대기에서 맨꽁무니까지 바로 그대로 몸맘얼을 뻥 뚫으니 말숨이 훅 터져서 살알․산알이 다 올바르다. 가온 뚫림의 길(中道)이요, 늘 가온씀(中庸)의 길이다. 그 마루는 ‘길없에 길’(無道之道)로 뚫려서 앞 닫힌 때새(時間) 뒤를 활짝 열어놓는다. 가오는 늘(常)에 펼쳐진 집집 우주의 가없는 그물코다. 벼락 빛이 ‘말씀말숨말슴’의 벼릿줄을 당긴다.
벼릿줄을 당기니 열린 말씀이 조여 말숨이 트이고 말슴이 섰다. 말슴으로 말이 선 자리가 마루다. 바루어 올바로 세운 말씀이 참 가르침이다. 참 가르침은 앎이 아니다. 그래서 앎은 없다. 깨달음은 말로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니다. 스스로 길을 몸에 닦아 말 마루에 올라서야 저절로 깨우친다. 깨우친 속알이 옥구슬이다. 다석 류영모는 “솟구쳐 올라 앞으로 나아가는 지성(知性)이 속알이다. 마치 구슬처럼 계속 굴러가는 것”이라고 했다. 속알이 참올의 ‘밑바탈’이요, 얼이다.
옥구슬은 본디 깨끗하나 감추어진 채 드러나 있지 않다.
맑고 밝아 티끌하나 없이 있는 으뜸 마루다.
밑바탈에 참올로 얼빛 틔운 속알이 옥구슬이다.
다석 류영모는 늘 이렇게 기도했다. 기도의 앞머리다. “하늘 계신 아바께 이름만 거룩 길 참 말씀이니이다. 이에 숨 쉬는 우리 밝는 속알에 더욱 나라 찾음 이어지이다. 우리의 삶이 힘씀으로 새 힘 솟는 샘이 되었고 진 짐에 짓눌림은 되지 말아지이다.” 거룩한 길의 참 말씀이 제 몸에 종울음 쳐 말숨을 돌리고 말슴으로 곧이 서면 속알이 환빛 밝아 밑을 트고 풀림을 연다. 그제야 비로소 제 몸이 새 힘 솟는 샘이 된다.
일에 임금이 있다. 어그러지지 않고 그르치지 않고 틀어지지 않고 가는 길은 일없다. 일없어 모든 것이 다 저절로다. ‘일없’(無事)에 일이 저절로 돌아가는 것이다. ‘함없’(無爲)에 함이 일어 숨 돌아가고, ‘일없’에 일이 일어 숨 돌아가고, ‘맛없’(無味)에 맛이 일어 숨 돌아간다. 스스로 숨 돌아가는 그 자리가 저절로 솟나 뚫린 임금의 자리다. 일은 스스로 일어 저절로 돌아감이다. 그렇게 돌아가는 일은 앎이 아니다. 그래서 앎은 없다.
그저 오직 앎이 없는데, 스스로가 저절로를 따른다.
그저 오직 앎이 없는데, 말슴이 말숨으로 말씀을 튼다.
그저 오직 앎이 없는데, 있는 그대로 올이다.
그저 오직 앎이 없는데, 노자 늙은이가 있다.
그저 오직 앎이 없는데, 참나 홀로 오롯하다.
젠체하는 앎, 써먹기부터 하려는 앎, 모름을 모르는 앎은 부질없다. 모름지기 사람은 모름을 지키는 ‘모름직이’여야 한다. 알음앓이로 알음알이가 터져도 늘 모름직이로 살아야 한다. 말에 마루가 있고 일에 임금이 있는데, 그 자리는 그저 오직 앎이 없다. 마루는 텅 빈 빈탕의 자리요, 임금은 저절로 돌아가는 그저 늘 그 자리다. 앎이 없어 빈자리요, 없자리다. 그래서 세상은 노자 늙은이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노자 늙은이는 35월에서 이렇게 말했다.
길 가 나가는 입은
심심하니 그 맛이 없
보아 보잘 게 없
들어 듣잘 게 없
쥐어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다. 다석은 “고루 사랑을 널리 할 줄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와 임께서 하나이 되사 늘 삶에 계신 것처럼 우리도 모두 하나이 될 수 있는 성언을 가지고 참 말 삶에 들어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거룩하신 뜻이 위에서 된 것과 같이 우리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아멘.”이라 기도를 올렸다. 하나로 거듭나야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쥐어 잡을 수 있으리라. 자, 노자 늙은이 70월을 보자.
떠돌이가 말을 거둔다. 떠돌이는 숨이 찼다. 여기저기거기 곳곳을 돌고 돌아 제자리에 선 떠돌이는 귀가 없었고, 더불어 눈도 없고 입도 없었다. 트고 열려서 한통속이니 따로따로가 없었다. 마음에 난 자리도 없으니 세상 앎이 쌓이지 않고 흩어졌다. 몸에 길이니, 여닫는 때새(時間)도 그저 제자리일 뿐. 홀로 오롯하다! 길, 가, 나가는 입으로 불어 부는 소리.
떠돌이 : 노자 늙은이가 말하는 거야. “내 말은 너무도 알기 쉽고 너무도 하기 쉽지. (그런데도) 세상 잘 아는 이 없고 잘 하는 이 없어.” 다석이 ‘너무도’를 ‘넘으도’라고 한 것은 ‘너무’가 “일정한 정도나 한계를 훨씬 넘어선 상태로”를 뜻하기 때문이야. 쉽고 쉬운 데, 그 쉬움보다도 더 넘어선 쉬움자리의 앎! 저절로 알아지는 앎이라고 할까? 그 정도로 쉽단 얘기지. 그런데도 세상에 잘 아는 이가 없고 잘 하는 이도 없다는 거야. 저절로를 따르지 않기 때문이지.
떠돌이 : 앞 글을 이어서 노자 늙은이가 말하는 거야. 그 뜻을 풀면 이래. 먼저 “~있고, 있는데, 앎이 없음”을 잘 봐야해. 그걸 빗대볼까? 말에 마루가 있는 자리는 앎이 없어. 일에 임금이 있는 자리는 앎이 없어. 말 마루로 참 말씀은 앎으로 하지 않아. 일 임금으로 참 이끔도 앎으로 하지 않아. 노자 늙은이의 참 말씀과 참 이끔은 앎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그 누구도 알지 못하지. 자칫 노자 늙은이가 자기를 알지 못한다고 꾸짖거나, 자기를 알아주지 못한다고 서운해 하는 걸로 봐선 안 돼. 오직 앎이 없는데 이르러야 참 슬기슬기(般若:智慧)를 크게 깨우치지. 거기에 으뜸 마루가 있거든.
사슴뿔 : 노자 늙은이 51월을 풀면서 “하늘 웋 땅 웋 오롯 나 홀로 높임(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 하고 이렇게 덧붙였지.
“하늘 꼭대기에서 땅 꽁무니까지 하나로 뚫려 솟은 ‘오롯 나’는 참나(眞我)로 곧 본래면목이다. 하늘 웋도 깨고, 땅 웋도 깨야 깨달아 깨닫는 참나로 텅 비어 고요히 산다. 살아 숨 하나 나눈다. 시원시원한 얼나(靈我)가 가득가득 차서 크게 돌아가는 숨이 그득하다. 길이 내도 제나(自我)에 갇히면 ‘오롯 나’로 꿋꿋이(亭) 서지 못한다. 길이 내고, 속알(德)이 치고, 몬(物)이 꼴(形)하고, 힘(勢)이 이뤄야 한다. 몬이 꼴하고 힘이 이룬 데 숨(氣)이 있다. 숨이 움 솟아 돈다(氣運). 숨이 움 솟아 돌아야 올바르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은 부처가 세상 잘몬(萬物)이 돌아가는 올다스림(理致)을 알아차리고 난 뒤, 홀로 그것을 깨우쳤다는 두려움과 외로움에서 외친 소리야. 노자 늙은이도 ‘나를 아는 이 드무니 곧 내 기여.’라고 말하잖아. ‘내 기여’는 ‘나 홀로 높임’이라는 뜻이고.
사슴뿔 : 벼옷은 베옷이요, 갈옷이요, 누더기 옷이지. 노자 늙은이 56월에 화광동진(和光同塵)이 나와. 풀면 “그 빛에 타 번졌고 그 티끌에 같이 드니” 그런 뜻이야. 씻어난 이는 베옷을 입고 세상에 같이 들어도 속알은 무르익은 숨빛이지. 최종규는 이런 말을 했어. “알이란, 씨앗ㆍ씨알이란, 겉이 아닌 속으로 무르익는 숨빛입니다. 겉으로 드러내거나 내세우지 않고 속으로 듬직하게 익기에 ‘알다ㆍ앎’이라 하지요.”라고 말이지. 속으로 듬직하게 익은 것이 ‘앎’이라는 이야기.
그런데 왜 노자 늙은이는 피갈회옥(被褐懷玉)이라고 썼을까? 꿍꿍 하나를 틔워 볼까?
『주간한국』2008년 12월 11일자에 “미지의 유물 ‘흑피옥’…인류사 새로 쓸 ‘비밀의 열쇠’인가”, 2009년 10월 14일자에 “중국측 상식 밖 흑피옥 재발굴”, 2009년 10월 15일자에 “‘흑피옥’ 논란의 핵심은 무엇인가?”라는 기사가 있어. 검은 칠을 한 흑피옥(黑皮玉)이 출토된 곳은 베이징에서 서북쪽으로 약 300킬로미터 떨어진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 지역이야. 탄소14 연대측정 결과는 14300±60년. 기사가 흥미로운 것은 흑피옥이 발견된 지역은 요서지역 요하문명(遼河文明)과 직접 연결될 수 있고, 게다가 요서지역에서 발굴된 홍산문화(紅山文化, B.C. 4500~B.C.3000)의 옥기(玉器)와 아주 비슷하거든. 더군다나 요하 일대의 요하문명과 앙소문화(仰韶文化, B.C. 4500~B.C. 2500)를 중심으로 하는 황하 일대의 황하문명(黃河文明)이 교류하던 길의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어. 중국 고고학자 고(故) 쑤빙치(蘇秉琦)는 이 고대의 교류길을 ‘와이(Y)자형 문화벨트’라고 이름 붙였는데, 흑피옥 발굴지가 그 한가운데 있지.
이 이야기는 끝이 없어. 연구가 덜 되었으니까. 고조선의 옛 수도가 있는 곳에서 발굴된 흑피옥. 왜 그들은 옥에 검은 칠을 했을까? 노자 늙은이는 왜 피갈회옥(被褐懷玉)에 빗대어 말했을까? 왜 흑피옥 조각물의 1/3은 여성상이고 나머지는 토템신화일까? 노자 늙은이가 말하는 ‘옥=속알’의 참꼴(眞如)은 무엇일까? 늘이어도 뒤바뀌지 않고 달라지지 않는 참올(眞理)의 올이 바로 옥이 아닐까?
70월을 다시 새기면 이래.
https://www.khan.co.kr/culture/scholarship-heritage/article/202301050700001
■김종길은
다석철학 연구자다. 1995년 봄, 박영호 선생의 신문 연재 글에서 다석 류영모를 처음 만났는데, 그날 그 자리에서 ‘몸맘얼’의 참 스승으로 모셨다. 다석을 만나기 전까지는 민중신학과 우리 옛 사상, 근대 민족 종교사상, 인도철학, 서구철학을 좇았다. 지금은 그것들이 모두 뜨거운 한 솥 잡곡밥이다. 함석헌, 김흥호, 박영호, 정양모, 김흡영, 박재순, 이정배, 심중식, 이기상, 김원호 님의 글과 말로 ‘정신줄’ 잡았고, 지금은 다석 스승이 쓰신 <다석일지>의 ‘늙은이’로 사상의 얼개를 그리는 중이다.
■닝겔은
그림책 작가다. 본명은 김종민이다. 대학에서 철학을, 대학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다. <큰 기와집의 오래된 소원>, <소 찾는 아이>, <섬집 아기>, <워낭소리>, <출동 119! 우리가 간다>, <사탕이 녹을 때까지> 등을 작업했다. 시의 문장처럼 사유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으로 독자들과 만나는 작가다.
김종길 다석철학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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