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즉석밥 1위 햇반의 '남모를' 고민
1년에 5억개 이상 버려져…대부분 소각
수거 캠페인 진행했지만 30만개 그쳐
학창시절에 특정 브랜드 제품이 그 제품군 전체를 아우르는 보통명사처럼 쓰이는 사례들을 배우곤 했습니다. 스테이플러를 호치키스라고 부르거나, 굴삭기를 포크레인으로, 복사기를 제록스라고 부른다는 예시들이 대표적이었죠.
2000년대 이후로는 이 예시에 하나를 더 추가할 수 있을 겁니다. 바로 CJ제일제당의 즉석밥 브랜드 '햇반'입니다. 오뚜기나 동원, 하림 등이 비슷한 즉석밥을 내놓고 있지만 다 햇반이라고 불리죠. 햇반이 즉석밥의 원조인 동시에 압도적인 시장 1위 브랜드인 덕입니다.
이같은 인기에 힘입어 햇반은 비비고, 스팸과 함께 CJ제일제당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매년 팔리는 햇반만 5억개가 넘습니다. CJ제일제당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미지가 햇반이라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만하면 '효자'라 부를 만하겠죠.
그런데 이 효자 햇반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슈가 있습니다. 바로 햇반 용기의 재활용 문제입니다. 1년에 5억5000만개가 팔린다고 말씀드렸죠. 그만큼 버려지는 용기 양도 어마어마합니다. 햇반 용기 1개는 약 10g 안팎입니다. 5억5000만개면 5000톤이 넘는 무게입니다.
이 햇반 용기는 일반 플라스틱 쓰레기와 조금 다른 취급을 받습니다. 햇반 용기는 우리가 플라스틱으로 분류해 재활용하는 폴리프로필렌(PP)이 95%를 차지하지만 5%는 다른 성분이 들어 있는 복합 플라스틱입니다. 이 때문에 분리수거 시 'OTHER(기타)'로 분류됩니다.
이 복합 플라스틱을 재활용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플라스틱 재활용 과정보다 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요. 이 때문에 햇반 용기를 일반 플라스틱으로 분리수거하면 재활용되지 않고 대부분 소각됩니다.
5000톤은 적지 않은 양입니다. CJ제일제당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친환경 패키징 기술' 개발로 햇반을 만들며 아낀 플라스틱의 양이 연 60톤이라고 합니다. 버려지는 햇반 용기의 1% 남짓입니다. 명절마다 이슈가 되는 스팸의 '노란 플라스틱 캡'을 없애 절감한 플라스틱도 446톤에 불과했습니다.
CJ제일제당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햇반 용기는 햇반 용기만을 따로 수거할 수 있다면 재활용이 가능합니다. 지난해에는 사용한 햇반 용기를 수거박스에 20개 이상 담아 돌려보내면 포인트를 돌려주는 '지구를 위한 우리의 용기' 캠페인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성과는 미미했습니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 초 이 캠페인을 시작하며 연 400톤의 햇반 용기를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30톤 정도가 돌아오는 데 그쳤습니다. 회수 캠페인을 벌인 CJ더마켓의 접근성이 낮았던 점, 깨끗하게 씻기 힘든 햇반 용기를 20개 이상 모아야 하는 게 불편했다는 점 등이 이유로 꼽힙니다.
이마트나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에 햇반 용기 전용 수거함을 설치하기도 했지만 소비자들의 참여도가 낮아 유명무실한 상태입니다. 소비자가 받을 수 있는 혜택이 거의 없는 데 비해 사용한 용기를 씻어 보관했다가 마트에 갈 때마다 가져가서 버려야 하는 불편함은 컸기 때문이죠.
올해엔 아파트 단지의 쓰레기장 등에 햇반 용기를 수거할 수 있는 곳을 만들어 분리 배출 시 햇반 용기를 따로 버릴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안도 추진 중입니다. 다만 이 방법 역시 소비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합니다. 햇반 전용 분리수거함을 설치하는 것도 만만찮은 과제구요.
아예 햇반 용기를 100% 재활용 가능한 플라스틱으로 만들면 안 될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CJ제일제당은 제품의 보관성에 문제가 생긴다는 입장입니다. 햇반 용기는 산소와 미생물을 차단하고 햇빛, 온도, 습도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플라스틱 사이에 산소차단층을 끼워넣는 3중 재질로 만듭니다. 분리수거를 위해 이를 제외하면 지금처럼 상온에서 9개월의 소비기한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겁니다.
현재로서 CJ제일제당이 할 수 있는 건 용기 반납을 유도할 수 있도록 반납 혜택을 늘리거나 소비기한을 유지하면서 재활용도 할 수 있는 재료 조합을 찾아내는 일일 겁니다. 후자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전자는 조금 더 '성의'를 보이면 가능한 일입니다. 조금 더 많은 곳에 수거함을 설치하고, 반납 시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즉각적인 보상이 필요합니다.
처음 출시된 1996년 이후 햇반은 25년째 시장 1위를 굳건히 지키며 즉석밥의 대명사이자 대표 브랜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앞으로의 25년은 햇반이 '분리수거도 안 되는 플라스틱'의 대명사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대표'의 무게 아닐까요.
김아름 (armijjang@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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