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신용위기보다 무서운 신뢰위기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는 규범의 바탕이 되는 신뢰는 질서를 유지하고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사회적 자본이다. 신뢰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의 길을 넓혀 각 경제주체 간의 잠재능력을 융합시켜 크게 만드는 시너지 효과를 가진다. 특히 위기상황에서 조직과 사회의 대응능력을 결집시켜 불확실성을 극복해나가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당장은 지불능력이 있더라도 예측하기 어려운 비이성적 행동을 하는 개인이나 기업은 신뢰를 잃게 돼 미래를 예측하지 못한다. 경제위기가 닥치면 각 경제주체들 사이에 신용경색(credit crunch)을 넘어 신뢰위기(crisis of trust) 상황이 벌어져 일각에서 높은 금리를 지불해도 돈이 돌지 않는 상황이 벌어진다.
기업부채, 가계부채, 정부부채 늘어나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시장에서 결제능력에 대한 의문이 번져가고 있다. 어이없게 불거진 ‘레고랜드 사태’는 한국정부 나아가 한국경제에 대한 대내외 신뢰도에 타격을 입혔다. 일부 보험사들이 이미 약속한 신종자본증권 조기상환 거부사태는 한국채권시장의 신뢰를 대내외로 추락시켰다. 그로 말미암아 해외시장에서 한국의 외화표시 신종자본증권의 가격이 한때 40% 가까이 떨어지기도 했다. 높은 신인도를 자랑하던 채권을 해외에서 발행하려면 과거에 비해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 했다.
일시적 자금경색 해소는 몰라도 중장기에 있어 사회적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기본원칙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황당한 원화강세 정책으로 1997년 보유외환고가 바닥이 난 지경에서 고위 경제 관료가 한국기업이 발행하는 외화표시 채권을 한국정부가 지급 보증하겠다고 했다. 한국의 신용등급은 급전직하 추락하고 한국에 대한 신뢰는 가파르게 추락했다.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구분하지 못하고 생색 내려는 떠벌림효과(profess effect)를 자제해야 한다는 커다란 교훈이다. 임시변통의 미봉책은 언제나 신뢰를 떨어뜨리고 가계와 기업의 의존심리만 키워 자생력을 퇴화시킨다.
지난해 9월말 현재, 우리나라 거주자의 비거주자에 대한 금융자산 및 금융부채 상황을 나타내는 통계인 국제투자대조표(IIP)의 순대외금융자산(대외금융자산-대외금융부채)은 7860억 달러에 이른다. 한국경제는 장기간의 수출주도 성장의 결과로 신용능력은 상당히 쌓여 원화 방파제는 그래도 탄탄한 편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경제주체들 사이에 신뢰가 약해져가는 상황이 더 큰 문제다. 고금리는 미국의 금리인상이 큰 원인이라고 하지만 시중에서 유수기업의 돈가뭄 현상은 돈이 없어서가 아닌 상호신뢰 저하로 돈이 돌지 않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오늘날 정치·사회적 신뢰도가 낮은 상황에서 경제적 신뢰까지 추락하게 되면 각자도생의 길을 각오해야 할지도 모른다. 신용붕괴와 신뢰추락 상황이 벌어지면서 자금경색 나아가 경제 경착륙 조짐을 불식시키기 어려운 지경이다. 공자의 논어에선 “예로부터 누구나 다 죽음이 있거니, 백성들은 신의가 없으면 설 수 없다(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고 했다.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신뢰가 무너지면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니 삶의 가장 소중한 가치는 사람과 사람과의 믿음이라는 의미다.
송길호 (khso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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