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변호사가 "보험 가입하세요" 권유한 사연
도덕적 해이 부추길라…보험업계 상품출시 눈치
검찰 기소 전 경찰 조사단계부터 선임한 변호사 비용을 보장하는 '자동차사고 변호사 선임비용 특약'이 이달 말부터 줄줄이 출시될 전망입니다. DB손해보험이 지난 11월 말 손해보험협회로부터 획득한 3개월의 배타적 사용권 기한이 만료된 데 따른 것입니다.
배타적 사용권 만료에 맞춰 다른 보험사들이 비슷한 상품을 내놓는 건 어제 오늘일이 아닙니다. 가깝게는 코로나19 백신 접종 뒤 나타날 수 있는 알레르기 반응중 하나인 아나필락시스 쇼크 진단 보장 보험이 있었죠. 삼성화재의 '응급의료 아나필락시스 진단비' 특약의 배타적 사용권이 끝나자 마자 DB손보·KB손보·현대해상·교보라이프플래닛 등 보험사들이 관련 특약 또는 주계약 단독 상품을 잇달아 내놨으니까요.
그런데 DB손보의 특약상품을 놓고는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습니다. 일부 보험사들은 매출을 끌어올릴 신호탄으로 해석하고 있는 반면, 다른 보험사들은 눈치보기 또는 경쟁사 탐색전에 한창입니다. 앞으로 이 상품이 회사에 이득이 될지 손해가 될지 따지느라 바쁘게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거죠.
"경찰 조사만 받아도 보험금 지급"
기존 운전자보험에서도 변호사 선임비용을 대주지 않은 건 아니었습니다. 다만 경찰 조사를 마치고 정식 기소 상태이거나, 재판을 받고 있거나, 실제 구속이 됐을 때만 보험금 청구가 가능했죠. 쉽게 말해 정식 재판 과정이 진행돼야 변호사 선임비용을 받을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DB손보의 특약은 '타인 사망 및 12대 중과실 사고' 등 중대법규 위반 교통사고에 대해 당초 업계에서 보장하지 않던 약식기소나 불기소, 나아가 경찰 조사(불송치) 단계에서 쓴 변호사 선임 비용까지 보장해줍니다.
12대 중과실에 해당하는 횡단보도 보행자 사고를 내고 피해자가 심장파열 수술(부상등급 1급) 등을 했다면 검찰 기소 뒤 재판이 진행돼 변호사 선임비로 최대 5000만원이 나오는 식입니다.
손보협회에서 배타적 사용권을 획득한 이유죠. 경찰 조사부터 사건 종결까지 실질적인 보험편익을 제공해 선량한 소비자의 적극적인 자기 방어를 지원해준다는 겁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사고시 변호사 선임 장벽이 낮아졌다는 데 의의를 둘 수 있는 소비자에게 좋은 상품"이라고 했죠.
'노다지'로 떠오르는 이유?
문제는 보장범위가 넓고 보상 횟수 제한이 없다는 데서 발생합니다. 일부 보험설계사와 변호사를 중심으로 이 특약이 거액의 보험금을 쉽게 받을 수 있는 잠재적인 '노다지' 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운전면허를 이제 막 취득한 초보 운전자 A씨가 집 근처에서 도로주행 연습을 하다가 인도 위로 차를 올려버리는 도보 침범을 했다고 가정합시다. 도보 침범은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는 12대 중과실중 하나죠.
그런데 이 일로 지나가던 행인이 놀라 넘어져 왼쪽 발목을 삐었고 경찰이 출동했습니다. 결과적으로 A씨는 12대 중과실 사고로 형사처벌을 받게 됐고 경상환자(부상등급 14등급)가 발생해 가해자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됐죠.
통상 경찰 조사시 변호사를 동행하면 의견개진, 조사과정 확인, 피의자 신문조서 검토 등을 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별도로 변호사 자문을 받는 경우 건당 5만~10만원 수준이죠.
하지만 A씨가 DB손보의 특약에 가입했다면 경찰 조사만 받아도 최대 500만원 한도내 실손보장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보험금 지급액이 보험가입자가 선임한 변호사가 발행한 세금 계산서를 기준으로 하니까요. 이 과정에서 얼마를 청구할지는 변호사 마음이고요.
계속(반복) 보장이 가능하다는 것도 잊어선 안됩니다. 보험업계 일부에서는 "몇몇 변호사가 자신의 개인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이례적으로 DB손보의 특약을 소개하고 있는 점이 심상치 않다"고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죠. 확률은 낮겠지만 선량한 소비자들이 자기도 모르는 새 보험사기에 연루될 가능성도 있다는 겁니다.
A씨의 사례를 악용하면 변호사와 금융소비자가 공모해 경찰 조사 뒤 500만원의 보험금을 일시에 지급받고 풀려나 페이백하는 형태의 보험사기가 나타날 수 있다는 관측이 벌써부터 나오죠.
실손의료보험(실손보험) 가입자가 브로커를 통해 소개받은 안과 병원에서 백내장 수술을 받고, 보험금을 타 '브로커-의사'와 나눠 갖는 일이 빈번했던 것처럼요. ▷관련기사 : 백내장 과잉진료 논란에 공정위로 몰려간 손보사들(2021년 10월 3일) DB손보의 특약이 변호사들의 또 다른 수익창고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겁니다.
벌써부터 모럴해저드 논란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신을 보험설계사라고 밝힌 B씨는 DB손보 특약 악용 우려를 제기했습니다. 그는 "도수치료, 백내장 수술 등을 받기 위해 실손보험도 악용하는 사람이 많다"며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를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죠.
보험업계는 이마저도 소비자에게 직접 보험상품을 안내하는 설계사가 보험금을 '쉽게 타갈 수 있는 돈'으로 취급, '먼저 타가는 게 임자'라는 나쁜 생각을 심어줄 수 있다고 경계합니다.
현재는 배타적 사용권 기간이라 DB손보만 해당 특약을 판매하고 있지만 다른 보험사들까지 줄지어 비슷한 상품을 내놓으면 논란은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실손보험으로 막대한 적자를 보고 있는 와중에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는 상품을 개발·판매해 스스로 회사 건전성을 해치고 있다는 쓴소리가 나올 건 당연지사겠죠.
보험사 한 관계자는 "지나치게 공격적인 상품은 소비자 이익이 큰 대신 보험사 이익 감소를 유발하기 때문에 반짝 인기몰이를 한 뒤 절판 수순을 밟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다른 관계자는 "실손보험도 출시 당시엔 보험사 히트상품이었다"며 "미래에 닥칠 위험을 알면서도 지금 당장 먹고사는 문제에 급급해 수익성 악화라는 부메랑을 맞는 일이 보험업계에서 얼마나 반복돼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쉽니다.
김희정 (khj@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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