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 꽉 찼는데 일할 사람 없다’…조선 인력난에 씁쓸한 호황

2023. 1. 12.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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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임금·원하청 이중 구조 문제 얽히고설켜
친환경·디지털로 체질 개선이 해법
[비즈니스 포커스]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서문으로 직원들이 출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조선업은 일이 힘들고 위험한데 임금을 못 올려주니 평택 건설 현장에 간 후 돌아오지 않고 무안에 양파 뽑는다고 가고 밀려난 단순 노무직만 남았다.”
(하청 A사 대표)


불황기에 이탈한 숙련공이 돌아오지 않고 있고 청년 인력은 취직을 기피하는 상황에서 외국인 인력 등 땜질식 처방에 급급했던 결과다. 이대로 가다가는 어렵게 쌓아 올린 조선업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조선업계는 역대급 수주 호황에도 웃지 못하고 있다. 독(dock)은 가득 채웠는데 정작 배를 만들 사람을 구하지 못해서다.

 

 ‘수주 잭팟 터졌는데’…극심한 인력난에 발목

한국조선해양·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조선 빅3는 2022년 연간 수주 목표치 초과 달성에 성공했다. HD현대(구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은 총 197척, 239억5000만 달러어치를 수주해 연간 수주 목표 금액의 137.3%를 달성했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도 연간 수주 목표량을 초과 달성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친환경 에너지 수요 증가로 액화천연가스(LNG) 사용량이 증가하면서 이를 운송하는 LNG 운반선 수요가 급증했다. 조선업계 최대 먹거리였던 24조원 규모의 카타르 LNG 프로젝트에서 한국의 조선 3사가 물량을 대거 수주한 것도 연간 수주 목표치 조기 달성에 일조했다. 카타르 LNG 프로젝트 1단계 물량에서 대우조선해양(19척)·삼성중공업(18척)·한국조선해양(17척)은 총 54척을 수주하며 약 16조원 규모의 일감을 확보했다.

조선업계가 모처럼 찾아온 호황 국면에서 중국에 내줬던 세계 수주량 1위 탈환을 노리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인력난이 조선업 부흥의 발목을 잡고 있다. 호황기에 대규모로 인력을 고용했다가 불황기에 구조 조정을 반복하면서 숙련공들이 안정적이고 처우가 좋은 해외로 유출되면서 인력난이 만성화됐다.

현장 인력 확보에 비상이 걸린 조선업계는 생산 차질을 막기 위해 단기 외국인 인력 고용을 늘리고 공정 축소로 대응에 나섰다. 앞서 정부는 인력난 해소를 위해 2022년 4월 조선업 관련 특정 활동(E-7) 비자 발급 기준을 대폭 완화하기도 했다. 수요가 많은 도장공과 용접공은 그동안 각각 연 300명·600명만 E-7 비자로 들어올 수 있었는데 이 쿼터제를 폐지한 것이다.

2022년 6월 말 기준 조선 빅3와 케이조선·대한조선 등 7개 조선소와 협력사에 취업 중인 외국인은 6031명으로 계속 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최근 인도네시아 국적의 용접 전문 인력 41명을 생산 현장에 투입했다.

삼성중공업과 협력 업체에 취업한 외국인 인력은 2022년 말 782명으로 늘었다. 삼성중공업은 올해 1200여 명까지 고용을 확대할 예정이다. 현대중공업은 1000명 이상의 외국인 인력을 채용할 계획이다.

하지만 외국인 단기 인력이 숙련공의 빈자리를 채우기엔 역부족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숙련된 노동자들을 길러내는 방향으로 인력을 양성해야 하는데 숙련공 명맥이 끊기고 있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의사소통과 안전 문제도 있다. 현대중공업노조는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에 중국·베트남·우즈베키스탄 등 17개 국가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가 최소 1200여 명 일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며 “비자 완화로 들어온 조선소 외국인 노동자에게 모국어 안전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전남 영암에 있는 현대삼호중공업 조선소 독에서 액화천연가스(LNG) 이중 연료 추진 컨테이너선에 LNG 연료 탱크를 탑재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한국조선해양 제공


 

 숙련공 유출이 지방 소멸까지 부추겨

업계에선 외국인 인력은 한시적 대책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풍요 속 빈곤 상태에 놓인 조선업의 고질적인 인력난 이면엔 하청 노동으로 지탱되는 기형적 구조(원·하청 임금 이중 구조 문제)와 지역 소멸, 탄소 중립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먼저 고된 노동과 저임금 등 열악한 처우 문제다. 조선해양인적자원개발위원회에 따르면 2022년 10월 말 기준 조선업 종사자 수는 9만5030명으로, 2014년 20만3441명 대비 약 55% 줄었다. 조선업 종사자 중 전체 생산직의 70%(4만8000명)가 하청 업체 소속이고 용접·도장 등 직접 생산 인력(5만1000명)의 80%(4만명)가 하청 업체 소속이다.

조선업 노동 시장은 2016년 불황 이후 대대적인 구조 조정을 거치면서 ‘원청(직영)-하청(사내·사외)-물량팀’의 다단계 구조가 고착화했다. 중국과의 저가 수주 경쟁으로 조선업계가 원가 절감에 나서면서 원청은 임금 동결, 하청은 임금이 삭감됐고 일자리의 질은 더욱 열악해졌다. 원·하청 임금 격차 등 심화된 이중 구조는 결국 2022년 대우조선해양의 하청 노조 파업 사태를 촉발했다.

주52시간 근무제도 조선업의 인력난을 부추겼다. 야근과 특근을 통해 비교적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던 이점이 주52시간 근무제로 사라지면서 인력이 유출됐다는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주력 산업에 속하는 415개사를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조선 업체의 52.2%가 현재 인력이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중소 조선업 노동자 73.3%는 주52시간 근무제로 임금이 감소했고 도입 전과 비교해 월평균 60만원 정도 감소했다고 답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 조선업 노동자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다.

조선업 인력난은 조선소가 지역 경제를 떠받치는 주요 도시의 인구 유출로 인한 지방 소멸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산업연구원이 전국 228개 시·군·구의 지방 소멸 위험도를 조사한 결과 울산 조선업의 중심지인 동구는 ‘소멸 우려’ 지역으로, 중구는 ‘소멸 위기’ 단계로 나타났다.

일할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외국인 단기 인력에 의존하게 되고 외국인 단기 인력마저 더 양질의 일자리를 찾아 다른 도시로 떠나면서 다시 지방 소멸 위기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정부의 ‘산업 기술 인력 수급 실태 조사’에 따르면 한국 조선업 산업 기술 인력은 2017년 약 6만3000명에서 2021년 5만8000명으로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젊은 인력의 유입은 갈수록 줄어들고 고령화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조선업 생산직 부족 규모는 2022년 4분기 6625명에서 2023년 1분기 7453명, 2분기 1만711명으로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인력난을 타개하기 위한 또 다른 대책으로 미래 기술 개발과 전문 인력 양성도 중요하다. 그동안 노동 집약적인 중후장대 산업이었던 조선업이 친환경·디지털 전환 패러다임 변화에 맞춰 고부가 가치 산업으로 체질을 전환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조선업계는 생산 공정의 자동화와 디지털화에서도 해답을 찾고 있다. HD현대그룹·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조선 3사는 수소·암모니아 기반의 무탄소 선박, 자율 운항 선박 기술 확보에 매진하고 있다.

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 등 HD현대그룹 조선 계열사는 2030년까지 디지털 기반의 미래형 스마트 조선소(FOS)로 전환하기 위해 FOS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HD현대는 자율 운항 전문 회사인 아비커스를 통해 사람 대신 인공지능(AI)이 선장 역할을 하는 자율 운항 선박을 개발하고 있다. 2단계 자율 운항 솔루션인 ‘하이나스(HiNAS) 2.0’ 기술 상용화에 성공해 SK해운·장금상선 등 한국 선사 2곳의 23척 대형 선박에 탑재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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