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의 시대]② 공구점·기계상 사이 포르쉐·디올 매장이... ‘팝업 성지’ 성수동 가보니

김은영 기자 2023. 1. 12. 06: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성수역 인근에만 팝업스토어 10여 개
2만원짜리 라떼 파는 디올부터 신라면 끓여 먹는 팝업까지
운동화 꾸미기 워크숍엔 2만 명 몰려
방문객들 “인스타 보고 찾아와”… 놀거리 많을수록 사람 몰려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위치한 포르쉐 팝업스토어에서 방문객들이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 있다. /김은영 기자

“지금 보시는 클래식 카는 1991년에 제작됐습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차주가 특별히 대여해 주셨죠. 1963년부터 제조된 포르쉐 차량의 70% 이상이 아직도 도로 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9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 건물, 오후 4시가 되자 도슨트(안내인)의 설명이 시작됐다. 그는 전시 중인 짙은 남색의 포르쉐 964 카레라2와 전기 스포츠카 타이칸 투리스모를 소개했다.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포르쉐의 원칙에 따라 전시장 집기를 재활용 가능한 종이로 제작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곳은 포르쉐코리아의 공식 판매사인 세영모빌리티가 지난해 11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포르쉐 나우 성수’ 팝업스토어(임시 매장)다. 538㎡(163평) 규모의 폐건물에 클래식 자동차와 전기차를 전시해 포르쉐의 과거와 미래를 선보인다. 그래픽 아티스트 샘바이펜의 그래피티 작품을 전시하고, 연남동 비건 카페 펠른의 음료와 디저트도 들였다. 전시장에 있는 6개의 QR코드를 모두 찍으면 여행용 가방과 포르쉐 열쇠고리 등 경품을 증정한다.

딸기 우유를 연상케 하는 프로즌베리 색상의 타이칸을 직접 타볼 수도 있다. 함께 설명을 듣던 여성 두 명은 도슨트의 설명이 끝나자 차량에 번갈아 탑승하며 사진을 찍어줬다. 이들은 “인스타그램을 보고 찾아왔다”며 “일반 수입차 전시장에는 선뜻 들어가기 어려운데, 여기서는 부담 없이 타보고 이벤트도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팝업 성지’로 부상한 성수… 디올부터 신라면까지

‘한국의 브루클린’이라 불리는 성수동이 팝업스토어 성지로 부상하고 있다. 지하철 2호선 성수역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팝업스토어 10여 개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리고 있다. 기자는 구글 지도 애플리케이션(앱)에 위치를 표시해 놓고 미션을 수행하듯 골목을 탐험했다. 명품, 패션, 화장품부터 자동차, 식품, 인테리어까지 장르도 다양했다.

그래픽=편집부

포르쉐 팝업스토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는 이날부터 신라면 팝업스토어가 열렸다.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서 선보인 식당을 재현한 것으로, 신라면 봉지를 연상시키는 빨간 대형 파사드(외벽)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기존 신라면보다 3배 매운 ‘신라면 제페토 큰사발’을 비롯해 라면을 취향대로 조리해 먹을 수 있다. 신라면 봉지 모양의 무릎 담요와 컵라면 모양의 그립톡 등 기념품(굿즈)도 판매한다.

시식은 총 6회, 회당 20명으로 인원을 제한했다. 한 방문객은 “사실 제페토 라면을 이미 집에서 맛봤지만, 이런 곳에서 경험하는 건 또 다른 묘미”라며 방문 이유를 설명했다.

카페거리로 자리를 옮기자 더 많은 팝업스토어를 만날 수 있었다. 이곳의 터줏대감은 프랑스 명품 디올이다. 디올은 작년 5월부터 ‘디올 성수’라는 팝업스토어를 운영하고 있다. 파리 몽테뉴가 30번지에 있는 매장을 그대로 재현한 외관으로, 성수동의 빼놓을 수 없는 포토 스팟(사진 찍기 좋은 곳)이 됐다.

예약해야만 들어갈 수 있던 초기와 달리 이제는 예약 없이도 매장을 방문할 수 있다. 그러나 카페의 경우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한다. 아메리카노 1만9000원, 카페라떼 2만원으로 꽤 높은 가격이지만, 예약 경쟁이 치열하다. 디올 측은 원래 작년 11월까지 팝업스토어를 운영할 예정이었지만, 반응이 좋아 운영 기한을 연장했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열리고 있는 신라면 팝업스토어 앞에서 한 방문객이 사진을 찍고 있다.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 내 매장을 재현했다. /김은영 기자

◇놀이터가 된 팝업… 신발 꾸미기 워크숍에 2만 명 몰려

기업들이 팝업스토어 장소로 성수동을 선호하는 이유는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출생)가 모이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가 적당히 공존해 특별한 목적이 없이도 부유(浮遊)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실제 팝업스토어에서 만난 이들 대부분은 20~30대였다. 특히 놀거리와 먹을거리 등 체험 요소가 많을수록 사람이 몰렸다. 소셜미디어(SNS)에 자랑할 만한 사진이 찍히는, 이른바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공간이면 관심은 배가됐다. 하긴, 돈이 없어도 실컷 놀고 인증샷까지 남길 수 있으니 이보다 매력적인 장소가 있을까.

프레피 룩(Preppy look·미국 고등학교 학생들의 교복을 본뜬 패션)의 대명사인 폴로 랄프로렌은 졸업식을 주제로 팝업스토어를 운영 중이다. 마치 미국 고등학교의 졸업식장처럼 꾸민 공간에서 준비된 가운과 학사모를 착용하고 졸업 사진을 남길 수 있다. 한 방문객은 “졸업한 지 꽤 됐는데 외국 학교를 졸업하는 기분을 낼 수 있어 색다르다”라고 말했다.

지난 6일 '아더에러 x 컨버스' 팝업스토어의 워크숍 현장. 200명 정원의 운동화 꾸미기 워크숍에 2만 명이 넘는 이들이 응모했다. /김은영 기자

지난 주말(6~8일) 패션 브랜드 아더에러와 컨버스가 협업 상품 출시를 기념해 연 팝업스토어도 체험 콘텐츠로 젊은이들을 끌어모았다. 예술 작품과 협업 상품 전시, 워크숍, 공연 등을 진행했는데, 3일간 총 4100여 명이 방문했다. 특히 컨버스의 ‘척 70 하이’를 커스터마이징(맞춤 제작)하는 워크숍에는 200명 모집에 2만 명 이상이 응모했다.

임수진 아더에러 브랜드팀장은 “팝업스토어는 단순히 제품을 파는 곳이 아니라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정체성)를 보여주는 일종의 프레젠테이션”이라며 “우리가 추구하는 것들을 미술과 음악, 공간과 함께 보여줄 때 사람들은 더 재미있는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신상도 B2B 기업도 ‘팝업’으로 만나요

기업 간 거래(B2B) 기업도 팝업스토어를 소비자 접점을 높이는 툴로 활용하고 있다. 인테리어 기업 LX하우시스는 무신사 테라스 성수점에서 올해의 인테리어 트렌드를 제안하는 팝업스토어를 선보였다. 이 회사는 최근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 확대를 위해 소비자 접점을 넓히고 있다.

이탈리아 화장품 브랜드 토일렛페이퍼뷰티의 팝업스토어가 열리는 LCDC서울 전경. /김은영 기자

이탈리아 화장품 브랜드 토일렛페이퍼뷰티도 팝업스토어를 통해 한국 고객들과 첫 만남을 가졌다. 지난 4일부터 복합문화공간 LCDC서울에서 화장품과 리빙 제품을 전시 중이다. 토일렛페이퍼의 유머러스한 삽화가 들어간 거울과 소파 등을 배경으로 제품을 착용하고 사진을 찍어볼 수 있다.

팝업스토어가 성행하다 보니 전용 공간을 운영하는 곳도 생겨났다. 프로젝트렌트, 대림창고, 에스팩토리, 퓨처소사이어티 등이 대표적이다. 온라인 쇼핑몰 무신사의 무신사 테라스와 29cm 이구성수, 편의점 GS25가 만든 도어투성수 등도 매장 일부 공간을 팝업 공간으로 활용한다.

대관료는 규모와 장소에 따라 다르지만, 목 좋은 공간의 경우 하루 대관비가 500만원에서 3000만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도 업계 관계자들은 강남보다 성수가 저렴하고 효율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성수동 중대형 임대료는 1㎡당 4만3700원으로 강남대로(10만6500원), 압구정(4만7500원), 도산대로(4만6300원)보다 저렴했다.

팝업 플랫폼 프로젝트렌트를 운영하는 최원석 필라멘트앤코 대표는 “강남이 차가 몰리는 거리라면, 성수동은 사람이 걷는 거리”라며 “성수동은 작고 재미있는 콘텐츠가 들어왔을 때 이를 수용하고 즐길 수 있는 소비자들이 많다. 기업 입장에선 브랜드를 홍보하거나 신사업을 시험하기에 제격”이라고 말했다.

작년 5월부터 운영 중인 디올 성수. 당초 지난해 11월까지 운영될 예정이었으나, 기간을 연장했다. /김은영 기자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