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속 노다지 캐는 ‘심해채광 시대’ 코 앞인데… 韓은 20년 개발한 기술 방치
선진국, 기술 개발 후 규제 완성만 기다려
한국은 20년 개발한 독자 기술 사실상 유기
해수부 “규제 완성 등 상황 따라 R&D 재추진”
유엔 산하 기관인 국제해저기구(ISA)가 내년쯤 심해채광 규제안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규제안이 나오면 ISA에 가입한 국가나 기업은 심해에 묻힌 희귀광물 채굴이 가능해진다. 심해채광 시대가 코 앞으로 다가왔지만, 정작 한국에게는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20년에 걸쳐 관련 기술을 개발했지만, 법·제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탓에 기술이 사실상 사장됐기 때문이다.
12일 ISA 법률기술위원회 측에 따르면 ISA 회원인 국가, 기업들이 심해채광을 할 때 적용받을 규제안이 상당 부분 완성된 상태다. ISA는 과도한 심해채광이 해양오염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적정선을 마련하기 위해 2016년부터 규제안 작성에 들어갔다.
ISA에서 직접 규제안을 만들고 있는 주세종 ISA 법률기술위원은 “규제안은 90% 수준까지 완성된 상황”이라며 “다만 ISA 회원국들 사이에 규제안에 대한 이견이 있어 이를 조정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주 위원은 “올해 중순까지 규제안을 완성하는 게 원래 목표였으나 내년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규제 완성만 바라보며 심해채굴 기술을 개발해온 국가, 기업들 불만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에 ISA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ISA가 규제안을 내놓으면 본격적인 ‘심해채광 시대’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이미 심해채광에 필요한 기술은 대부분 완성된 상태다. 캐나다 기업인 메탈스컴퍼니는 심해채광용 로봇을 개발해 지난해 9월부터 태평양에서 성능 시험 중이다. 독일과 벨기에는 이미 기술을 완성한 상태에서 심해채굴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자체적으로 평가하는 수준에 있다.
이들이 심해채광으로 얻으려는 건 ‘망간단괴’라 불리는 감자 크기의 검은색 광물덩어리다. 망간단괴는 망간(Mn), 코발트(Co), 등 40여종의 금속 물질을 함유하고 있는데, 4분의 1 이상이 망간으로 이뤄져 있다. 망간은 스마트폰이나 전기차에 들어가는 리튬이온전지 제조에 필요한 핵심 재료다. 망간단괴는 전 세계 심해에 1조7000억t 매장돼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도 1996년 ISA에 가입했다. 한국은 하와이에서 동남쪽으로 2000㎞ 떨어진 곳에 위치한 ‘클라리온-클리퍼톤 해역’에 7.5만㎢에 이르는 지역에 묻힌 망간단괴를 채굴할 수 있는 권리를 2002년에 확보했다. 이곳에 묻힌 망간단괴는 5억6000만t 수준으로 경제적 가치만 500조원을 넘어간다.
문제는 기술이다. 한국 정부는 1994년부터 심해채광에 필요한 기술 개발에 나섰다. 2016년에는 세계 최초로 실증까지 성공했다. 심해광물을 캐는 로봇 ‘미내로’와 심해광물을 해수면에 있는 선박까지 올려보내는 양광기술을 만든 뒤 세계 최초로 실증시험까지 거쳤다. 당시만 해도 한국의 심해채광 기술이 세계에서 가장 앞선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2016년 이후 지원이 끊기면서 지금은 선진국에 비해 기술 수준이 뒤처진 상태다. 정부 차원의 기술 개발을 중단하고 민간에 기술을 이전하려고 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법·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탓에 기술 이전도 성사되지 않았다. 2018년과 2019년, 2020년에 관련 법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무관심 속에 모두 폐기됐다.
양희철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책임연구원은 “심해채광에 뜻이 있는 국가들이 모두 국내법을 만들고 있었기에 그 흐름을 따르려 했다”며 “그러나 당시 국회가 법안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추진력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미내로와 양광기술 개발에 참여한 다른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소관부처인 해수부도 해당 법안 통과에 소극적 모습을 보였다는 말이 나온다.
해수부 관계자는 “상업적 심해채광이 가능한 수준까지 기술을 마저 개발할지 여부는 ISA가 규제를 완성했는지, 망간을 비롯한 해저광물에 대한 국내 수요가 어느 정도인지 등 복합적 상황을 고려해서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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