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향’ 전주의 ‘에스닉 재즈’ 밴드 고니아 “국악 장단에 재즈 선율···‘K-재즈’ 개척 꿈꿔”[서울 밖 뮤지션들②]
익숙한 국악 장단 위에 재즈가 앉았다. 베이스·기타·장구 세 악기로 만드는, 국악인데 재즈이고 재즈인데 국악인 음악. ‘에스닉 재즈’ 밴드 고니아가 만드는 오묘한 음악의 세계는 이렇게 빚어진다. 다른 곳도 아닌 예악(藝樂)의 고장 전북 전주에서.
경향신문 신년기획 ‘서울 밖 뮤지션들’이 소개하는 두 번째 뮤지션은 전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밴드 고니아다. 이 기획은 비수도권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뮤지션과 로컬 인디 신을 들여다본다.
② 전주의 ‘에스닉 재즈’ 밴드 고니아
“저희를 설명할 때 ‘트렌드 오브 코리안 재즈’라고 해요. 국악 장단 위에 재즈의 선율을 얹어서 만든 음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2일 전주 완산구의 연습실에서 만난 고니아는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했다. 고니아는 리더이자 기타리스트인 김형택(45)과 베이스 김민성(43), 객원 멤버인 김현정(28)까지 3인조로 활동한다. 2008년 1집 앨범 <콰이어트 타임>으로 데뷔해 지금까지 10여장의 앨범(싱글, EP 포함)을 낸 베테랑 뮤지션이다. ||||
지난 16년간 고니아의 음악은 변화무쌍했다. 데뷔 초기와 현재의 음악을 들어보면 ‘같은 팀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다. 결성 당시만 해도 고니아는 CCM(기독교 음악) 기반 재즈 그룹이었다. 고니아라는 팀명도 히브리어로 ‘모퉁이돌’을 뜻한다. “둘 다 기독교인이고 재즈를 전공했으니 CCM 재즈를 해보자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교회에 필요한 건 감상 음악이 아닌 예배 음악이더라고요.”(김형택)
1집 활동을 마친 뒤 방향을 틀었다. 본격적인 재즈 앨범이자 2집인 <더 저니 오브 고니아>가 나오기까지 6년이 걸렸다. 또 한 번의 변화는 2018년에 찾아왔다. 국내 재즈 신을 넘어 해외 무대로 눈을 돌리던 때였다. 해외 음악계 관계자들은 ‘한국적인 색깔이 들어간 음악’을 원했다. 리더 김형택은 20대 초반 국악원에서 대금과 장구를 배운 기억을 떠올렸다.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는 것은 뭘까 고민하다 장구를 메인으로 한 에스닉 재즈를 해보기로 했습니다.”(김형택)
재즈와 국악이라는 이질적인 두 음악의 결합은 옷 갈아입듯 간단하지 않았다. 실용음악과에서 재즈를 전공한 두 사람은 국악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김형택은 “장구는 음높이가 따로 없는 악기여서 드럼과 함께할 때와 달리 빈 공간을 메우는 게 큰 고민이었다”며 “10개 곡을 만들면 8~9개는 버려야 하는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설명했다. “하고 싶고 또 사랑하는 이 일을 계속하기 위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라 할 수 있죠.”(김민성)
지금의 ‘고니아 스타일’이 자리 잡기까지 3년이 꼬박 걸렸다. “저희는 기타와 베이스, 장구 중 어느 한 악기가 튀지 않고 골고루 보이도록 음악을 만들고 있어요. ‘국악이랑 기타, 베이스가 의외로 잘 어울리네’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 가장 뿌듯함을 느낍니다.”(김민성)
고니아의 노력은 조금씩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2020년 발매한 5집 앨범 <어 텐션>은 제18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 음반’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최근엔 오리지널 사운드트랙(OST) 작업도 활발히 한다. 지난해 방영된 KBS 드라마 <미남당>, 2021년 MBN 드라마 <보쌈> 등 인기 드라마의 OST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해외 무대 경험도 풍부하게 쌓았다. 2018년 일본 도쿄와 고베 투어를 시작으로 2019년 오키나와까지 돌았다. 2020년엔 영국 런던에서 공연을 했고 이듬해에는 지구 반대편 콜롬비아와 코스타리카까지 날아가 관객을 만났다. 가장 잊지 못할 기억은 지난해 7월 참가한 코펜하겐 재즈 페스티벌이다. 세계 주요 페스티벌 중 하나인 이곳은 재즈 뮤지션들에겐 꿈의 무대다. 김형택은 “공연 문화가 자리잡힌 곳이라 낯선 음악인데도 호응도 공감도 많이 해주셨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무산되긴 했지만 미국 뉴욕의 링컨센터, 카네기홀에서 초청을 받은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전주는 ‘예악의 고장’답게 로컬 인디 신이 활발한 지역 중 하나다. 고니아 외에도 이상한 계절, 뮤즈 그레인, 송장벌레, 57, 토리밴드 등 다양한 색깔의 뮤지션이 활약하고 있다. “전주는 인디층이 두껍고 실력도 상당한 수준이에요. 장르도 다양하고 개성도 뚜렷하죠. 마치 뷔페처럼요.”(김민성)
지역 내 뮤지션들 간 교류도 활발하다. 150명 가까운 멤버가 참여하는 단체채팅방에서는 각종 정보를 교환하거나 서로 돕기도 한다. 15년 넘게 착실히 경력을 쌓아온 고니아는 전주 로컬 신에서 존경받는 선배이자 롤모델이다.
비수도권에 근거지를 둔 데 따른 어려움은 있다. 우선 대부분 공연이 서울에서 열린다. 악기 등 장비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보단 직접 운전을 하는데, 연간 주행거리가 5만㎞에 달할 정도다. 멤버 구하기도 어렵다. 1집(2008)과 2집(2014) 사이 긴 기간은 마음 맞는 드러머를 찾지 못해서였다.
더 힘든 것은 로컬 뮤지션에 대한 색안경이다. “오랜 시간 팀을 유지해오며 진중하게 음악을 해왔는데, 순수하게 음악만으로 평가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 팀 지방이네?’ 하면서요.”(김민성)
고니아는 활동 16년차를 맞은 올해 국내 활동에 집중하기로 했다. 첫 단독 콘서트 개최도 계획하고 있다. 단독 콘서트는 뮤지션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무대다. 6번째 정규 앨범도 준비하고 있다. ‘히트곡’을 내서 대중과 교감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했다.
궁극적으로는 ‘한국인의 재즈’를 개척하는 것이 목표다. 김형택은 “재즈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그걸 바탕으로 ‘K재즈’를 만들어보고 싶다. ‘K팝’이라는 장르가 새롭게 생긴 것처럼, 우리의 문화와 색깔을 섞어서 만든 새로운 음악”이라고 말했다. “기준점을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모퉁이돌’이라는 고니아의 이름과도 잘 맞는 목표라고 생각해요.”(김민성)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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