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벨 소리가 무서웠던 신생아 치료 권위자…"국가 소멸될 위기" 한숨

음상준 기자 2023. 1. 12.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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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철 전 연세대학교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몇년 뒤면 이른둥이 치료 못 받을 수도" 경고…탄생 다룬 수필집 펴내
이철 전 연세대학교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현 하나의료재단 명예원장)./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서울=뉴스1) 음상준 기자 = "현역 시절 늦은 밤에 전화가 오면 그렇게 무서웠어요. 단 한 번도 좋은 일로 전화를 받아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의 저출산 상황이 더 무섭습니다."

이철 전 연세대학교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현 하나의료재단 명예원장)은 <뉴스1>과 인터뷰에서 깊은 한숨을 여러차례 내뱉었다. 우리나라 신생아 치료의 선구자로 불리는 이 전 원장은 의료경영 전문가이자 국내 1세대 신생아진료 세부전문의다.

이 전 원장은 지난 1996년에는 출생 몸무게가 670g(그램)인 초미숙아를 살려내 큰 주목을 받았다. 당시 신생아 평균체중은 3300g이었다. 신생아 담당 의사는 환자와 유일하게 대화를 나누지 못한다. 환자도 담당의사를 기억하지 못한다. 개원도 어려워 의료계에선 음지에서 일하는 의사로도 불린다.

이 전 원장은 평생을 신생아 치료에 매달려온 자신의 경험을 담담하게 풀어낸 수필집 '세상이 궁금해서 일찍 나왔니?'를 펴냈다. 과거 미숙아로 불렸던 이른둥이가 어떻게 치료를 받으며, 의료진이 어떠한 마음으로 진료에 임했는지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저자는 이른둥이가 건강하게 자라 성인이 돼 자신을 찾아온 사연, 긴장과 감동이 교차하는 신생아집중치료실 모습, 거액의 연구자금을 투입해 이른둥이 치료에 혁명을 불러온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결단과 가정사, 만년 적자에 시달리는 신생아치료의 현실 등을 생생하게 담았다.

최근까지 죽음을 다루는 의사 저서는 많았다. 호스피스 또는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면서 삶을 되돌아보도록 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실제로 많은 관심을 받았고 일부 책은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이 전 원장은 의사로서 탄생을 다루는 책을 쓰고 싶었다. 저출산에 시달리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절실한 게 탄생이라고 생각해서다. 마침 예미출판사로부터 집필 제의가 왔고, 그 결과물이 '세상이 궁금해서 일찍 나왔니?'이다.

이 전 원장은 "저출산으로 우리나라가 소멸된다고 하는데 누구 하나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여기에 아이를 진료하는 소아청소년과 진료 시스템마저 붕괴할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지금의 저출산 상황은 결혼이 늦어지는 만혼과 사교육 문제, 낙태, 잘못된 성교육 등을 원인으로 제시했다. 일부 원인 분석은 논쟁적인 사안일 수 있지만, 그는 정치인들이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전 원장은 "만혼 추세에 따라 난임과 불임이 문제가 되고, 실제 진료현장에서 보면 이른둥이가 많아지고 있다. 앞으로 태어나는 아이 10명 중 1명은 이른둥이가 될 수 있다"며 "이 아이들을 다 살려내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신생아진료 인프라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확한 통계가 없지만 신생아보다 낙태로 세상에 나오지 못하는 아기들이 더 많을 수도 있다"며 "성의 목적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고, 이를 성교육에서도 제대로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교육 문제도 저출산의 원인 아니겠느냐"라며 "공적 건강보험이 민간병원을 통제하듯이, 공교육이 사교육을 흡수해 부모들 부담을 줄이지 않으면 아이를 두셋씩 낳는 사례가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전 의료원장은 "정부 예산을 280조원 쓰고도 상황 변화가 없다면, 50년 뒤 우리나라는 소멸의 길로 가게 된다"며 "그전에 태어난 아이라도 모두 살려야 하지 않나. 지금 신생아 진료를 맡는 의료진은 자신을 희생하면서 진료현장을 지키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철 전 연세대학교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현 하나의료재단 명예원장)./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그는 "연세의료원에서 퇴직 후 하나로의료재단으로 옮겼을 때 나를 찾아온 한 젊은 여성이 30년 전 퇴원서를 보여줬다. 알고 보니 내가 치료했던 신생아였다"며 "1.3㎏으로 태어났던 아이가 이제는 어엿한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신생아 의사로서 보람을 느꼈다"고 귀띔했다.

이 전 의료원장은 "그러나 지금 소아청소년과 진료 환경은 붕괴 직전"이라며 "지금 상황을 개선하지 않고 몇 년이 흐르면 이른둥이들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상황이 온다. 일부 대학병원은 이미 입원진료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신생아 치료는 미국이 혁명적인 투자를 통해 전 세계 아이들을 살려냈고 우리도 덕을 봤지만, 지금은 우리도 내로라하는 실력을 확보하고 있다"며 "신생아 담당 의사는 개원조차 어렵다. 희생이 없으면 못하는 분야인 만큼 정부가 획기적인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 전 의료원장은 1973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브라운대학교 초빙교수를 거쳐 연세의료원 기획조정실장, 세브란스병원장, 연세대학교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등을 역임했다.

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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