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삶] 두근두근 입법부
한국인들은 지난 2년 가까이 애인이 내 친구의 깻잎을 떼어주는 상상을 강제로 해야 했다. ‘나, 애인, 친구가 함께 식사하는 자리. 친구가 깻잎을 잘 떼지 못하자 애인이 그 깻잎을 잡아준다. 이때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가볍게 던진 질문은 설왕설래하며 의미가 심화되고 ‘뇌과학자가 그러는데 깻잎을 뗀다는 건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고 결국 그만큼 마음을 쓴다는 의미래’ ‘곤궁에 처한 상대를 도와주는 것은 인간 본연의 도리야’ ‘한 장까지는 호의지만 두 장부터는 관심이며 세 장부터는 배신이다’와 같은 과학적, 철학적, 윤리적 논쟁으로 발전하고 만다.
살면서 깻잎에 대해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나? 있지도 않은 애인을 상상하며 대화에 끼어 보려던 나는 결국 심각한 피로를 느끼고 이 논쟁을 촉발시킨 노사연·이무송 부부를 수없이 원망했다.
그리하여 방송인 유병재는 자신의 유튜브 콘텐츠인 ‘입’으로 ‘법’을 만드는 부서, <두근두근 입법부>를 통해 대화 중 깻잎에 대해 묻는 것을 금지하는 이른바 ‘깻잎 논쟁 금지법’을 도입하려 한다. 발의자를 포함해 공동의장 3인의 ‘킹정’(왕+인정)을 만장일치로 받으면 안건은 통과되고, 3인 중 한 명의 ‘에바’만 받더라도 안건은 부결된다. 이런 식으로 가결된 법안으로는,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을 위한 ‘김밥 속 오이 표시 의무제’, ‘디스코팡팡’에서 DJ에게 놀림받지 않고 놀이기구만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디스코팡팡 놀림 금지법’, 정직한 부동산 매매를 위해 보폭이 넓기로 유명한 배우 김태리의 도보를 기준으로 삼자는 ‘역세권 도보 기준법’ 등이 있다.
허무맹랑한 말장난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출연자들은 공공에게 강제되는 법의 가치를 고려하고 있기에, 안건마다 필수적으로 논쟁을 하며 부결의 이유를 다층적으로 추론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김밥을 지름 5㎝ 미만으로 제한하고 초과할 경우 ‘비빔밥’으로 부르자는 ‘김밥크기 평준화법’은 사람들마다 크기의 기준이 다르며, 김밥이 크다고 해서 비빔밥으로 불러서는 안 되기에 부결, 사람들이 욕설을 너무 많이 하기 때문에 욕설의 ‘쌍시옷’이 들어갈 자리에 ‘니은’을 넣어 부드럽게 만들자는 ‘쌍욕 금지법’은 법안의 조항이 발의의 배경을 충족할 수 없기에 부결, 뒤에서 앞으로 고개를 흔들며 리듬을 타야 하는데 앞에서 뒤로 리듬을 타는 것을 금지하는 ‘빽리듬 금지법’은 개인적인 감정을 무분별한 혐오로 확산할 수 있기에 부결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검사·변호사가 주인공인 수많은 법정드라마보다 이 코미디 콘텐츠가 법을 더 내 것처럼 느끼게 하는 이유는, 내 삶이 만드는 의문이 타인을 향한 질문이 되고 그 질문이 논쟁을 거쳐 법이 될 수 있다는 간단한 원리를 통해 시민의 권리와 희망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문, 질문, 논쟁, 입법’이라는 순서에서 어떤 이들은 논쟁 뒤 목숨 건 투쟁이라는 험난한 과정 하나를 겪기도 한다. 장애인 권리 예산 보장을 위한 입법 투쟁이나 혼인-혈연-입양 관계만 ‘가족’으로 정의하는 민법 779조의 폐지 요구에서 볼 수 있듯 그들은 소수자로서 늘 ‘공공’을 이해시키고, 자신의 처지를 간곡히 호소해야 동료시민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굴욕적 논쟁을 끝내기 위해 투쟁을 선택했다. 법으로부터 소외된 시민이 투쟁을 한다면 그들을 인식하고 돌보는 것은 입법부의 의무다. 이상적인 요구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어떤 이들은 자신의 의문이 바로 법이 되기도 하는 비현실적인 삶을 살고 있으니, 국회의 의무를 바라는 것은 그에 비하면 매우 현실적인 기대다.
‘공공의 이익 운운하며 차별을 용인하는 사람 평생 민원 청구 금지법’ 1000만 킹정을 받아 내자. 공공의 범위를 넓게 그려 소수를 포용하는 가슴 뛰는 입법을 추진해달라.
복길 자유기고가·<아무튼 예능>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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