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어떻게 불러드릴까요
명함 없이 지낸 지 반년이 넘었다. 나는 별 생각이 없는데, 가끔 주변에서 난감해할 때가 있다. 강의를 의뢰하는 담당자가 “저, 호칭을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조심스럽게 묻기도 하고, 미팅이나 회의 시 e메일, 휴대전화 같은 개인정보를 별도로 알려드려야 한다. 대다수는 전 직장 호칭인 ‘본부장’으로 부르지만, 가끔 ‘작가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그러고 보니 나도 갑자기 걸려 온 전화에 ‘앗, 이분 직함이 뭐더라’ 멈칫하거나, 엉뚱한 직함으로 부르는 등 호칭 때문에 실수를 했던 경험이 있었다.
30여년 직장 생활 중 호칭과 관련한 몇 가지 기억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30대 후반, 사회혁신을 표방하는 민간재단에 입사했을 때의 일이다. 여기는 CEO가 나이, 직급, 직책 불문하고 ‘○○씨’로 통일하자고 제안, 본인부터 솔선수범했다. 23세의 신입 연구원이 ‘경아씨’하고 불렀을 때 기억이 또렷하다. 솔직히 기분이 묘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장점이 더 많게 느껴졌고, 실제로 이때 만났던 젊은 직원들과는 지금도 친구처럼 만나고 있다. 상대적으로 끝까지 적응 못했던 사람들은 중년 남성들이었다. ‘OO 형’ ‘O 박사’ 이런 호칭도 그들이 즐겨 썼던 것 같다.
수년 전 신생 재단 설립을 준비하면서 조직문화, 특히 호칭과 관련한 논의가 있었다. 혁신을 표방하는 재단인 만큼 사원, 대리, 과장 같은 기존 호칭의 관행을 깨고 보직이 없는 일반 직원들을 모두 PM(Project Manager)으로 통일하기로 했다. 초기에는 직원들의 만족도가 컸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불만의 목소리가 커졌다. 엄연히 직급과 연봉이 다른데 동일 호칭으로 불리면서 책임과 역할 구분이 모호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시행 7년 만에 직급별 구분이 드러나는 호칭으로 개편했다. 작년 말,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청년단체도 떠오른다. 여기는 기관장부터 전 직원들이 서로 닉네임으로 부르고 있었다. 친근감 있고 수평적 관계를 지향한다는 점은 좋았지만 정작 서로의 본명을 정확히 모르는 경우도 보았다.
교육 현장에서 중장년층 수강생을 부르는 호칭은 다양하다. 전국 어디서나 통용되는 ‘선생님’이 가장 많고, 가끔은 ‘어르신’ ‘어머니, 아버님’으로 부르는 곳도 꽤 있었다. 고가의 교육을 위탁받아 운영하는 민간기업에서는 학위와 상관없이 ‘교수님’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유독 호칭에 민감한 우리 사회. 비단 직장에서의 문제만이 아니다. 생활 속의 다양한 호칭 문화까지 들어가면 더 복잡하다. 그래서 가끔은 호칭 인플레이션에 갇혀 사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물론 호칭을 파괴한다고 수평적 조직문화가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호칭이 어렵고 복잡할수록 타인과의 관계 맺음에 고려해야 할 요소와 에너지가 많이 드는 건 사실이다.
올해부터 달라지는 제도 중 하나가 만 나이 통일인데, 나이 못지않게 우리 사회 호칭 문화에 대해서도 다양한 토론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호칭의 파괴는 낮은 수준의 혁신이지만 상징적인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1인 연구소로 명함 하나 만드시죠?” 가끔 이런 권유를 받을 때 아직은 정중히 ‘노 생큐’라 답하고 있다. 자연인 ‘나’로 평가받는 지금 이 시간, 흔들리지 않는 멘털과 알맹이를 채우는 일에 더 집중하고 싶기 때문이다.
남경아 <50플러스세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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