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의 미래] 뿌리 있는 오늘날의 복수극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복수 이야기를 좋아한다. 복수의 플롯에는 고대 서사시부터 최근의 웹소설과 드라마까지 일관된 이야기 틀이 있다. 오늘날의 사이다 복수극도 복수 이야기의 오랜 전통에서 당당히 자기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디세이아>는 호메로스가 지었다고 알려진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다.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죽을 고생을 겪은 후, 고향 섬 이타카에 돌아간다. “많은 일을 겪은” 오디세우스의 용모는 변했다. 아내 페넬로페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의 거지꼴을 한 채, 오디세우스는 집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자기 집을 파먹고 있는” 수십 명의 오만한 구혼자들에게 통쾌한 복수를 한다.
사마천의 <사기>는 동양의 고전이다. ‘자객열전’에는 예양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섬기던 주군이 죽은 후 자기 자신도 적에게 체포당한다. 죽을 뻔하다가 살아난 셈이다. 예양은 그래도 복수를 포기하지 않았다. “살에 옻칠을 하고 숯을 삼켜” 피부도 목소리도 바꾸고는, 거지 행색을 했다. “아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이렇듯 모습을 바꾼 채, 예양은 적 조양자를 습격할 준비를 한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알렉상드르 뒤마가 쓴 19세기 프랑스 소설이다. 주인공 에드몽 단테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간다. 사랑하는 사람도 잃고 탄탄한 미래도 잃는다. 죽은 사람으로 가장하여 감옥을 탈출한 후, 에드몽 단테스는 ‘몬테크리스토 백작’으로 거듭난다. 그의 변신은 화려했다. 그의 옛 친구와 오랜 적들은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바로 눈앞에 나타나도 그가 에드몽 단테스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단 한 사람, 그의 아내가 될 뻔한 메르세데스만 빼고.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힘이 세다. 금전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상에서, 돈이 엄청 많은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의 힘은 ‘정보 격차’에서 나온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적들의 약점을 속속들이 아는데, 정작 적들은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어떤 사람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유명한 복수 이야기에는 이렇듯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 첫째, 주인공은 억울하게 죽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다. 둘째, 거듭난 주인공은, 가까운 사람도 못 알아볼 정도로 모습이 변한다. 셋째, 주인공은 힘이 세다. 특히 정보 격차 덕분에 큰 힘을 얻는다.
몇년 전 한국 드라마 <아내의 유혹> 역시 이야기 틀에 들어맞는다. 죽다 살아난 주인공은 변신한다. ‘점 하나 찍었을 뿐인데’ 전남편도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정보 격차 덕분에 주인공은 복수를 술술 풀어갈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요즘 유행하는 사이다 복수극은, 복수 서사 전통의 생뚱맞은 일탈이 아니라 논리적 귀결이다. 회귀, 빙의, 환생. 주인공은 죽음을 맞은 후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다. 거듭나기 전의 기억을 가졌기 때문에 정보 격차도 있다. 이토록 속 시원한 복수극이 인기를 누리는 사회 현상에 대해 한번 곱새겨볼 필요는 있겠지만.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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