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수도권이라는 지역주의
국민의힘 3·8 전당대회를 앞두고 ‘수도권 출마론’ 논쟁이 뜨겁다.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윤상현(인천 동구·미추홀구) 의원과 안철수(경기 성남 분당갑)의원은 연일 ‘당 대표 수도권 출마론’을 외치며 ‘김장연대’를 중심으로 윤심(尹心·윤 대통령의 의중)을 과시하는 김기현(울산 남을) 의원을 견제하고 있다.
윤 의원과 안 의원은 수도권이라는 공통분모로 수도권 연대론을 띄우면서 김장연대를 ‘텃밭연대’로 폄하한다. 김장연대의 김기현, 장제원(부산 사상) 의원이 보수색채가 강한 영남권 텃밭에서 국민의힘 깃발을 꽂는 것만으로 손쉽게 당선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보수정당으로서는 험지로 분류되는 수도권에서 당선된 자신들이야 말로 내년 총선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두 의원의 지역구는 대대로 보수당 후보들이 당선돼 국민의힘 텃밭으로 분류되는 곳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구분을 짓는 것에는 어폐가 있어 보인다.
통상 수도권 유권자의 특성을 말할 때, 선거를 치를 때마다 정치 이슈에 따라 표를 행사하는 ‘중도층’으로 설명한다. 국민의힘 당 대표의 수도권 출마론을 지지하는 이들은 지역주의에서 탈피한 수도권 유권자들의 표심을 사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앞서 당 대표의 자격으로 ‘수도권·MZ에 대한 소구력’을 언급하면서 수도권 출마론을 촉발시킨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수도권에 대한 확장성 필요에서 이 같은 발언을 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수도권 표심도 뜯어보면 선거 때마다 제각각이다. 지난해 한국조사협회의 ‘2022 대선 여론조사와 출구조사 진단’ 세미나에서 한국갤럽 허진재 이사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수도권 유권자의 성향은 부모님의 고향인 원적지에 따라 움직였다.
원적지가 대구·경북이면 윤석열 대통령 지지가 60%에 달했고, 광주·전라일 경우에는 이재명 당시 후보 지지가 70%였다. 수도권에서도 보이지 않는 지역주의 색채가 뚜렷했던 셈이다. 당시 조사를 보면 인천·경기 유권자 중 광주·전라 출신은 19.9%, 대전·충청 출신은 18.3%를 차지했다. 2012년 19대 총선 이후 7차례의 전국 선거에서 민주당이 수도권에서 승리한 것도 이 같은 유권자 출신지역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지역 출신 수도권 유권자일지라도 세대가 바뀌면 원적지에 따른 지역주의 색채가 옅어질 수밖에 없다. 그 대신 ‘수도권’ 그 자체가 하나의 지역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모양새다. 수도권이 영남권, 호남권과 같은 새로운 지역주의 기반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수도권은 또 다른 측면에서도 정치권의 핫이슈다. 윤석열 대통령이 화두로 던진 중대선거구제 개편 논의 때문이다.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면 그동안 수도권에서 우위를 점했던 민주당에는 불리하고, 국민의힘에는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여야 모두 유불리 계산으로 분주하다.
‘수도권 이슈’가 여기저기서 거론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유권자의 절반이 서울 경기 인천에 몰려있는 수도권 집중 현상에 있다. 수도권 인구가 늘어날 수록 의석 수도 많아진다. 수도권 표를 얻기 위해 수도권에 인프라를 구축하고 규제를 완화하는 정책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20대 대선에서도 당시 윤석열 후보와 이재명 후보는 앞다퉈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노선 확대 공약을 내걸었다. 수도권의 인구와 의원이 많아질 수록 수도권 일극주의는 강화되고 국가균형발전으로 가는 길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더불어민주당이 반대하는 것은 윤 대통령의 공약이라기보다는 민주당 내 수도권 의원들의 반대 목소리가 더 크기 때문이다.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도 산은 부산 이전에 대해 전향적인 검토를 약속한 바 있고, 공공기관 지방이전은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해 문재인 정부에서도 추진했던 사안이다. 그럼에도 민주당 내 PK의원들이 산은 이전 문제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169명의 민주당 의원 중 수도권 의원의 수가 100명에 달하기 때문이다.
김태경 서울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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