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낯섦은 새로움의 시작
행정안전부의 지난해 12월 인구조사에 따르면 1인 가구비율이 40.3%로 가구통계를 집계한 2008년 이후 처음으로 40%를 넘었다. 4인 가구비율은 18.7%로 해마다 감소한다. 어릴 적 어머니 손끝에서 나오던 맛난 음식은 핵가족이 주를 이루면서 명절 주문음식으로 바뀌고 역귀성은 당연시돼가고 있다. 미혼 남녀는 결혼과 취직 관련된 질문 스트레스로 가족과 함께 설을 지내지 않고 개인 휴식과 자아충족의 시간으로 보낸다. 설 연휴에 해외여행이 급증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1700년을 이어온 설날의 의미가 MZ세대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까? 급변하는 시대가 부모님 세대에는 어떤 낯섦일까. 코로나19로 강제적 이별을 한 지 3년, 우리는 어떤 가족의 모습으로 다시 설을 맞이해야 할까?
지난해 12월 28일 한국에서 세계 최초 개봉한 영화 ‘아바타 2’를 보았다. 13년 만의 후속작이어서 3시간이 넘는 러닝시간 동안 눈을 떼지 못했고 영화가 끝난 후 박수로 화답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영화의 생일이다. 1895년 12월 28일 파리 그랑 카페에서 뤼미에르 형제의 최초 영화 ‘열차의 도착’이 상영됐다. 50초의 아무런 스토리 없는 짧은 내용의 작품이다. 단순히 열차가 도착하는 장면만 보여주는 것에 불과했지만 19세기 후반 사람들에게는 충격 낯섦, 그 자체였다. 스크린 안에서 달려오는 기차에 사람들은 차를 마시다가 혼비백산 도망쳤고 아수라장이 됐다. 그러나 1년 후 전 유럽은 영화라는 새로운 예술세계에 빠져들었고 적응했다. 에디슨의 컬러영화를 거쳐 사일런트(무성영화)에서 토키시대(유성영화)로 발전한다. 텔레비전이 탄생하면서 영화산업은 급격한 관객 감소로 위기를 맞지만 영화는 더욱 발전해 회생하고 130년 동안 끊임없이 인류와 함께 진화해왔다. 새로움 낯섦이 익숙함으로 진화한 것이다.
1827년 프랑스의 조제프 니앱스가 헬리오 그라피라는 사진기를 발명하면서 회화의 역사에 큰 변혁이 발생한다. 화가가 사물을 아무리 자세히 묘사해도 사진기는 빛과 함께 1초 만에 그 모든 것을 이루어낸다. 그러면 화가들의 세상은 끝나는 것인가? 사진의 발명은 사진보다 더 사실 같은 사실주의로 발전하게 되고,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사람의 감정과 빛의 찰나를 그림에 표현하는 인상주의로 진화한다.
사진기가 처음 조선에 들어왔을 때 사진찍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 자기와 같은 모습이 종이에 찍혀 나와 영혼을 뺏어간다고 믿었기 때문인데 문화권을 넘어 사진을 처음 접한 대부분이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조선에 단발령이 내려지자 긴 머리 모습을 보존할 수 있다는 이유로 사진은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된다. 위의 두 예시는 낯섦과 위기를 더 나은 기회로 발전시킨 예다.
이제 긴 코로나의 종식을 예견하며 가족이 다시 얼굴을 맞대고 담소를 나눌 설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설날이라는 말뜻 중 새로 맞이하는 첫날 마음에 설고 가슴에 설어서 새해의 첫날을 ‘설은 날’, 즉 설날이라고 한다는 설(說)이 있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에서 1582년에 교황 그레고리오 13세가 만든 그레고리력(양력)을 표준 달력으로 쓴다. 대한민국 또한 을미개혁으로 1896년부터 그레고리력을 채택했다. 음력 정월 초하루에 지내던 우리나라 설날은 서기 488년 신라 비처마립간(왕) 시절 설날을 쇠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이 있으며, 이후 고려와 조선을 거쳐 1700년간 이어졌다. 일제의 개화라는 명분 아래 고유 명절인 설날은 강제로 양력 1월 1일로 바뀌었고, 정부 주도로 양력설이 강력하게 권장되기도 했지만 국민 정서의 설은 물리와 강압으로 바뀔 수가 없다. 우리에게는 아직 음력설이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인 셈이다.
보편적이라는 것이 힘든 시대가 되었다. 열심히 노력하며 일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갖고 집을 마련하고 행복한 노후를 보장받던 시대가 아니다. 고유 풍습을 젊은이들에게 강요해서도 안 되고, 젊은이 또한 구시대 풍습으로 치부하고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처음 가는 길은 더욱 멀게 느껴지고 낯설다. 그러나 반드시 가야 하는 길이다. 낯섦을 당당히 받아들이고 옛것을 존중하고 새로운 것에 적응하며 어우러지고 함께 공감하는 2023년 계묘년을 맞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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