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플라자] “K팝 아이돌은 좋지만 한국은 싫다”
K팝에서 2023년 새해 벽두는 하이브 소속 걸그룹인 뉴진스의 복귀와 함께 시끌시끌했다. 데뷔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뉴진스는 음악적 수준과 뮤직비디오의 독특한 표현으로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눈길을 더 끈 소식은 유튜브에 공개된 ‘뉴진스, 한지를 만나다’라는 제목의 영상이었다. 해당 영상에서 뉴진스 멤버들은 한지(韓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직접 한지를 만드는 체험 등을 통해서 한국 전통문화를 알린다. 이 영상은 공개되자마자 중국 네티즌들의 악플 공격에 노출됐다. 일부 중국 네티즌들은 제지술은 중국의 것인데 한국이 이번에도 또 자신들의 문화라고 훔쳐 가려 한다는 비난을 쏟아냈다.
물론 K팝이나 엔터테인먼트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런 사건이 이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상적인 일임을 알고 있다. 걸그룹 아이브의 멤버 장원영도 파리 패션 위크에서 봉황 모양의 비녀를 착용하고 나왔다고 중국 네티즌들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물론 반대 상황도 벌어진다. 2021년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는 중국색이 너무 많이 묻어난다는 이유로 한국 네티즌들의 집중 포화를 맞아 방영이 중단되는 사태가 있었다. 한중 온라인 문화 전쟁은 이제 한국 엔터테인먼트에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고 늘 대비해야 하는 상수가 된 셈이다.
이 갈등의 역사에서 가장 중대한 영향을 끼친 사건은 2015년 걸그룹 트와이스의 대만 멤버 쯔위가 대만 국기를 방송에서 들었을 때 벌어졌다. 중국에서는 이것이 하나의 중국이라는 국가적 모토를 부정하는 행위라고 비난했고, 쯔위 본인은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하나의 중국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해야 했다. 이 사건은 대만에서 청년층의 분노를 자아내 민진당 차이잉원 정권으로의 정권 교체에도 기여한 ‘지정학적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그 거대한 중국에서 대체 어떤 이들이 한국 엔터테인먼트를 향해 지속적인 문화적 성전을 주도하고 참여하는 것일까? 중국의 문화 연구자들이 저술한 ‘아이돌이 된 국가’(갈무리)라는 책에는 흥미롭게도 현대 중국의 ‘팬덤 민족주의’가 K컬처로 불리는 한국 대중문화를 열렬히 소비한 여성층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1980년대생 남성이 주도하던 사이버 민족주의가, 1990년대생과 그 이후 출생자들, 특히 K팝 팬덤 활동을 통해서 집단행동의 새로운 문법과 전술을 학습한 이들을 중심으로 한 ‘팬덤 민족주의’로 차츰 대체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의 슬로건은 ‘네 아이돌을 사랑하듯 네 나라를 사랑하라’가 된다.
팬덤 민족주의를 내재한 이 전사들은 여전히 K컬처를 소비한다. 따라서 한국 대중문화 업계에서 일어나는 일과 한국 인터넷 소식에 정통하고, 많은 이들은 한국어도 구사할 수 있다. 이들은 한국 인터넷 공간의 광범위한 합의인 반중 정서도 빠르게 접하게 된다. 접촉과 교류를 통해서 모르던 이들을 알게 되면 정체성을 넘어서는 우애가 생기기도 하지만, 반대로 알면 알수록 서로를 더 싫어하게 되고 오히려 반감이 심해지는 상황도 발생한다. 지금 한국 대중문화를 매개로 급속히 연결되는 한국과 중국 네티즌 사이에서는 후자의 기제가 더 강력한 듯하다.
‘나이키를 신고 데모하는 반미 투사들’. 이 이미지는 미국 문화에는 매료되었지만 정치적으로는 미국을 싫어하는 이들을 조롱하는 사람들이 인용하는 대표적인 상징이다. 한국 문화가 커질수록 우리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들을 더욱 많이 접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K팝 아이돌의 팬이지만 한국을 싫어하는 이들’을 말이다. 그러니 계속되는 한중 온라인 문화 전쟁 소식은 2015년 대만의 일이 언제 어디서든 반복될 수 있음을 알리는 불안한 신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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