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의 간신열전] [169] 정과 중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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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이루장구(離婁章句)에 나오는 말이다.
(언변이 뛰어났던 제나라 사람) 순우곤(淳于髡)이 물었다.
“남녀 간에 물건을 주고받으면서 손이 닿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예(禮)입니까?”
맹자가 “예다”라고 하자 순우곤이 되물었다.
“(그렇다면) 형수나 제수[嫂]가 물에 빠졌을 때 손을 써서 구해 주어야 합니까?”
이에 맹자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형수나 제수가 물에 빠졌는데도 (손을 써서) 구해 주지 않는다면 이는 승냥이나 이리와 다를 바 없다. 남녀 간에 물건을 주고받으면서 손이 닿지 않도록 하는 것은 예이고, 형수나 제수가 물에 빠졌을 때 손을 써서 구해 주는 것은 권도[權=權道=時中]이다.”
이 말은 일의 이치[事理=禮]에 따라 행동할 때와 일의 형세[事勢=命]에 따라 행동할 때의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사례이다. 쉽게 말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매뉴얼이나 원칙을 고집하는 사람은 정(正)을 고집하는 사람이다. 반면에 급박한 상황에서 그 사안을 잘 풀어낼 수 있는 방식으로 매뉴얼이나 원칙을 굽히고 펴고 할 줄 안다면 그는 중(中)할 줄 하는 사람이다. 이때 중은 ‘가운데’가 아니라 ‘적중하다’이다.
요즘 나경원 전 의원이 처해 있는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정(正)과 중(中) 사이를 헤매고 있는 듯하다. 평소에는 정이 맞고 특수 상황에서는 중이 맞는다. 나 전 의원이 출마하는 것은 누가 보아도 원칙에 맞으니 정(正)에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 중(中)인가를 따진다면 글쎄다. 일의 형세에 관한 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자리는 옛날에는 임금, 지금은 대통령이다. 그래서 임금 말을 명(命)이라 했던 것이다. 정(正)을 고수할지 명(命)을 따를지 지켜볼 일이다. 그 점에서 정(正)을 저버린 유승민 전 의원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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