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라임 전세기 도주극’ 재발 막으려면
다른 펀드들도 권력비리 의혹… 엄벌로 금융사기 재발 막아야
2019년 초 남성 투자자 두명이 전 수원여객 전무 K씨의 은신처였던 괌의 한 호텔을 덮쳤다. 로비에서 붙잡힌 K씨는 “짐을 싸서 나오겠다”며 방으로 올라간 뒤 도망쳤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라임자산운용 전주(錢主)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K씨에게 도피 자금 7억5000만원을 지원했고, 1억원짜리 전세기까지 띄워 도주를 도왔다. 김봉현은 K씨의 고향 선배였다. 영화가 따로 없었다.
라임은 사기성 투자로 4000명 넘는 투자자의 1조5000억원을 날린 사모 펀드다. 라임은 2018년 초 한 투자 회사가 경기도 알짜 운송 기업 수원여객을 인수할 때 270억원을 빌려줬다. 투자 회사 관계자는 “라임은 돈을 빌려준 뒤 금융인 K씨를 수원여객 재무담당 전무에 앉혀달라고 요구했다”고 했다.
그 후 K씨는 김봉현 등과 함께 수원여객에서 260여 억원을 횡령했다. 그는 2020년 4월 김봉현이 1차 검거되자 자수했고, 작년 징역 7년형을 받았다.
김봉현은 1차 검거 당시 다섯 달간 수사망을 피해 다니다 성북동 빌라에서 잡혔다. 하지만 2021년 7월 보석으로 풀려났고, 작년 11월 검찰 구형 직전 그는 전자 팔찌를 끊고 또 도망쳤다. 도주 48일 만인 지난달 30일 화성 한 아파트에서 2차 검거됐다.
수년간 라임 뒤를 밟은 한 투자자는 “해외에서 신변이 오히려 위험하므로 국내가 더 안전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봉현의 뒤에는 거물 사채업자나 당시 권력 실세들이 있다는 말이 투자업계에 공공연히 돌았다”고 말했다.
라임은 문재인 정부 때 조장된 사모 펀드 활성화 정책에 올라탔다. 다른 위성 펀드들을 동원해 돌려막기 투자로 부실을 숨겼다. 운용 자산은 2017년 말 1조5000억원에서 2019년 5조8000억원으로 4배나 커졌고, 2018년 업계 1위가 됐다.
주변 목격에 따르면, 김봉현은 평소 책상에 1000만원 수표 1800장(180억원)을 쌓아두고 자랑했다. 그는 라임을 통해 800억원 넘게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김봉현은 고향 친구였던 금융감독원 출신 청와대 행정관도 동원해 금감원의 라임 조사를 무마했다. 행정관은 대가로 월 200만원 한도 법인 카드 등 5000만원어치 뇌물을 받았다. 김봉현은 정치인, 청와대 인사에게도 20억원씩 줬다며 으스대고 다녔다. 도주 중 시행 사업을 벌일 정도로 대담했다.
옵티머스·디스커버리 등 사모 펀드들도 사기 투자 의혹을 받고 있다. 이 펀드들에서도 여지없이 전 정부 권력자들 이름은 등장한다.
2020년 코로나로 금융시장이 어려워지자 영원히 묻힐 줄 알았던 위법적 행각들은 수면 위로 드러났다. 금감원에 따르면 현재 환매가 중단된 사모펀드는 48개에 5조5000억원이 넘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검찰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폐지시키는 등 수사를 오히려 막았다.
이제 사라진 돈들의 종착지를 밝혀야 한다. 자본시장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도 사실 규명은 필수적이다. 사기성 펀드를 판매한 은행들은 수천억원씩 배상을 했다. 은행이 본 손실은 돌고 돌아 각종 수수료나 대출 금리 인상에 반영됐다. 결국 일반 은행 고객들에게 피해가 전가된 셈이다. 외환 당국은 최근 10조원대 이상(異常) 외환 거래에 사모펀드 횡령액이 포함됐을 가능성도 의심한다.
미국은 금융 사기 범죄에 단호하다. 73조원 다단계 금융 사기를 저지른 버나드 메이도프는 2009년 150년형을 선고받고, 작년 옥사했다. 세계 3위 가상 화폐 거래소 FTX를 세우고 사기 끝에 파산시킨 샘 뱅크먼 프리드에게는 115년형이 거론된다. 솜방망이 처벌이 반복되면 제2, 제3의 라임은 또 기어나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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