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프리즘] 삼성폰, 넛크래커 벗어나려면
2007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3GSM(현 MWC) 행사에서 최지성 당시 삼성전자 무선총괄사업부장은 "3년 내 노키아를 제치고 휴대폰 세계 1위에 올라설 것"이라고 말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삼성이 노키아, 모토로라에 이어 막 3위로 올라섰을 때다. 특히 노키아는 시장점유율이 한때 40%에 육박한, 그야말로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었다. 꿈같은 얘기, 허황된 목표라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그로부터 5년 뒤인 2012년 거짓말처럼 삼성은 세계 휴대폰 1위에 올랐다. 물론 노키아와 모토로라가 지독한 관료주의와 안일함에 찌들어 추락한 반사효과를 봤다. 그러나 삼성 역시 이를 악물고 기술혁신과 선제적 투자로 점유율을 끌어올렸다. 아이폰발 스마트폰 혁명의 파고 속에 머뭇댄 경쟁사들과 달리 재빠르게 스마트폰으로의 주력 전환에 성공하며 애플과 양강체제를 구축했다. 그로부터 10년, 다소의 부침에도 삼성 갤럭시의 리더십은 굳건했다.
그러나 최근 삼성폰의 위상은 과거와 달라졌다. 삼성만의 강점이 희미해지고 '넛크래커 속 호두' 신세로 전락했다는 평가다. 프리미엄폰은 애플에 밀리고 중저가폰은 중국 업체에 맹렬히 쫓기는 상황이다. 삼성만의 기술 경쟁력, 브랜드 충성도가 하락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6일 발표된 삼성전자의 어닝쇼크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지난해 4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이 4조3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9% 감소했다. 반도체의 부진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스마트폰의 하락세(영업이익 -30%)다. 반도체의 경우 글로벌 업황침체의 직격탄을 맞았지만 호황과 불황을 4~5년 주기로 반복하는 사이클 산업이다.
반면 스마트폰의 실적감소는 애플과 중국이라는 강력한 경쟁자들의 부상에 경기침체가 겹친 결과다. 실적발표 직후 한 시장조사업체는 삼성(20%)이 애플(25%)에 분기 점유율 1위를 내줬다는 보고서를 냈다. 두 회사는 모두 비슷한 시기(8, 9월)에 신제품인 4세대 폴더블폰(접히는 폰)과 아이폰14를 각각 내놨는데 아이폰만 연말까지 폭발적인 판매세를 이어갔다. 삼성 갤럭시가 아이폰에 매력도나 충성도가 뒤진다는 의미다. 더 걱정되는 것은 매년 4분기 애플악몽이 반복되고 양사의 연간 점유율 격차도 이젠 2~3%포인트 수준으로 좁혀졌다는 점이다. 이미 재무실적은 비교가 안된다. 삼성이 연 4000만대가량을 더 팔면서도 매출은 애플의 절반 수준이고 이익은 4분의1 정도밖에 안 된다. 고가 프리미엄폰이 80% 이상인 애플과 달리 70% 이상이 중저가 라인업에 포진한 삼성의 판매구조 탓이다.
중저가폰도 그동안 얕잡아본 중국 제조사들의 부상에 위협받는다. 샤오미나 오포, 비보 등 3대 제조사의 합산 점유율이 30%를 넘어섰다. 품질 면에서는 아직 삼성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많지만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뛰어나다. 안드로이드폰 제조기술이 어느새 평준화한 데다 낮은 인건비를 바탕으로 한 가격 경쟁력과 막대한 내수시장에 힘입어 글로벌 플레이어로 도약했다. 한때 20% 넘던 중국 내 삼성폰 점유율은 이젠 0%대로 떨어졌다.
삼성이 마냥 손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폼팩터(기기형태) 혁신을 통해 폴더블폰 시장을 개척했고 새로운 UI(사용자환경)·UX(사용자경험), 부가서비스도 잇따라 개발했다. 중국 시장에서 0% 점유율 굴욕도 따지고 보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태 이후 한한령(한류금지령) 확산과 애국소비, 배터리 발화사건 등 악재가 겹친 탓이다. 그러나 어느새 혁신의 속도는 애플에 뒤졌고 시장개척은 중국계에 밀린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삼성폰의 재도약을 위해선 '양보다 질'을 높이는 전략이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글로벌 최다판매' 타이틀에 얽매이기보다 폴더블폰을 비롯한 기술리더십과 갤럭시만의 고객경험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가절감이 어렵다면 소비자로부터 기술혁신을 인정받아 비싸게 팔아야 한다. 삼성폰만의 강점과 차별점을 되찾는 게 넛크래커를 벗어나는 길이다.
조성훈 정보미디어과학부장 search@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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