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과학] 풀러렌(C60)을 이어붙이자 새로운 탄소 소재가 탄생했다

최상국 2023. 1. 12.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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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온에선 반도체, 저온에선 금속...뽁뽁이 닮은 ‘LOPC’합성

[아이뉴스24 최상국 기자] 풀러렌(fullerene, C60)은 탄소 원자 60개가 육각형 20개와 오각형 12개로 이뤄진 축구공 모양(깎은 정이십면체)의 탄소 동소체다. 풀러렌을 발견한 미국의 화학자 로버트 컬(Robert Floyd Curl, Jr.)교수는 1996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같은 탄소동소체인 그래핀과 달리 풀러렌은 응용 연구가 많이 이뤄지지 않았다. 응용을 위해서는 풀러렌의 원자 배열이나 구조를 변형시켜야 하지만 0.7nm(나노미터)에 불과한 지름과 안정적인 분자 구조를 가지고 있어 화학적·물리적 변형이 어렵다. 변형에 성공한다 해도 응용가치가 있는 수준으로 대량 합성해야 한다는 난제가 또 남는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다차원 탄소재료 연구단 로드니 루오프 단장(UNIST 특훈교수) 연구팀은 중국 과학기술대와 공동으로 풀러렌을 변형한 새로운 탄소 소재를 합성하고 이를 12일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이 물질을 탄소 원자의 배열이 대면적에 걸쳐 규칙적인 다공성 소재라는 뜻에서 ‘LOPC(Long-range Ordered Porous Carbon)’라고 명명했다.

연구진은 풀러렌(C60) 분말을 알파리튬질소화합물(α-Li3N)과 혼합한 뒤, 550℃까지 가열하는 방식으로 LOPC를 합성했다. [사진=IBS]

연구진이 새로 발견한 이 물질은 풀러렌을 구성하는 탄소 결합 중의 일부를 끊어 인접한 풀러렌과 결합한 구조다. 풀러렌이 축구공이라면 LOPC는 축구공의 일부를 잘라 다른 축구공과 이어붙인 모양이다.

연구진은 분말 형태의 풀러렌을 알파리튬질소화합물(α-Li3N)과 혼합한 뒤 550℃까지 가열하자, 풀러렌 속 탄소 간의 결합이 일부 끊어지고 인접한 풀러렌끼리 결합하며 연결됐다고 설명했다.

첨단 분석 장비들을 활용해 합성된 구조를 분석한 결과, LOPC는 입체적 구조의 풀러렌이 그래핀과 같은 2차원 소재로 변하는 과정에서 생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LOPC는 상온에서는 반도체, 극저온에서는 금속 같은 물리적 특성을 나타냈다. 풀러렌은 전기전도도가 낮지만 LOPC는 상온에서 반도체 소자 수준의 전기전도도를 나타냈으며 30K(-243.15℃) 미만의 저온에서는 금속 수준의 전기전도도를 보였다.

공동교신저자인 얀우 추 중국 과학기술대 교수는 “독일의 수학자인 헤르만 슈왈츠(Hermann Schwarz)는 비눗방울 표면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음(-)의 곡률을 갖는 구조의 가능성을 제시했고, 많은 과학자들이 이 구조를 갖는 탄소 소재, ‘탄소 슈왈차이트’를 합성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며 “루오프 단장 연구팀의 선행연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탄소 슈왈차이트와 결합이 닮은 새 소재를 합성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개발된 탄소 소재들은 그래핀처럼 평면이거나 풀러렌처럼 볼록한 구조였다. 말의 안장과 같이 음(-)의 곡률(오목한 형태)을 갖는 탄소 소재의 합성 가능성은 1990년대에 제시됐다. 하지만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실제로 합성된 적은 없다.

다양한 탄소 소재들. 흑연, 다이아몬드, 그래핀, 탄소나노튜브, 풀러렌 등 탄소 소재는 원자 배열에 따라 다채로운 물리적 특성을 갖는다. IBS-중국과학기술대 공동연구진은 전기전도도가 낮은 풀러렌을 이용해 상온에서 반도체 특성을 갖는 신물질 ‘LOPC’를 합성했다. [사진=IBS]

일반적으로 탄소 원자는 주변 4개의 원자와 화학적으로 결합(4가 결합)하는 데, 음의 곡률을 구현하려면 탄소 원자가 3개의 다른 원자와 결합하는 ‘3가 결합’ 구조가 필요하다. 이번 연구의 공동교신저자인 루오프 단장이 2010년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터리얼스(Advanced Materials)’에 3가 결합 탄소를 최초로 합성한 연구를 보고한 바 있다. 이를 토대로 이번 연구에서 3가 결합을 가진 LOPC 합성에 성공한 것이다.

LOPC의 합성은 탄소 슈왈차이트 합성을 위한 중요한 단서를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연구진은 다량의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커패시터(축전기), 내부 빈 공간을 이용해 약물을 체내로 전달하는 운반체, 넓은 표면적을 갖춘 효율 높은 촉매 등에 탄소 슈왈차이트가 응용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루오프 단장은 “이번 연구는 신물질인 LOPC를 수 그램(g) 수준의 대용량으로 합성하고, 그 구조를 명확하게 규명한 첫 사례로 향후 킬로그램(kg) 규모까지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상적 물질인 ‘탄소 슈왈차이트’ 합성에 한 발짝 더 다가서게 됐다”고 말했다.

연구결과는 1월 12일 01시(한국시간) 국제학술지 ‘네이처’ 온라인 판에 실렸다.(논문명 : Long-range ordered porous carbons produced from C60)

/최상국 기자(skcho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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