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중대선거구제가 최선인가

박창억 2023. 1. 11. 23: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尹 언급으로 정치권 화두 등장
파벌정치 심화 등 폐해 적잖아
의석 독점 해소 효과도 의문시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가능성 커

1985년 12대 국회의원 선거는 한국에서 중대선거구제로 치러진 가장 최근의 선거다. 그 후로는 소선거구제로 환원돼 총선을 치렀다. 그해 2월12일 치러진 12대 총선은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언급하며 정치권 화두로 부상한 중대선거구제의 장단점을 한눈에 보여준다. 12대 총선에서 김영삼과 김대중이 주도한 신생정당 신한민주당(신민당)은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대약진했다. 신민당은 창당 3주 만에 67석을 차지해 제1야당의 자리에 올라섰다.

12대 총선에서 또 하나 주목할 대목은 중대선거구제로 인해 전두환 정권의 민주정의당(민정당)이 참패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신민당은 서울 14개 지역구에 출마한 14명 후보 전원이 당선됐다. 후보 평균 득표율은 42.4%에 달했다. 반면 민정당은 후보 평균 득표율은 27.6%에 머물렀으나, 서울에서 13석을 차지했다. 민정당은 전국 득표율이 35%에 그쳤지만, 지역구 의석이 가장 많은 정당이 전국구 의석 3분의 2를 차지한다는 선거법과 중대선거구제 덕에 제1당을 유지했다. 만약 12대 총선이 소선거구제로 치러졌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박창억 논설위원
12대 총선 결과가 보여주듯 중대선거구제의 장점은 신생정당, 소수정당의 지역구 당선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의원을 4명 뽑는 선거구에서는 10% 내외의 득표율로 원내 진입이 가능하다. 또 지역주의 완화에 도움을 주고 비례성을 높여줄 수 있다. 영남과 호남에서 각각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후보가 2, 3위로 당선될 가능성이 커진다. 윤 대통령도 신년 인터뷰에서 중대선거구제 제안의 배경으로 정치 양극화 해소와 대표성 강화를 꼽았다.

그러나 중대선거구제가 소수정당의 원내 진입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2022년 6월 지방선거에서 1030개 기초의원 지역구 중 30개에서 3∼5명을 뽑는 중대선거구제를 시범 실시했다. 30개 선거구 109명의 당선자 중 소수정당 후보는 4명으로 3.7%에 불과했다. 거대정당에서 복수공천을 자제하지 않는다면 국민의힘이 영남에서, 민주당이 호남에서 복수 당선인을 배출하며 지역주의도 더 강화될 수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중대선거구제는 지역주의 정치구도에서 특정 정당의 의석 독점을 초래하는 역효과를 냈다”고 평가했다.

중대선거구제는 또한 거대정당, 특히 집권당에 매우 유리한 제도다. 집권당 의원들은 대체로 야당 의원들보다 선거 자금과 정책 제공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선거구 내 소지역주의를 조장할 가능성도 크다. 동시에 당내 파벌, 금권 정치가 심화할 수 있다. 상당수 정치학자가 “개악”이라며 중대선거구제에 반대하는 이유다. 서울대 강원택 정치외교학부 교수도 전화 통화에서 “이게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기본적인 회의가 있다”고 했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는 또 다른 이유는 심판의 명료성 때문이다. 잘한 쪽이 이기고 못 한 쪽이 지는 것이다.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할 경우 12대 총선처럼 ‘인기 없는 여당’이 선전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비리에 연루됐거나 막말을 일삼는 저질 현역 의원을 심판할 기회도 잃게 된다.

일본도 1928년 중의원 선거부터 1993년까지 2∼5인을 뽑는 중선거구제를 채택했다. 그러나 중선거구제가 파벌정치와 부정부패의 주범 중 하나로 지목되면서 1996년 중의원 선거부터 소선거구제로 전환했다. 정치권에서 중대선거구제를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하고 있지만, 부작용과 후유증을 고려해 좀 더 신중한 논의를 해야 할 것이다.

또 하나 유념할 대목은 기존 선거제도의 수혜자인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그 제도를 갈아엎는 경우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정당·지역별로 셈법도 너무 복잡하다. 중대선거구제 논의가 제 궤도에 진입하기도 전에 벌써 식어가는 이유다. 윤 대통령이 언급하고 김진표 국회의장도 선거제 개편을 촉구했지만, 정치권의 반응은 미지근하고 지지세 규합도 부진하다. 더구나 총선 1년 전인 올 4월까지 선거법을 개정해야 하므로 시간도 빠듯하다. 이번에도 중대선거구제 논의는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공산이 커 보인다.

박창억 논설위원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