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프리즘] 실패 같은 성공과 성공 같은 실패

2023. 1. 11. 23: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비아그라·보톡스·에어캡 등
개발 땐 실패… 타용도론 성공
‘세그웨이’ 혁명은 계륵으로
R&D 성패 단정말고 도전해야

요즘 ‘쇼츠’라고 하는 짧은 유튜브 동영상을 보는 재미에 빠져 있다. 대략 1분 미만의 짧은 영상이 대부분인데, 주로 재미있는 영상이나 영화·드라마의 하이라이트 등이다. 부담 없이 볼 수 있고 이어서 다시 볼 필요가 없어 자투리 시간을 때워야 할 때나, 약속 장소에서 상대를 기다려야 할 때 보는 편인데, 얼마 전 ‘실패 같은 성공’이라는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어떤 선수가 볼링장에서 투구를 했는데 그만 옆 레인으로 볼링공이 날아가는 바람에 본인의 공을 끝까지 보지 않고 멋쩍게 웃으며 돌아섰다. 그러나, 옆 레인으로 날아간 공이 거터(도랑같이 생긴 곳) 끝을 맞고선 다시 본인 레인으로 튀어 결국 스트라이크가 되었다. 분명 의도하지 않은 실수일 텐데 결과적으로 성공인 것이다.

과학기술에서도 이런 실패 같은 성공이 종종 일어난다. 비아그라 개발이 대표적이다. 본래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되었으나, 협심증 치료 효과는 매우 저조한 반면 발기부전 치료에 탁월한 효과를 보임이 우연히 밝혀져 1998년 발기부전 치료제로 재탄생했고, 지금은 화이자의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제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탈모치료제로 알려진 미녹시딜은 원래 미국 제약회사 업존컴퍼니에서 1950년대 위궤양 치료 목적으로 개발한 약품이었다. 그러나 1979년 미녹시딜이 혈관을 확장하는 효과가 있음이 밝혀지며 고혈압 치료제로 사용된 바 있으며, 우연히 모발 재생에도 유효하단 것이 발견되어 1988년 최초의 탈모치료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게 되었다. 보톡스로 알려진 보툴리눔 톡신도 원래 사시(斜視) 치료를 위해 개발된 제품이다. 그러나 미간 주름 치료에서 효과를 발견해 보톡스라는 상표로 출시되었고, 이후에도 다양한 용도가 발견되어 현재까지 FDA에 의해 7가지 용도로 사용이 승인된 약물이다. ‘뽁뽁이’라고도 불리는 에어캡(버블랩)도 개발 목적만 따져보면 실패한 제품이다. 당초 벽지로 사용할 것을 목표로 개발되었으나 상품화에 실패하였고, 이후 온실 단열재 등 다양한 용도로의 적용을 시도하였으나 모두 실패한다. 그러나, 이후 IBM이 민감한 전자제품의 포장재로 에어캡을 사용하면서 비로소 적절한 시장을 찾게 되었고, 오늘날 포장재의 대명사로 자리 잡게 되었다.
안준모 고려대 교수 과학기술정책학
이 같은 여러 사례는 연구개발(R&D)의 성공과 실패를 평가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아그라나 미녹시딜, 보톡스, 에어캡 모두 개발 당시에는 실패한 제품으로 여겨져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겠지만 결국 효자 상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실패 같은 성공’의 반대도 있는데, 성공한 줄 알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실패한 ‘성공 같은 실패’이다. 대표적 사례가 한때 애플의 스티브 잡스,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등 실리콘밸리의 혁신가들이 한결같이 극찬했던 세그웨이다. 1인용 운송수단으로 도시의 출퇴근 광경을 바꿀 가장 혁신적인 제품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18개월 동안 고작 6000대 정도를 판매하며 상업적으로 실패한 제품이 되고 만다. 1000만원이 넘는 가격과 1회 충전으로 39㎞까지만 주행할 수 있었던 배터리 문제 등 때문에 창조적 제품이 아닌 계륵 같은 존재가 되고 만 것이었다.

우리가 점쟁이처럼 성공과 실패를 예지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의도하지 않은 새로운 기능의 발견, 새로운 시장의 창출 등 여러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에 R&D 결과물에 성공과 실패를 단정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매년 국가 R&D의 성공률이 90%를 넘었네 마네 하는 비판이 반복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성공률이 몇 퍼센트이냐 하는 것이 아니다. 짧은 호흡으로 성패를 평가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일 수 있다는 것이며, 실패를 너그럽게 품지 못하는 사회문화 때문에 성공 같은 실패가 양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패했다고 비난해도 그 실패가 백조가 된 미운 오리 새끼일 수도 있다. 성공 같은 실패와 실패 같은 성공, 우리는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

안준모 고려대 교수 과학기술정책학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