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과 손잡자 단골 늘어…책 구매보다 빌리는 손님 많아”
5년 동안 관내 책방 10곳서 운영…재고 확인·반납 등 사서 역할
“고객층 다양해져” 긍정…“서점 기능, 주객 전도 아쉬워” 걱정도
지난 9일 서울 관악 신림동의 좋은책서점. 황성유씨(52)가 책 한 권을 품에서 내밀었다. 반납도, 파본도 아니었지만 이정원 사장(44)은 이를 자연스레 받아들었다. 황씨가 내민 책은 ‘서점에서 빌린 책’이었다.
황씨는 관악구통합도서관 ‘동네서점 바로대출’ 서비스를 이용해 서점에서 신간을 빌렸다.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신청하면 동네책방에서 대여 형식으로 2주간 책을 빌려볼 수 있는 서비스다. 평소 이 서비스를 자주 이용하는 황씨는 “큰 도서관까지 갈 일 없이, 문자로 반납도 잊지 않게 챙겨줘서 편하다. 원하는 책도 바로 신청해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서점에서 책 빌리는’ 이 서비스는 관악구에서 5년째 시행 중이다. 관악구 내 책방 10곳은 책을 파는 서점이자, 책을 빌려주는 도서관이 됐다.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대출용 서적을 따로 모아둔 봉천동 드림서점의 서가에는 A4용지를 잘라 사인펜으로 쓴 ‘ㄱ, ㄴ, ㄷ’ 라벨이 칸칸마다 붙어 있었다. 관 ‘동네서점 바로대출’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점 대부분은 드림서점처럼 대출용 서가와 반납 서가를 별도로 마련해놓고 있다.
반납과 대출은 간단한 일처럼 보이지만, 신경 쓸 일이 적지 않다. 도서관에서 책 신청이 들어오면 재고를 확인하고, 재고가 없으면 책을 주문한다. 책 대여부터 회수까지 서점이 책임진다.
이정원 사장은 “매달 정리하고 포장하고, 손님들이 책을 가져오지 않으면 연락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긴 하다”고 했다. 드림서점 성병찬 사장은 “주민들이 빌려간 책을 가져오지 않을 수 있다는 위험 부담이 있다”고 했다.
사람들이 빌려봤던 책들은 한 달에 한 번 도서관이 사간다. 도서관에 책을 납품하면 보통 10~20%쯤의 이윤이 남는다. 서점 사장들은 대체로 ‘큰돈은 아니지만 부수적인 수입이니 만족한다’고 말한다. 한 서점 사장은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도서관은 문은 닫아도 서점은 열 수 있었다. 아이들 방학 기간에 엄마들이 많이 신청하기도 해서, 소설만 아니라 다양한 책들이 신청됐다”고 말했다. 다만 도서정가제에 맞춰 10% 할인가를 적용하다보니, 들이는 품에 비해 남는 수익이 많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서점 사장들은 책방이 사양산업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단행본 시장은 온라인 서점이 거의 잠식했고, 오프라인 서점을 찾는 이들은 참고서나 문제지를 찾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동네서점 바로대출 서비스’는 고객층을 다양화하는 데 보탬이 된다.
13년간 서울 관악구에서 다솜서점을 운영해온 김상민 사장(54)은 “대여 서비스를 통해 새로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긍정적”이라고 했다. 이정원 사장도 “빌리고 반납하면서 자주 서점을 들르니, 안방 드나들 듯 얘기도 나누고 손님들과 친밀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책을 대출받다가 단골이 될 수 있고 대출 때문에 왔다가 책을 살 수 있다는 것도 서점 입장에선 장점이다.
‘서점에서 책을 빌린다’는 인식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의견도 있다. 서울 관악구 양지서점 심진태 사장은 “사람들이 서점에서 새 책을 빌릴 수 있으니 사는 손님보다 빌리는 손님이 많다”며 “주객이 전도된 게 아쉽다”고 했다.
글·사진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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