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내고 덜 받는’ 마크롱표 연금개혁에…펄펄 끓는 프랑스
노동계와 야당 “심각한 퇴보…절대로 반대” 총파업 예고
프랑스 정부가 재정 건전성을 위해 연금을 수령할 수 있는 최소 연령을 현행 62세에서 2030년까지 64세로 올린다. 또 연금을 100% 받기 위해 납입하는 기간을 42년에서 43년으로 1년 늘리기로 한 시점을 2035년에서 2027년으로 앞당기기로 했다. 인플레이션으로 민심이 흉흉한 상황에서 ‘더 내고 덜 받는’ 연금개혁안이 발표되자 프랑스 노조는 대규모 파업과 시위를 예고했다.
엘리자베스 보른 총리는 10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연금에 기여하는 사람들의 수가 퇴직자 수에 비해 적어지고 있다”면서 이 같은 내용의 개혁안을 발표했다. 인구구조의 변화로 제도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프랑스 정부는 올해 9월1일부터 정년을 매년 3개월씩 연장하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정년은 2027년 63세3개월, 2030년에는 64세가 된다. 근무 기간을 늘리는 대신 최소 연금 상한을 최저임금의 75%인 월 1015유로(약 135만원)에서 최저임금의 85%인 월 1200유로(약 160만원)로 인상한다고 약속했다.
프랑스의 퇴직연금 연간 총지출액은 2021년 국내총생산(GDP)의 약 14%에 해당하는 3400억유로 수준으로 정부 지출 항목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연금 재정은 최근 2년 동안 흑자를 내는 등 나쁘지 않은 상황이지만, 연금자문위원회는 올해부터 2027년 사이 재정이 크게 악화돼 향후 10년 동안 매년 GDP의 0.3~0.4% 수준인 100억유로씩 적자가 날 것으로 추정했다.
현재 프랑스의 평균 은퇴 연령은 2020년 기준 남성 60.4세, 여성 60.9세로, 다른 유럽 국가 평균보다 낮다. 독일의 남녀 평균 은퇴 연령은 64세이며, 네덜란드는 66세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연금 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재정으로 (연금) 적자를 메워야 한다”며 “프랑스 노동자는 더 오래 일해야 한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여론은 마크롱 대통령의 제안에 싸늘하다. 벽돌공인 장(29)은 “벽돌공으로 일하면서 건강한 상태로 60세에 도달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장애아동을 돌보는 베네딕트(60)도 “일에 이미 많은 것을 쏟아부었다”며 “빨리 은퇴해 내 손주들을 돌보고 싶다”고 말했다.
프랑스24는 이 같은 목소리를 소개하면서 “프랑스의 상대적으로 후한 연금 제도는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 힘든 일이 소중히 여겨지기 위해서는 적절한 보상이 제공돼야 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BFM-TV가 지난 4~5일 성인 10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4%가 퇴직 연령을 현행대로 62세로 유지하기를 원한다고 답했다.
미카엘 제무르 파리1대학 교수는 기업 감세를 해온 마크롱 정부가 재정 건전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금개혁을 강행하고 있다며 “재정을 건전하게 하기 위한 정책이 아니라 기업들을 위한 정책”이라고 프랑스24에서 평했다. 실제 일각에서는 기업들의 자금 조달이 원활해지려면 국제 신용평가사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연금개혁을 신속히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프랑스 최대 노조인 일반노동총연맹(CGT)을 비롯한 8개 노동단체는 오는 19일 총파업과 시위를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야당도 대체로 반대 입장이다. 좌파정당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를 이끄는 장 뤽 멜랑숑 대표는 “심각한 사회적 퇴보”라고 밝혔다. 극우정당 국민전선(RN)의 마린 르펜 대표도 “절대적으로 반대한다”고 했다.
연금개혁은 프랑스에서 가장 폭발력 있는 이슈로 꼽힌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2010년 퇴직 연령을 60세에서 62세로 연장시킨 뒤 2012년 대선에서 재임에 실패했다. 마크롱 대통령도 2019~2020년 42개 연금을 통합하고 수급 연령을 늦추는 내용의 개혁을 추진했다 노란 조끼 시위가 확산하면서 정치적 위기를 겪은 바 있다.
파리 | 박은하 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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