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물실험 거치지 않아도 신약 승인 가능"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신약 승인을 받기 위해 반드시 동물실험을 거쳐야 한다는 80여년 된 의무조항이 올해부터 사라졌다. 동물복지단체들의 오랜 설득의 결과지만 실제 변화는 빨리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과학전문지 《사이언스》가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 9월 미국 상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한 법안을 연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서명함으로써 84년 된 동물실험 의무화 규정이 삭제됐다. 1938년 제정된 이 규정은 잠재적 약물의 안전성과 효능을 동물실험을 통해 검사해야 한다는 것. 새 법은 해당 규정을 'FDA는 동물실험 또는 비동물 실험을 거친 약물이나 생물학적 물질(항체와 같은 더 큰 분자)의 인체 대상 임상시험을 증진한다'로 바꿨다.
비동물실험이 뭘까? 이 법안 통과를 추진해온 동물복지단체인 인도적 경제센터(Center for a Humane Economy)와 동물복지행동(Animal Wellness Action)에 따르면 컴퓨터 모델링과 '장기 칩'(organ-chips․인체의 장기 수준까지 세포를 배양한 고분자 칩)을 활용한 실험이다.
동물실험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 법을 느린 변화를 알리는 터닝포인트로 봐야한다고 말한다. '의료 진보를 위한 미국인들(Americans for Medical Progress)'의 빌 뉴먼 소통팀장은 "비동물 기술은 여전히 초기 단계이며 앞으로 몇 년 간 동물 모델을 대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FDA가 여전히 동물 실험을 요구할 수 있는 엄청난 재량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당분간은 그 방침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FDA는 약물 승인 전에 일반적으로 생쥐나 쥐 같은 설치류 한 종과 원숭이나 개와 같은 비설치류 한 종에 대한 독성 테스트를 요구한다. 제약회사들은 매년 그러한 실험을 위해 수만 마리의 동물을 희생시킨다. 그러나 인간 임상시험에 들어가는 약 열 중 아홉은 안전하지 않거나 효과가 없어 실패한다. 동물실험이 시간과 돈, 생명의 낭비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장기 칩을 만드는 회사인 에뮬라를 창업한 하버드대의 돈 잉버 교수(생물공학)는 "동물 모델은 옳을 때보다 틀릴 때가 더 많다"고 말했다. 장기 칩은 USB 드라이브 크기의 실리콘 기반 고분자에 내장된 가운데 통로가 뚫린 형태다. 이 통로에는 뇌, 간, 폐, 신장 같은 장기의 살아있는 세포와 조직이 줄지어 있다. 장기의 경우 작은 혈관으로 혈액이 흐르는 것을 모방한 액체가 관류한다. 인체에선 약물 분해가 주로 간에서 이뤄지기에 간에서 약물손상이 자주 발생한다. '간 칩'은 실험약물이 간 손상을 일으키는 상황을 미리 보여줄 수 있다.
지난달 예뮬라의 최고과학책임자인 로나 에워트와 잉버 교수 등은 이 기술의 잠재력을 강조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에뮬라가 만든 간 칩은 동물실험을 거쳐 인체 임상시험에 들어갔지만 간에 독성이 있어 실패했거나 승인됐다가 결국 시판이 취소된 약물을 87%의 정확도로 잡아냈다. 독성이 없는 약물은 확실히 걸러냈다.
동물실험에 대한 또 다른 대안으로 장기유사체(오르가노이드)와 디지털 인공신경망이 있다. 오르가노이드는 줄기세포를 시험관에서 키워 사람의 장기 구조와 같은 조직을 구현한 3D 세포 클러스터로 간 및 심장 독성을 예측할 가능성을 보여줬다. 디지털 인공신경만은 약물의 독성 효과를 신속하게 식별해줄 것이란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반면 영국에 본부를 둔 동물실험 옹호 단체인 '동물연구 이해하기'의 웬디 제럿 대표는 비동물적인 방법으로는 약물의 위험성을 모두 포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새로운 약물을 간세포 무리에 떨어뜨려 피해 여부를 확인할 순 있지만 그 약물이 기침을 하게 할지, 그들의 창자나 뇌를 손상시킬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FDA의 나만제 범퍼스 수석 과학자는 "우리는 대체 방법을 연구하는 개발자들이 FDA에 그들의 연구를 제출하도록 지속적으로 장려하고 있다"면서 동물실험을 대체할 방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는 FDA가 동물 실험을 대체하고, 줄이고, 개선하는 방법 개발을 위해 올해 500만 달러의 예산을 책정했다고 밝혔다.
새로운 법이 FDA의 상황을 얼마나 바꿀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법은 동물실험 없이 인체실험을 위한 약을 허가하도록 허용했지만 이를 강제하진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FDA의 독성학자들은 동물 실험을 선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이유는 안락사 처리된 동물의 장기에서 잠재적인 약물의 독성 효과를 검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건필 기자 (hanguru@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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