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물도, 스타일리시”…‘유령’, 장르의 변주곡 (종합)
[Dispatch=정태윤기자] 시작은, 미스터리했다. 서로를 의심하며 긴장감을 끌어 올렸다. 스파이물의 장르적 문법에 충실했다.
그러다 영화는, 어느새 액션 장르로 갈아탔다. 구르고, 달리고, 휘두르고, 쏘고…. 서사의 온도에 맞춰 역동적으로 타올랐다.
이해영 감독이 돌아왔다. 밀실의 두뇌 싸움, 뒤이은 생즉사 사즉생의 액션. 추리와 액션 장르를 스타일리시하게 주물렀다.
여기에 배우 설경구가 중심을 잡았다. 설명이 필요 없는 연기를 펼쳤다. 이하늬, 박소담, 박해수 등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영화 ‘유령’ 측이 11일 오후 용산 CGV에서 시사회를 진행했다. 이해영 감독은 “후반 작업만 1년 반을 진행했다. 수십번을 봤는데, 또 눈물이 났다”며 시작을 알렸다.
◆ ‘유령’의 시작
'유령'은 1933년, 일제강점기 경성을 배경으로 한다. 항일조직 '흑색단'은 스파이인 '유령'을 조선총독부에 비밀리에 심어 놓았다.
조선총독부는 이들을 색출하기 위해 덫을 친다. '유령'으로 의심받는 용의자들은 벼랑 끝 외딴 호텔에 가둔 것. 여기서 의심과 사투가 시작된다.
중국 마이지아 작가의 추리 소설 ‘풍성’을 원작으로 한다. 하지만 이해영 감독은 원작의 모티브만 따왔을 뿐,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심지어 엔딩과 클라이맥스도 바꿨다.
이 감독은 “소설 그대로 영화를 만들기에는 지루할 것 같았다”며 “그래서 유령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시작해봤다. 스파이에서 액션으로 장르의 변형도 줬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유령’은 스파이물에서 액션으로 장르를 변주한 활극을 그렸다. 서로를 의심하는 차가운 심리전에서 뜨거운 액션으로 변신한다.
이야기는 후반부로 향할수록 몰아치는 서사로 힘차게 달려 나간다. 다만, 초반부 긴 서사는 아쉽다. 한국어보다 많은 분량의 일본어 대사로 집중력을 깨뜨리기도 했다.
◆ “설경구가, 설경구했다”
배우들은 호연으로 극의 중심을 잡았다. 설경구는 ‘무라야마 쥰지’를 연기했다. 쥰지는 경무국 소속의 조선총독부 내의 통신과 감독관이다.
유령을 찾아 화려한 복귀를 꿈꾸는 인물이다. 쥰지는 일본땅에서 어머니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의 혼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더 권력에 집착한다.
가장 압권이었던 장면은 설경구(쥰지 분)의 취임식 신이다. 설경구는 원테이크로 긴 대사를 끌고 간다. 쥰지는 조선인들을 강당에 모아 두고 “일본에 빼앗긴 조선을 버리라”고 연설한다.
악랄한 연기임에도 오히려 안쓰럽게 느껴졌다. 설경구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스러움과 자기 연민을 담아 미묘한 표정으로 표현했다.
이 감독은 “쥰지가 자신의 출신 성분과 감정 등 여러 가지를 녹인 신”이라며 “사실 앵글을 바꾸며 끊어 찍으려 했다. 그런데 설경구가 초반 대사를 시작하는 순간 굳어버렸다”고 회상했다.
“연기가 시작됐는데, 그 모습에 모두가 얼어붙었습니다. 컷을 못 외쳤어요. 그 사이에 연기가 끝났습니다. 그 신을 볼 때마다 전율이 느껴져요.”(이해영 감독)
설경구는 “악랄한 대사지만, 자기 연민으로 표현했다. 자신의 콤플렉스를 지우고 권력을 잡으려는 마음을 담았다”고 전했다.
◆ “이하늬·박소담, 워맨스”
이하늬와 박소담의 활약도 눈부시다. 이하늬는 조선총독부 소속 '박차경' 역을 맡았다. 내면의 아픔을 지닌 채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모습을 깊이 있게 그렸다.
이하늬는 "차경은 속은 마그마처럼 끓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죽기 위해 사는 인물"이라며 "묵묵히 생즉사 사즉생의 마음으로 싸운다"고 소개했다.
그는 설경구와 핵심 액션신을 소화했다. 두 사람은 첨예하게 대립했다. 성별은 중요하지 않았다. 주먹을 날리고, 던지고, 총을 겨눴다.
이하늬는 “합을 맞춰 멋지게 보여주는 액션이 아니었다. 주먹을 잡고, 뜯고, 힘을 싣는 액션이었다. 압박감이 상당히 컸다”고 털어놨다.
박소담이 맡은 ‘유리코’는 극의 반전을 맡은 캐릭터다. 조선인임에도 불구하고 총독부 2인자 정무총감의 비서까지 오른 인물이다. 이하늬와 워맨스를 이룬다.
박소담은 이하늬에 대한 고마움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촬영 때 건강상의 이유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이하늬의 따뜻한 말들 덕에 힘차게 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마지막으로 이해영 감독은 “후반 작업만 1년 반을 했다. 수십번을 본 영화다. 정말 공을 많이 들였다”며 “많은 생각과 감정이 오간다. 많이 관심 가져달라”고 인사했다.
<사진=송효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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