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금이 어느 때인데 간첩 사건으로 공안정국 꿈꾸나
국가정보원과 경찰 등이 ‘간첩 수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제주, 경남 창원과 진주, 전북 전주 등지에서 진보단체 인사들이 간첩단을 조직하는 등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혐의를 잡고 지난해 11월부터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나서는 등 수사를 전국으로 확대하는 모양새다. 국정원은 문재인 정부 시절 내사를 진행하다 중단한 사건을 대상으로 최근 다시 수사를 재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정부가 노조·시민단체 등을 압박하는 것과 더불어 방첩 수사를 통해 공안정국을 조성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경찰 등은 제주지역의 진보당 전·현직 간부 등이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과 만난 뒤 그 지령에 따라 지하조직을 만든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또 창원의 진보단체 회원들은 반국가단체를 결성하고 ‘총파업과 결합시켜 보수세력에 타격을 입히라’는 지령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해당 피의자들 모두 혐의를 극구 부인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들도 당국이 간첩단 사건으로 부풀리면서 노동계·농민계가 모두 연관된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공안 당국과 일부 보수언론들이 사건을 과장하며 여론몰이를 한다는 점이다. 이들 사건은 대부분 발생한 지 5년 이상 지난 것들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난 것이 없다. 현재 피의자도 7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보수언론들은 지하조직이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 양 침소봉대하고 있다. 1992년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간첩 사건 이후 최대 사건이라는 근거 없는 주장까지 내보냈다. 검찰은 이에 편승해 수사 인력을 보강한다고 한다. 국민의힘도 거들고 나서 “간첩이 이토록 활개할 수 있었던 데는 지난 정권의 책임이 적지 않다”며 “우리 가족의 주변에 간첩들이 암약하고 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진짜 간첩이 있다면 철저히 수사해 잡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일부러 혐의를 부풀려 사건을 조작하는 일은 결코 있어선 안 된다. 일각에서는 국정원이 내년부터 경찰로 이관되는 대공수사권을 지키려는 의도에서 벌인 일로 의심한다. 여당은 이미 대공수사권이 오랜 노하우와 전문성을 가진 조직에 계속 남아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대공수사권 이관은 권위주의 정부 시절의 간첩조작 사건 등 공안정국 조성에 대한 반성으로 이뤄진 조치다. 간첩 사건을 조작하는 방법으로 국정원 등의 개혁조치를 되돌리려 한다면 시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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