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민심 1위도 당심 1위도 다 안 된다면, 윤 대통령이 지명하라
국민의힘 당대표 출마를 고심 중인 나경원 전 의원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을 사퇴한다고 밝혔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여당 지지층 선호도에서 1위를 달리는 나 전 의원은 지난 10일 “대통령께 심려를 끼쳤기 때문에 사의를 표명한다”며 김대기 비서실장에게 이런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대통령실이 전당대회 불출마를 압박하자 직을 던진 셈이다. 앞서 국민의힘은 당대표 선출 시 ‘여론조사 30%’ 반영 규정을 빼는 당헌 개정안을 밀어붙였다. 민심 지지도 1위인 유승민 전 의원의 출마를 막기 위한 조치로 여겨졌다. 일련의 과정을 보면, 여권 핵심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뜻에 맞지 않는 후보면 누구든 밀어내려는 것 같다. 이럴 거면 윤 대통령이 직접 당대표를 낙점하는 편이 낫지 전당대회는 왜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나 전 의원을 둘러싼 최근 상황은 비정상·비상식이 판치는 여권 전당대회 모습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나 전 의원은 11일에도 “윤석열 정부의 성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통령실과 갈등·충돌로 비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출마 여부를 설 연휴 전까지 결정하겠다고 했다. 지지도 1위 후보가 대통령 눈치를 보며 출마 여부를 결정한다니 이해할 수 없다. “대통령께 심려를 끼쳤다”는 사퇴의 변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다. 나 전 의원 사의 수락 여부를 두고 “인사권자께서 아직 특별한 말씀이 없는 상황”이라는 대통령실 관계자 말은 더욱 한심하다. 권위주의 시대의 정당 모습이 되살아난 듯하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이미 정당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 대표 후보들은 윤 대통령과 관저 식사를 했느니, 대통령과 몇차례 통화했느니 하며 낯 뜨거운 윤심 경쟁만 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집권 2년차를 맞아 국정을 어떻게 이끌어가겠다는 말은 아예 없다. 당직도 없는 윤핵관들이 전대 분위기를 좌지우지하고 있고, ‘당무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했던 윤 대통령은 사실상 후보 정리에 개입하고 있다. 이것이 과연 윤 대통령이 말한 법치이며 자유민주주의인가.
이날 발표된 한길리서치·쿠키뉴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나 전 의원(30.7%)은 여당 지지층 당대표 선호도 1위를 기록했다. 대통령실과 나 전 의원 간 갈등이 알려진 뒤에도 나 전 의원에 대한 지지세가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와 새누리당 친박 인사들은 박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비판한 유승민 원내대표를 내치고, 친박 후보를 골라낸다며 2016년 총선 공천에 개입했다 선거에서 패배하고 끝내 정권도 몰락했다. 윤 대통령과 여당은 당시 상황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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