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자문단 공화국
참여정부는 ‘위원회 공화국’으로 불렸다. 노무현 대통령이 위원회에 힘을 실으면서 김대중 정부 때보다 60%가 많은 579개 위원회가 만들어지자 나온 비판이다. 그러나 위원회 숫자는 진보·보수 정부 간에 큰 차이가 없었다. 이명박 정부가 초기에 431개까지 줄였으나 말기에 505개로 늘어났고, 박근혜 정부 때는 554개 위원회가 활동했다. 문재인 정부 때는 좀 더 늘어난 622개였다. 정부 위원회는 정책 결정에서 전문성 보완과 사회적 합의 도출을 목적으로 한다. 의견수렴이 지연되거나 행정 독주를 추인하는 부작용도 없지 않지만 공정성 확보, 이해관계 조정 등 순기능도 무시할 수 없다. 위원회는 ‘행정 민주화’의 지표이기도 한 셈이다.
윤석열 정부는 위원회 축소를 정책 방향으로 삼았다. ‘110대 국정과제’에 ‘중앙부처·지방자치단체 위원회 일괄 정비’를 포함시켰고, 위원회를 20% 줄이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대신 ‘자문단’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지난해 6월 ‘초격차 전략기술’ 육성정책 마련을 위한 ‘전략기술기획자문단’이 출범했고, 12월에는 각 부처에 ‘2030자문단’이 설치됐다.
윤석열 정부와 자문단은 인연이 깊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이던 2020년 한동훈 당시 검사장이 연루된 ‘검·언유착’ 사건과 관련해 ‘전문수사자문단’을 구성했다. 대검 예규상 자문단은 대검 소관 부서와 수사팀의 후보자 추천을 받아 총장이 위촉하게 돼 있다. 당시 수사팀이 반대했는데도 윤 총장은 소집을 강행했고,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이 소집을 중단하라고 한 ‘지휘권 발동’ 사태로 번졌다.
고용노동부가 이달 중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내에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 자문단을 출범시킨다고 밝혔다.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한 판단과 정책을 학계·전문가의 손에 맡긴다는 말이다. 정식 위원회를 구성하지 않는 것에 정부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를 댔다. 윤 대통령의 ‘노동개혁 속도전’ 지시에 맞추기 위해 노동계를 ‘패싱’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검·언유착 수사와 노동개혁 자문단은 당사자인 수사팀과 노동계를 배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검·언유착 수사가 끝내 뜻대로 됐으니 노동개혁도 통하리라고 보는 걸까. ‘자문단 공화국’의 앞날이 걱정스럽다.
서의동 논설위원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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