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이겼는데 보증금 40%만 지급… 중개사법 개정 요구 확산

김남석 2023. 1. 11. 19:4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전세사기 피해가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임차인 보호를 위한 공인중개사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집주인이 건물의 대출과 임대보증금 액수를 임차인에게 알리지 않아 발생하는 피해가 10년 이상 이어지고 있지만, 법 개정은 요원한 상태다.

11일 공인중개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수도권에서 임차인이 보증금 회수를 위해 법원에 신청한 경매 건수는 총 1016건으로 나타났다. 전년 대비 23% 늘어난 것이다. 최근 '빌라왕' 등 다수의 주택을 보유한 악성 임대인이 속속 드러나면서 관련 건수도 빠르게 늘어날 전망이다.

경매와 함께 보증금 반환 소송도 급증 추세다.

빌라왕 사건처럼 집주인이 사망한 경우 경매나 소송이 불가능하지만,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서 발표하는 악성 임대인 30명이 낸 보증사고 금액만 7584억원에 달하는 만큼 관련 피해와 경매, 소송 모두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HUG가 지난 9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악성임대인 피해 상담센터 이용 건수는 12월 기준 4272건(콜센터 포함)에 달한다. 월 평균 1000건 이상의 피해가 접수되고 있는 꼴이다. 작년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면서 보증금이 집값보다 높은 깡통전세가 빠르게 늘었고, 이전 급등기 때 자금계획 없이 갭투자 만으로 주택을 늘린 집주인들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임차인이 소송에서 이겨도 보증금 전부를 돌려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최근 법원은 깡통전세로 인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 A씨에게 공인중개사와 서울보증보험이 보증금의 40%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공인중개사가 전세계약을 체결할 때 해당 건물의 대출과 임대보증금 액수를 정확히 알리지 않아 세입자가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세입자가 계약을 체결할 당시 해당 건물에는 22억2000만원의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었고, 앞서 확정일자를 받은 임차인들의 보증금은 29억2810만원이었다. 이 건물은 2018년 1월 경매에 넘겨졌고, 49억원에 매각됐지만 근저당권자와 선순위 임차인에게 먼저 배당돼 세입자는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세입자와 공인중개사는 모두 이번 판결에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세입자의 경우 손해배상금이 너무 적다는 입장이고, 공인중개사는 건물주가 관련 자료를 제공하지 않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현행 공인중개사법에 따르면 공인중개사는 집주인에게 근저당권, 보증금 총액 등 중개대상물의 상태에 관한 자료를 요구할 수 있지만, 임대인이 이 자료를 제공할 의무는 없다. 소유권과 전세권, 저당권 등 건물의 권리관계에 대해 임차인에게 설명하도록 돼있지만, 집주인이 공개를 거절할 경우 중개사가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조사권'은 명시돼 있지 않다. 이에 따라 공인중개사가 성실하게 중개해야 할 의무를 위반했다는 판결에도 집주인이 피해액 전부를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전세보증금 반환 소송에서 통상 공인중개사의 책임은 30~50%만 인정된다는 것이 법조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공인중개사들은 임차인과 공인중개사 모두를 보호하기 위해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집주인이 파산하면서 건물이 경매로 팔려도 선순위 채권으로 인해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사례는 수년째 이어져 오고 있지만, 관련 법 개정은 지지부진한 상태"라며 "조사권 없이 의무만 부여한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중개사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토로했다.

법조계도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필수 정보를 고의적으로 누락한 경우 배상 비율이 더 올라갈 수 있지만, 현재는 고의와 불가능을 구분하기 어려워 오히려 세입자에게 피해가 돌아온다는 것이다.

김가람 법무법인 굿플랜 대표변호사는 "이번 사건에서도 상대 공인중개사 측은 확인 자체가 어렵다는 주장을 펼쳤고, 이런 사실이 일부 인정돼 보증금의 40%밖에 돌려받지 못한 것"이라며 "결국 세입자가 악성 임대인을 선별하고 재산권을 보호받은 상태에서 전세계약을 체결하기 위해서는 관련 법 개정이 시급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가 고의적인 전세사기는 민사가 아닌 형사 사건으로 분류할 수 있는 사회적 인식도 필요하다"며 "민사의 경우 집주인이 파산하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지만, 형사사건으로 넘어가면 파산 이후에도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김남석기자 kns@dt.co.kr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