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비결은 표절”이라는 중국기업 어디길래 [Books&Biz]

한예경 기자(yeaky@mk.co.kr) 2023. 1. 11.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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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luence Empire / 룰루 일룬 첸
언더독에서 시총1위 기업으로 성장
텐센트, 철저한 카피캣 전략이 비결

1등 기업의 성장사에 관한 책을 읽는다는 건 흡사 천만관객이 보고 간 흥행 1위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스포일러가 많아 줄거리도 대충 다 알지만 남들도 다 보니까 등 떠밀려 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종류의 기업사 책을 읽는데는 이유가 있다.

하나의 기업을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기 위해 그뒤에 숨겨진 많은 사람들의 의사결정 과정을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재미, 여기에 성공한 기업가들의 순간을 멀리서나마 지켜볼 수 있다는 특별한 경험까지 더해지면 지극히 예외적인 개별 기업의 이야기인데도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감동을 안기기 때문이다. 중국 시가총액 1위 기업 텐센트의 성장사를 담은 룰루 일룬 첸의 신작 ‘Influence Empire’(Hodder & Stoughton 출판)가 바로 그런 책이다.

텐센트는 1998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출신 마화텅이 대학 동창 4명과 창업한 회사다. 홍콩 증시에 상장돼있고 시가총액은 지난 연말 기준 약 550조원으로, 삼성전자의 1.5배가 넘는다. 인터넷 메신저 QQ메신저로 시작해 지금은 중국 사회의 모든 것으로 통하는 ‘위챗’을 갖고 있다. 위챗은 전세계 13억명이 사용하는 SNS앱이지만 사용자의 대부분이 중국인이라 해외에서는 잘 모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스트리밍앱 스포티파이, 전기차 테슬라, SNS 스냅챗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라고 설명하면 그 규모가 와닿을까. 10대들에게는 모바일 게임 ‘클래시 오브 클랜’으로 유명한 핀란드 수퍼셀을 실제 소유하고 있는 회사라고 설명하는 게 더 이해하기 쉬울 수도 있겠다.

이 책에서는 QQ메신저로 시작한 텐센트가 모바일결제, 배달, 소셜미디어, 차량공유, 게임 등으로 어떻게 세를 확장했는지가 비교적 상세하게 기술돼 있다. 그 스토리를 여기서 일일히 소개하는 것은 의미없는 스포일러가 될테니 여기서는 이책에서 특별히 눈길 끌었던 점 3가지만 소개해본다.

첫째, 텐센트의 뿌리깊은 ‘언더독’ 정서다. 시가총액 1위 기업을 ‘언더독’이라 부른다면 무례하거나 무식하거나 둘중 하나이겠지만 실제 텐센트는 언더독에서 시작했다. 지금도 텐센트의 창업자 마화텅(포니 마)이 언론에 등장하지 않는 게 바로 이 때문이다. 중국 인터넷 업계의 3대 거물은 알리바바의 마윈(잭 마), 바이두의 리옌훙(로빈 리), 그리고 텐센트의 마화텅(포니 마)이다.

영어 선생님 출신의 마윈은 언변이 뛰어난데 쇼맨십도 좋아서 어디가나 눈길을 끌었고, 바이두의 리옌훙은 미국에서 컴퓨터공학을 배운 유학파라 시장의 신뢰가 있었다. 반면 텐센트의 마화텅은 중국 션전대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조용하고 예의 바르고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아이였다.

유년기를 션전에서 보낸 그는 천문학에 관심이 많아 아버지의 4개월치 월급을 털어 망원경을 사기도 했는데 정작 천문학과로 진학을 못했다. 션전대에 천문학과가 없어서 비슷하게 택한 데가 컴퓨터 공학과였다고. 그러다보니 중국 인터넷 업계엔 2명의 거인 ‘마(Ma)’씨가 있는데 둘은 서로 다른 마씨라는 우스개가 나올 정도였다.

주목받는 마윈과 그러지 못하는 마화텅. 창업에서도 언더독 기질은 마찬가지였다. 마화텅은 패기넘치는 창업가는 아니었다. 대학 졸업후 통신회사에 취업해 5년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소심하게 친구들과 창업했다. 상장도 비슷하다. 시장에서는 알리바바, 바이두처럼 나스닥에 상장하라는데 본인은 홍콩을 택했다. ‘유저들과 가까운 게 좋다’는 게 상장 주관사의 설명이었지만 실제로 마화텅은 익숙한 시장에서 잘하는 것을 열망했지 새로운 시장에서 모험하고 싶어하지 않았다는 게 책속의 이야기다.

심지어 개인사도 그렇다. QQ메신저에서 만난 여성과 ‘펭귄 아빠’,‘펭귄 엄마’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채팅하다가 5개월만에 셴젠시의 한 호텔에서 소박하게 결혼했다.(QQ메신저의 마스코트가 펭귄이다.)

둘째, 이렇게 언더독이었던 텐센트가 1등 기업으로 성공한 비결은 카피캣 전략이다. 사실 텐센트는 ‘카피캣’으로 워낙 악명이 높은 회사인데다 창업자 마화텅조차 ‘표절은 또 다른 창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카피캣 전략은 새로운 축에도 못 낀다. 하지만 책속에서 텐센트가 얼마나 철저하게(?) 베꼈는지 서술해놓은 부분들이 눈길을 끈다.

예를 들어, 텐센트가 2003년 출시한 인터넷 메신저 ‘QQ쇼’는 당시 한국의 네오위즈가 1999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해 인기를 끌었던 웹기반 커뮤니티 사이트 ‘세이클럽’을 그대로 베낀 것이다. 마화텅과 그 팀들은 세이클럽을 카피하기 위해 콘텐츠를 그대로 번역해달라며 사용자들에게 건당 400위안씩을 지급했다. 세이클럽 서비스를 베끼는 게 아니라 비즈니스모델을 베끼기 위해서였다.

QQ메신저는 무료 다운로드 방식이라 여전히 수익을 못내고 있는 가운데 세이클럽은 어떻게 돈을 버는 지를 알아내기 위해 아바타의 옷을 갈아입히는 서비스를 밤새도록 해봤다는 것. 결국 이들도 휴대폰 요금으로 차감해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온라인 화폐 ‘QQ캐시’까지 만들어냈다.

마지막으로, 감시사회 중국에서 텐센트와 마화텅의 미래다. 텐센트의 SNS앱 ‘위챗’은 단순한 앱이 아니다. SNS로 지인들과 소통하고, 상점에서 물건값을 지불하고, 배달앱으로 음식을 주문하는 것 뿐만 아니라 방역코드를 스캔하기 위한 모든 기능을 위챗이 맡고 있다.

신분증에 신용카드를 더한 이 앱을 못 쓰게 되는 일이라도 생긴다면 대략 난감해진다. 사회생활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니까. 하지만 중국에서 이런 일이 흔히 일어나고 있다. 지난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때 정부의 비민주적 행태를 분노한 이들은 위챗 계정을 박탈당했고, 지난 연말 중국의 20차 공산당대회를 앞두고 이를 비판한 이들은 투명처리됐다. 본인은 글을 올리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주변인들은 못보고 있다는 것. 이런 일이 도대체 어떻게 생길수가 있는지 궁금하지만 중국이니까 가능하다.

감시사회 중국 정부가 모든 게시물들을 일일히 검열하면서 특정 단어, 특정 계정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벌칙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중국 정부는 텐센트에 감시관을 파견해 프로그래밍 단계에서부터 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책에는 기술됐다.

문제는 이제 마화텅과 텐센트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위챗 사용금지 행정명령을 내렸듯이 텐센트가 중국 정부에 가까워질수록 회사의 글로벌한 성장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해외 투자자들은 이미 텐센트의 기술권위주의에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마화텅은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노련한 정치인에 가깝다. 중국 정부와 미묘한 알력다툼을 하면서도 매년 3월 개최되는 중국 최대의 정치행사 양회에 참석하고 있다. 우리로 치면 국회의원 자격으로 입법에 참여하게 되는 셈이다. 민간인 사업가이자 공산당내 거물 마화텅이 감시사회 중국에서 텐센트를 어떻게 키워나갈지를 지켜보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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