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민들에게 한국 변화 맞춘 ‘성평등·인권 교육’ 주력해요”

강성만 2023. 1. 11.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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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 상하이 한인여성네트워크 공감 김경은 대표
김경은 대표가 인터뷰에 앞서 사진을 찍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olet@hani.co.kr

지난해 11월 중순 열린 중국 상하이 한인들의 최대 축제 ‘한풍제’에선 두 편의 한국 독립영화가 상영됐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코코순이의 자취를 찾아가는 <코코순이>와 1970년대 서울 평화시장에서 미싱사·시다로 일한 청춘들의 이야기를 다룬 <미싱타는 여자들>이다.

처음엔 “누가 영화를 보러 오겠느냐” “왜 운동권 영화를 상영하느냐” 같은 부정적인 반응도 있었지만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17회를 맞은 한풍제에서 처음 열린 이 영화제에 유료관객 약 100명이 몰렸고 상영 뒤 두 감독과의 온라인 대화도 밀도 있게 진행됐다.

이 영화제는 오는 5월 창립 5돌을 맞는 상하이 한인여성네트워크 공감(이하 공감)이 주관했다. 공감의 김경은 대표 등 회원들이 영화를 골라 제작사 쪽과 판권 등을 협의했고 상하이 한인들을 대상으로 티켓 판매도 발 벗고 나섰다. 공감은 영화제 수익금 중 각각 3천 위안(약 55만원)씩을 상하이사범대 중국위안부박물관과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시설 나눔의 집에 기부했다.

지난해 3월부터 공감을 이끌고 있는 김 대표를 지난 4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방송작가와 사회복지 전문매체 편집장 경력이 있는 김 대표는 남편 직장 때문에 올해로 12년째 상하이에서 살고 있다. 2007년부터 12년 동안 상하이에서 살다 귀국해 풀뿌리 여성단체에서 활동 중인 신주영 공감 초대대표도 함께 만났다.

지난해 11월 공감이 처음 연 영화제에선 <미싱타는 여자들> 등 두 편의 한국 독립영화가 상하이 한인들과 만났다. 김경은 대표 제공

회원이 약 150명인 공감은 지난 5년 동안 상하이 교민들의 성평등과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는 교육 활동에 주로 힘을 쏟아왔다. 코로나가 오기 전 2년 동안 한국에서 성교육 전문 강사를 초청해 한인 학생들이나 학부모, 유학생을 대상으로 성평등 교육을 펼쳤고 상하이 한국총영사관과 협력해 ‘가정폭력 예방 리플렛’도 만들었다. 세계여성의 날인 3월8일엔 회원들이 함께 창작뮤지컬 공연을 했고 창립 초기엔 매달 성평등 의식 키우기에 도움이 되는 영화나 드라마를 함께 보고 토론도 했다. 가정폭력을 겪는 교민들을 위해 따로 ‘핫라인 전화번호’를 개설해 상담 지원도 했다.

5년 전 공감 출범에는 한국 ‘미투 열풍’의 영향이 있었단다. “사실 아이들 교육 문제가 컸어요. 여기 교민 아이들은 대부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변화하는 한국의 성인지 감수성을 따라가지 못해 귀국 뒤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는 걸 보면서 성평등 인권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죠.”(신주영) “한국처럼 상하이 교민 사회도 성추행이나 가족폭력 같은 문제가 있지만 이를 말할 수 있는 창구가 없었어요. 이런 피해자들을 대변할 단체를 만들고 싶었죠.”(김경은) 신 전 대표는 이어 “공감이 한국과 같은 가정폭력 피해여성 지원체계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단체 존재만으로도 가정폭력의 예방 효과가 있었을 것”이라고도 했다. “가정폭력 등 피해자들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꺼려 실제 상담 숫자는 많지 않아요. 상담 요청이 있으면 피해자에게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 알려주고 필요하면 한국 쪽 전문변호사와도 연결해 주죠.”(김)

방송작가 일하다 12년째 상하이에
5년 전 ‘한국 미투 열풍’ 계기로
한인 여성 150여명과 ‘공감’ 창립
성인지 강의·가정폭력 상담 등

‘코코순이’ ‘미싱타는…’ 영화제도
수익금 한·중 ‘위안부’ 단체 기부

‘사회주의 국가’ 중국의 성평등 의식이나 법체계를 궁금해하자 신 전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강간과 같은 성폭력은 엄격한 증거주의에 기반해 무겁게 처벌하지만 성추행이나 성희롱은 따로 제재할 수단이 없어요. 가정폭력 대응은 한국의 1990년대 수준입니다. 신고해도 지원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부부싸움 정도로 다루더군요.”

지난 3년 상하이 한인사회도 코로나로 큰 시련을 겪었다. 대략 6만 명 정도로 추정된 한인 수가 현재 3분의1 수준으로 줄었단다. “자영업체나 식당, 정보통신 사업을 하던 분들 중 상당수가 귀국하거나 베트남으로 떠났어요. 수입이 전혀 없으니까요. 남은 분들도 우울해 하시죠.” 김 대표 가족을 포함해 상하이 주민들은 지난해 4~5월 6주 동안 아예 집 바깥으로 나갈 수 없는 혹독한 봉쇄를 경험했다. “(6주 봉쇄 동안) 쓰레기는 집 바깥에 내놓으면 청소하는 분들이 가져갔죠. 정부 한 마디에 시민들이 꼼짝없이 집에 갇히는 상황이 이해가 안 되더군요. 봉쇄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겠고요. 봉쇄로 당한 고통보다 왜 집에 갇혀야 하는지 받아들이기가 더 힘들었죠.”

5년 전 공감 창립 때 회원들이 함께 찍은 기념사진. 김경은 대표 제공

그는 중국 당국이 지난달 초 갑자기 ‘위드 코로나’로 전환한 뒤에는 코로나 자가검사 키트 가격이 폭등하고 해열제나 상비약을 구하기 힘들어 한인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상하이 한국상회(한국인회)에서 상비약 공동구매를 위해 수요조사를 했는데 신청자가 너무 많아 어려움이 컸다더군요.”

신 전 대표는 봉쇄 해제를 요구하는 상하이 시민들의 백지시위를 보면서 연대하고 싶었다는 말도 했다. “제가 상하이에 있던 시기는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 1인 권력이 첨단기술과 결합해 통제를 강화한 때였죠. 시민 통제가 갈수록 커져 그 사회에서 희망을 찾기 힘들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백시 시위를 보니 위안이 되더군요. 물론 시위 한번 했다고 통제가 사그라지지는 않겠지만요.”

앞으로 계획을 묻자 김 대표는 “한인들 사이에 공감이 하는 일은 뭐든지 믿고 오겠다는 분들이 많다”며 “교육은 물론 영화나 기행 프로그램 등을 통해 한인 내 성평등 문화 확산에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처음 시도한 영화제도 계속 이어갈 뜻이란다. “최근 상하이에는 30대나 40대 초반 한인들이 늘고 있어요.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도 기획해 공감이 더 젊어질 수 있도록 해야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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