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미래 역량을 키워갈 소중한 현재를 보라
[세상읽기]
[세상읽기] 이병곤 | 제천간디학교 교장
교육 관련 연구보고서를 최종 검토한 적이 있다. 미래사회에 걸맞은 학교 구현을 위한 정책 연구였다. 이상적인 미래학교를 완성하려면 ‘미래사회에 걸맞은 교육과정 혁신’ ‘공간 혁신과 스마트 교육체제 구축’ ‘글로컬 네트워킹 강화’ 같은 도전적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결론이 제시됐다.
다 좋다. 미래교육을 지향하려면 빠질 수 없는 요소일 테니까. 문제는 ‘누군가 그 일을 해야 한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누가 할 것인가? 학교는 구체적인 현실 속에 존재하며, 그것을 움직이게 만드는 동력은 교사에게서 나온다.
‘글로컬 네트워킹’을 예로 살펴보자. 외국 어느 학교를 찾아야 하고, 네트워크를 하려는 동기와 취지를 정립해야 하며, 여기에 참여할 의지를 보이는 학생들을 발견하고 준비시켜야 겨우 한번의 인터넷 화상 교류 정도가 가능하다. 학교 간 직접 교류 프로그램을 기획하려면 교사 한명이 연중에 전담해도 부족하다.
새 미래학교는 ‘연계하고 협력하는 교사공동체’를 기반으로 한다는 문구도 눈에 띄었다. 교사라면 누구나 안다. ‘교사들’은 존재하지만 ‘교사공동체’ 만들기란 공동묘지 옮기는 작업보다 더 까다롭다는 사실을. 공동체는 서로의 믿음과 기여에 기반을 둔다. 그 위에 문화, 정서, 가치, 규범이나 목적에서 일체감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솔직히 바라보자. 이 기준을 적용하면 우리 사회 어디에도 공동체는 거의 없다.
정치인이나 교육행정가들은 좋은 정책을 입안할 때 ‘교사 변인’을 쉽사리 잊는다. 사범대학과 교육대학에서 교원을 양성할 때 지리, 역사, 수학 등 개별 교과 지식전달자로서의 정체성을 갖도록 가르쳤다. 정작 교육현장에 교사를 배치한 이후엔 팔방미인이라도 되는 듯 그들 앞에 이 일 저 일 부려다 놓는다.
교무실 업무를 나눠 맡을 때 ‘교육과정’ 관련한 부서에는 교사들이 선뜻 지원하지 않는다. 심리적 부담감이 크기 때문이다. 개별 교과나 학년 업무라면 모를까 광범위한 교육과정 전체를 아우르며 조정하는 일은 배워본 적이 없다. 게다가 교육과정 영역은 늘 뭔가를 ‘혁신’해야 한다는 강박감도 크다.
일주일에 20시간 수업하는 고등학교 윤리교사를 떠올려보라. 30명씩 10개 반을 맡을 때 수행평가 기록 300개, 학생이나 학부모 상담, 상위 기관의 공문 요청 처리. 교사는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 모른다. 연구와 혁신은 언제 하고, 더 나아가 헌신과 기여가 필수로 따라야 하는 ‘교사공동체’까지 어떻게 꾸릴 수 있겠는가.
대안학교 교사는 더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열심히 가르치며 생활하려고 하는데 눈앞에 안 풀리는 일들만 잔뜩 보인다. 아무리 진심으로 이야기를 전해도 끝까지 말 안 듣고, 크고 작은 사고만 저지르는 학생을 보면 도대체 청소년들은 언제 ‘성장하고 발달하는지’ 정말 모르겠다는 막연함도 밀려든다. 같은 날 교사 사이 협력도 잘 안되는 때가 있다. 알 수 없는 대상과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나 싶다. 두려움과 중압감이 동시에 마음을 짓누른다.
‘대안적 교육과정’이란 용어 앞에서는 더 주눅 든다. 프로젝트 학습이나 인턴십 교육을 뛰어넘는, 더 새롭고 미래지향적인 교육과정이 세상 어디엔가 또 있을 것 같은데, 여전히 막연하다. 어떤 방향을 잡아나가야 할지, 학습을 지속하지 않는 한 그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대안학교 교사가 시대의 담론과 맥락에서 떨어져 나오는 순간 자신의 존립 기반을 잃어버리기 쉽다.
진정으로 미래를 대비한 교육기관을 설계하고 싶다면 지금 이 땅의 교사들이 그것을 수행해갈 수 있도록 그들의 ‘현재’를 돌보면서 개선할 방안을 찾으라. 예를 들어 ‘융·복합 교육’이 중요하다면 교사들이 그런 경험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거나 창출하도록 경험하게 하라. 배운 적 없던 방식으로 느닷없이 학생들을 가르치라고 하면 교사는 어디에서 지식과 경험을 끌어댈 것인가?
교사를 개혁 대상으로 바라보고 그들을 다그치며, 평가하고, 경쟁시키려 했던 영국과 미국의 교육정책은 성공하지 못했다. 우리나라가 본받으려 애쓰는 북유럽 여러 나라의 성과는 교원을 잘 키워서, 가려 뽑고, 전문적 성장을 위해 지원했던 덕이었다. 그들이 해냈다면, 우리도 할 수 있다. 방향을 잡고, 물꼬를 틔우자. 교사 전문성을 키워가되 그들의 ‘현재’를 ‘미래에 필요한 능력 쌓는 기회’로 바꿔주는 일이 그 첫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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