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죄인이면 영원히 죄인인가

한겨레 2023. 1. 11.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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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강릉교도소의 수용자 문학작품 발표회 모습. 연합뉴스

[왜냐면] 이승하 | 시인·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최근 30여 년을 교도소에서 교화사로 재직하다 정년 퇴임한 분과 같이 식사를 했다. 출소 뒤 자신의 전과를 감추는 과정에서 거짓말을 계속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우리 사회가 전과자를 백안시하기 때문에 대다수 전과자를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풍조가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소년원 자원봉사를 여러 해 다니면서 소년원 출신이 성인교도소에 갈 확률이 꽤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10년 넘게 교도소와 구치소에서 ‘시 치료 특강’을 하며 재범률이 높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선물로 받은 안양교도소의 수용자 문예지에 연쇄살인범 유영철의 시가 실려 있어 깜짝 놀랐다. 그의 마음속에 시심이 있었단 말인가? 투고작 ‘사진 속의 사랑’이라는 시가 입상해 상장과 상금까지 줬다는 말에 한 번 더 놀랐다.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책에 분명히 실려 있었다.

교도소에서 수용자들과 상담하고 관찰하면서 교화시키는 일이 직업이었던 그분은 우리나라가 외국과 견줘 의인이나 사회봉사자를 그리 높이 평가하지 않는 풍토가 있다는 말씀도 하셨다. 외국에서는 세금감면이나 취업알선 같은 특혜까지 주면서 의인과 사회봉사자를 추앙하는 분위기가 조성해 있다고 했다.

연말에 법무부 교정본부에서 선물로 달력을 보내주었는데 일력도 월력도 아닌 1주일력이었다. 1년이 52주이므로 52장으로 된 주력이었다. 특이하게도 교도소와 구치소에 수용된 이들이 쓴 시편 아래 그 주의 주력이 실려 있는, 책자 비슷한 주력이었다. 이 시들을 어떻게 모은 것일까?

시중 서점에는 판매되지 않는 비매품 문예지로 <새길>이라는 것이 있다. 이 수용자 문예지의 투고작 심사를 11년째 하고 있어 법무부 교정본부에서 주력을 챙겨 보내줬다. 바로 <새길>에 실린 수용자의 시를 모아 달력을 만들었다. 형을 사는 이들이 글을 쓴단 말이야? 사기꾼이 글을 쓰면 그 또한 사기가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새길>에는 시, 수필, 테마 수필, 수기, 독후감, 용서를 청하는 글 등이 실리는데 수준이 꽤 높다. 다수의 투고작을 심사해 싣기 때문이다. 수용자 가운데는 대학 졸업자도 있고 대학원 졸업자도 있다. 중·고교 시절에 글을 꽤 잘 썼던 이도 있다. 특히 몇 달 시 창작 지도를 하면 집중력을 발휘해서인지 실력이 금방 는다. 답답함, 죄책감, 자유에 대한 갈망 같은 것이 곧바로 시심이 되는 것이다.

2022년 겨울호가 통권 460호인 <새길>은 미 군정 치하인 1948년 4월1일에 창간한 문예지로 현재 출간되는 문예지 가운데 역사가 가장 오래됐다. <현대문학>도 7년 뒤 창간됐다. <새길> 창간호의 제호를 김구 선생이 썼고 설의식이 축사를 썼다. 설의식은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를 거쳐 <신동아>를 총괄 제작한 언론인이다.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언론계를 떠나 있다 광복 뒤 동아일보사 부사장을 했다. 축사를 쓴 또 한 사람은 소설가 전영택으로 당시 <새사람>이란 잡지의 주간이었다. ‘옥에 계신 여러분께’라는 글을 쓴 이는 ‘장백산인’이란 필명을 쓰고 있던 이광수였다. 바로 다음해 2월 반민특위에 체포돼 투옥될 운명임을 모른 채 이런 글을 썼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새길> 50권에 실릴 테마 수필과 용서의 글을 심사하는 동안 온갖 사연을 다 접했다. 필자는 거의 대다수 수용자이지만 교도관인 교도, 교위, 교감과 교화사의 글을 접할 때도 있다. 이분들의 글에는 심사평을 쓰지 않지만 수용자들의 작품은 편마다 모두 심사평을 쓴다. 약점을 꼬집어 질책하지 않고 주로 덕담을 해준다. 글을 써 소액의 원고료도 받고 전국 모든 교도소와 구치소에 비치되는 책에 자신의 문학작품이 실리니 큰 용기를 얻을 것이다.

올해 모 지방신문사에서 공모한 신춘문예의 시 당선자가 장기수다. 시 쓰기를 독학으로 공부하다 부족함을 느껴 방송통신대학에 입학했고 문학동아리에도 가입했다고 한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형기를 마쳐도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작품활동을 통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보속하며 살아가는 게 최선의 삶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올해 어떤 신인의 수상소감보다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사형수나 무기수는 우리 사회와 완전히 격리된 채 살아가고 있는 흉악범이다. 하지만 한순간의 실수로 형을 살면서 진심으로 후회하고 반성하는 이들도 있다. 전과자라고 무조건 배척하면 그들은 다시 그곳으로 갈 수 있다. 교도소가 형량을 채우는 곳에 그치지 않고 말 그대로 죄인이 개과천선할 수 있는 곳이 돼야 우리 사회가 좀 더 밝아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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