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11의 목소리] 대학생 현장실습학기제 운영규정을 지켜주세요

한겨레 2023. 1. 11.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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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대학의 현장실습제도의 취지 자체는 아주 훌륭하다. 학생들이 전공과목을 수강하면서 배운 내용을 기업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익히며 직무교육을 받게 되면, 취업 때는 물론 취업 뒤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많은 실습기관은 싼값에 노동력을 제공받을 수 있는 기회 정도로 여겼고, 전공과는 무관한 업무에 실습생들을 배치하기 일쑤였다.
교육부가 2017년 만든 ‘대학 현장실습 운영 매뉴얼’의 표지.

세훈(가명) | 현장실습 대학생

해마다 10만명 넘는 대학생들이 현장실습을 나간다. 대학생 현장실습은 학교와 전공마다 선택인지 또는 필수인지 등 조금씩 상황이 다른데, 내가 다니고 있는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기술교육대학교 재학생들은 현장실습이 졸업 필수 요건이다.

3학년 겨울방학 중이던 지난해 1월,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나는 학교 IPP(기업연계형 현장실습제)센터를 통해 4주간 현장실습을 나갔다. 회사가 학생을 잘 배려해 실습을 다녀온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다는 교수님의 말을 믿고 기대에 부풀어 현장실습을 나갔다.

그런데, 웬걸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상황에 부닥치는 일이 이어졌다. 우선 출근 첫날부터 전공과 관련 없는 단순 반복업무가 주어졌다. 전선을 풀고 묶는 작업만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해야 했다. 둘째 날엔 속칭 ‘은갈치’로 불리는, 케이블을 은박지에 감싼 뒤 두루마리 형태로 마는 일을 온종일 반복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직무교육은 단 한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째를 맞던 날, 갑자기 회사 생산부장이 실습생들을 불러 모으더니 한바탕 으름장을 늘어놓았다. 회사 대표님이 실습 나온 학생들이 불성실해 보인다며 그런 식으로 하면 일을 시킬 수 없다고 얘기했다는 거였다. “학생들 내쫓으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는 알지?”라는 생산부장의 난데없는 지적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전공과 무관한 업무 배치에 수업시간에 해당하는 직무교육은 왜 하지 않는지 묻자 이런 폭언이 돌아왔다. “저 친구 같은 저런 마인드로 오면 안 된다.” 그렇다. 학생들은 현장실습을 무사히 마쳐야 졸업할 수 있으므로, 웬만한 부당한 대우는 참고 일을 할 수밖에 없다. 그만두면 또다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기에 학생에게는 무조건 손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생산부장의 폭언에 더는 실습을 이어갈 수 없었고, 결국 다른 대체 기관을 찾아 실습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런데 이후에는 또 다른 문제에 부딪혔다. 애초 학교에서 제시했던 협약서에는 실습기관에 대한 꾸준한 모니터링과 더불어 실습기관 귀책으로 실습이 중단될 경우 대체 기관을 연계해 ‘잔여 실습일자를 채울 수 있도록 한다’고 명시돼 있었지만, 학교 쪽은 대체 실습기관을 구하는데 소극적이었다. 시간만 보내고 있을 수 없었던 나는 시정과 감독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냈고, 학교 쪽은 현장실습 지원 사실과 실습 사실 자체를 아예 전산기록에서 삭제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그렇게 나는 그나마 얼마간의 현장실습조차 인정받지 못하게 됐다.

대학의 현장실습제도의 취지 자체는 아주 훌륭하다. 학생들이 전공과목을 수강하면서 배운 내용을 기업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익히며 직무교육을 받게 되면, 취업 때는 물론 취업 뒤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많은 실습기관은 싼값에 노동력을 제공받을 수 있는 기회 정도로 여겼고, 전공과는 무관한 업무에 실습생들을 배치하기 일쑤였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을 위한 학교의 감시 감독은 이뤄지지 않았다.

교육부가 만든 현장실습 운영규정에는 현장실습을 나가는 학생을 보호하기 위한 여러 원칙과 규정이 있다. ‘열정페이 방지’ 규정도 있고, 학점이 부여되는 수업에 해당하는 직무교육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업무 배치 때 전공 관련성 고려해야 하고, 노동력 활용을 목적으로 하는 실습은 금지하는 등의 규정도 버젓이 있다. 이에 대한 감시·감독의 의무는 학교뿐 아니라 당연히 교육부에도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현장실습 운영규정을 실습기관도, 학교도 지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나 또한 학교 쪽의 어떤 도움과 지원도 받을 수 없었고 국민신문고를 통해 민원도 제기해봤지만, 사립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이유로 감독할 수 없다는 교육부의 답변이 돌아왔다. 이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윤지영 변호사님의 도움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고, 현재 답변을 기다리는 중이다.

단기 현장실습제 학교의 운영규정 표준형 준수율은 24.7%라고 한다.(2021년 기준, 한국기술교육대학교 IPP센터) 이는 실습을 명목으로 하여 학생들을 착취하는 게 소수의 사례가 아님을 뜻한다. 학교와 교육부가 이 문제를 확실히 인식하고 개선해, 대학생 현장실습제가 애초 취지대로 학생들에게는 현장 업무경험을 쌓는 기회가 되고 기업에는 인재영입 통로가 되기를 바란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4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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