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상업주의 뒤에 가려진 것들…“산업이 되레 반려문화 이끌어”[반려시대, 누구랑 사세요?③]

전현진 기자 2023. 1. 1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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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17일 경기 연천군에서 허가를 받아 운영하는 강아지 번식장에서 발견된 모견 루시는 장기가 쏟아진 채 죽어가는 상태로 발견됐고 이내 숨졌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체중 2.2㎏. 두 손에 담기는 작은 체구. 가냘픈 다리 사이로 쏟아진 장기가 눈에 띄었다. 심폐소생술을 하며 병원으로 옮겨봤지만 루시는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11월17일 오전 동물권행동 카라 김나연 활동가가 동료들과 함께 경기 연천군에서 허가를 받아 운영하는 강아지 번식장을 찾았다. 이곳에서 동물학대가 있다는 제보를 받고 갔는데 도착하자마자 죽음을 목격하게 됐다. 이 강아지가 목숨을 다한 뒤에야 카라에서 붙여준 이름이 루시다. 2013년 영국 웨일스의 열악한 번식장에서 구조된 ‘캐벌리어 킹 찰스 스패니얼’ 종 모견 이름에서 따왔다. 영국은 루시의 사연이 알려진 뒤 생후 6개월 이내인 개·고양이를 펫숍에서 거래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루시법’을 2020년 시행했다.

번식장 안은 바닥까지 철조망으로 엮어 배설물이 그 사이로 떨어지도록 만든 ‘뜬장’이 가득했다. 이곳은 인기 많은 견종을 번식·교배시키는 곳이다. 모견(엄마개)과 갓 태어난 새끼, 수개월쯤 된 강아지들까지 모두 80마리가량이 발견됐다. 루시는 모견이었다. 새끼를 낳으면 빼앗기고, 다시 교배돼 임신하기를 반복하다 죽었다. 부검 결과 자궁·질 탈출이 있었고, 2차 감염에 따른 폐혈증이 사인으로 나왔다. 탈출된 자궁과 질이 뒤집혀 꼬여 있었는데 반복된 출산이 원인으로 보였다. 업주는 카라의 신고로 군청의 단속을 받은 뒤 동물 소유권을 포기했고, 이후 번식장을 자진 폐쇄했다.

반려동물을 ‘생산’하는 건 치밀한 시장조사, 수요예측과 같은 상업적 고민의 결과물이다. TV에 나와 인기를 얻거나, 사람들이 선호하는 특정 종을 집중적으로 번식시켜 생산하기 때문에 번식장은 ‘강아지 공장’으로도 불린다. 번식장에서 태어난 강아지들은 어미와 일찍 떨어져 경매장으로 보내진 뒤 인형같이 꾸며져 팔린다. 이 강아지들을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열악한 상황에서 태어났는지 알 길은 없다. 이런 구조 때문에 많은 반려견들이 사회화가 되지 않거나 크고 작은 건강 문제를 안고 있다.

번식장에서 생산된 동물은 경매장을 거쳐 전문 펫숍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농림축산식품부가 2021년 실시한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의식조사 결과를 보면 보호자의 22.5%가 반려동물을 펫숍에서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펫숍에서 구하지 않았더라도 번식장에서 생산된 동물을 만날 가능성이 있다. 번식장에서 데려왔지만 직접 키우던 반려견이 낳은 새끼라고 홍보하는 가정 분양처, 유기견 입양을 홍보하지만 실제론 경매받은 동물을 파는 곳 등이 꽤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17일 경기 연천군에서 허가를 받아 운영하는 강아지 번식장 내부에 모견들이 뜬장 안에 갇혀 있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김나연 활동가는 “강아지들의 출신이 ‘세탁’되는 경우도 있다”며 “분양 과정은 사실상 무법지대”라고 말했다. 내가 키우려는 반려견이 어디서 태어나 어떻게 나와 만나게 됐는지 알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전진경 카라 대표는 “잘 팔리는 품종을 골라 교배시킨 뒤 인기가 없어지면 고통스럽게 죽도록 내버려두거나 책임지지 못하고 버리는 일이 많다”며 “한쪽에선 고통스럽게 죽어가는데 다른 한쪽에선 반려견을 패션용품처럼 고르는 듯한 문화는 잘못됐다. 반려동물 소비 자체가 학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려동물의 상업적 생산뿐 아니라 사료, 용품, 의료 등과 관련된 시장도 커지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를 보면 국내 반려동물 연관 산업 규모는 2014년 1조5684억원이었다. 산업별로 보면 사료가 4841억원, 동물 및 관련 용품 3849억원, 수의 서비스 6551억원, 장묘 및 보호 서비스 338억원, 보험부문이 6억원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원은 반려동물 연관 산업 규모가 2014년부터 매년 14.5%씩 성장해 2027년에는 6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했다.

동물복지 연구자인 김성호 한국성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반려라는 단어가 시장에서 확대되는 배경에는 인간관계로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의 필요가 있다”며 “마케팅 산업에서 이런 필요를 포착해 활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려동물을 가족의 일원으로 여기는 ‘펫휴머니제이션(Pet-humanization)’의 확산을 프리미엄 제품 판매에 활용하는 흐름도 있다. 고가의 특정 상품을 구매하지 않으면 ‘가족과 마찬가지인 반려동물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져 과잉소비를 자극한다.

이런 흐름을 타고 반려동물을 뜻하는 ‘펫’과 고급을 의미하는 ‘프리미엄’이 합쳐진 ‘펫리미엄’ 상품도 등장했다. 유기농 원료 등을 사용한 고급 사료는 이미 보편화됐고, 명품 브랜드에서는 수백만원짜리 사료 그릇이나 목줄, 의류, 가구, 화장품 등 이른바 ‘펫셔리’(펫+럭셔리) 제품을 판매한다.

인류학자인 전의령 전북대 교수는 저서 <동물 너머>에서 “흡사 육아 커뮤니티와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반려동물 커뮤니티에서는 종종 최상의 돌봄과 반려가 무엇인지를 둘러싸고 의견을 나누거나 미묘한 긴장 및 충돌이 일어나는 모습이 감지되는데, 이는 궁극적으로 반려인으로서 어떤 소비 주체가 될 것인지와 밀접히 연결된다”고 말했다. 이어 “‘반려묘의 건강을 위해 프리미엄 사료를 제공할 것인가, 생식을 제공할 것인가’부터 ‘반려견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생일파티를 열어줄 것인가, 동물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게 할 것인가’에 이르기까지 반려인이 갖는 애정과 관심은 종종 ‘무엇을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동시적”이라고 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반려산업이 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하지만 반려산업이 되레 반려문화를 이끌어가는 건 주객전도라는 비판이 나온다. 전진경 대표는 “꼭 키울 사람들만 키우면서 평생 반려동물을 돌봐주는 게 바람직한 반려문화”라며 “반려동물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과 전혀 상관없는 산업들이 성행하고 있는데, 의료·옷·사료 등 펫산업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과도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구경민·김지환·노도현·성동훈·이준헌·장용석·전현진 기자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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