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 갈라졌다, 한국전력의 송전탑 사업

신동윤 2023. 1. 11.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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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밀양 송전탑 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8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밀양에는 상흔이 남아있다. 처음엔 한국전력과 지역주민들 간의 갈등이었지만, 나중엔 주민들간의 갈등이 됐다. 주민들 간의 송사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송사의 배경에는 한전의 돈이 있다. 사업 당시 한국전력은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마을에 지원금을 지급했다. 지원금 이야기가 나오자 주민들 간에 지원금을 받냐 마냐 문제로 다투는 일이 생겼다. 돈을 받고 난 뒤에는 일부 주민이 지원금을 마음대로 썼다가 발각되는 일도 벌어졌다. 마을은 파괴됐다.

이 문제는 공간을 옮겨 강원도에서 반복되고 있다. 한전은 2025년 완공을 목표로 동해안과 수도권을 잇는 500kv 초고압 직류 송전탑 433기를 설치하고 있다. 높이 75m, 아파트 20층 높이의 거대한 송전탑이 경북 울진부터 경기 가평까지 231km에 걸쳐 세워질 예정이다. 신한울 원자력발전소와 강릉, 삼척의 석탄화력발전소가 새로 들어서면 공급 전력량이 기존 송전망이 허용하는 용량을 넘어서기 때문에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새 송전망이 필요하다는 것이 한전 측 설명이다.

평창군에는 78기의 송전탑이 세워질 예정이다. 군내 14개 마을을 통과한다. 평화롭던 마을 공동체에 비상이 걸렸다. 최소한 주민들이 송전탑 사업의 필요성을 납득할 수 있도록 누군가 설명이라도 해야 했다. 하지만 한전은 그렇지 않았다. 대신 한전은 8년 전 밀양에서 했던 것과 똑같은 일을 했다. 일부 주민들에게 돈을 건넸고, 마을은 갈라졌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평창군 6개 마을을 돌아다니며 한전의 송전탑 사업이 낳은 갈등의 실상을 4개월에 걸쳐 카메라에 담았다.

요식행위에 불과했던 주민 설득 절차

송전탑 위치는 입지선정위원회에서 1차로 선정한다. 그 후 전력영향평가와 환경영향평가를 거쳐 확정된다. 지역 주민들은 모든 절차들이 요식행위에 불과했다고 주장한다. 

한전은 지난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송전탑 입지를 결정하는 입지선정위원회를 13차례 열었다. 한전은 입지선정위원회 덕분에 지역 주민의 의사를 반영했고 이로써 지역 갈등을 최소화했다고 홍보한다. 하지만 당시 동해안 송전탑 사업 입지선정위원회에 참여한 윤경섭 씨의 말은 다르다. 

윤 씨는 한전 측의 입장을 설명하는 홍보성 설명회였을 뿐 주민들은 일방적인 사업 추진을 위한 '허수아비'에 불과했다고 말한다. 그는 입지선정위원 당사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송전탑이 어느 마을, 어디에 세워지는지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윤 씨가 이러한 한전의 사업 추진에 대해 회의에서 문제 제기하자, 그는 다음 회의에서 배제됐다. 문자로 통보하던 회의 안내는 더이상 그에게 오지 않았다.

주민들은 깜깜이나 마찬가지인 상태에서 입지선정위원회가 선정했다는 입지를 안내받았다. 한전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설명회를 열었다. 피해 당사자인 주민이 송전탑 건설에 대해 의견을 낼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기회였지만, 이 설명회에서조차 한전은 일방적이었다고 한다.

그건 설명회가 아니에요. 그냥 확정된 거 그냥 알려주는 거예요. 어디로 지나가고 어디로 지나가고 하는 거. 그냥 자기네들끼리 계속 연설만 하는 거야. 누가 질문을 하면 여기 질문했다가 저쪽으로 다른 데로 넘어가. 아니야, 답이 안 나와. 그러니까 어떤 분이 화가 나서 막 나가시더라고.
- 계윤옥 / 강원도 평창군 방림3리

송전탑 찬성을 위해서... 한전의 '마을 파괴 전략'

절차 문제를 해결한 한전은 평창의 마을마다 수억 원대의 돈을 뿌렸다. ‘특별 지원금’이라는 명목이었다.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이 돈은 마을 공동체를 갈라놨다. 한전은 손쉽게 주민들의 반대를 무마시켰다. 한전이 지원금을 건네는 방식은 마치 정교하게 구성된 단계별 심리게임과 같았다.

# 첫 번째 전략 - 마을 공동체에 균열 내기

송전탑 찬성 의견을 모으기 위한 첫 단계는 주민 갈등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었다.  한전은 마을 설명회에서 주민들이 납득하고 공감할 수 있을 만한 설명을 하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꺼낸 지원금 얘기는 주민들의 뇌리에 남았다. 지원금 지급 방식이 특이했다. 사업에 빨리 찬성할수록 지급되는 지원금 액수가 커졌다. 반대로 찬성을 미루면 지급되는 지원금도 줄었다.

실제 한전이 2020년 6월에 작성한 ‘500kv 동해안-신가평T/L 건설사업 우선 합의마을 특별지원 계획’이라는 내부 문건에 따르면, “먼저 합의하면 피해에서 이익으로 개선함으로써 협상 기간을 단축하고 조기에 합의를 도출하여 본 사업이 적기에 추진될 수 있도록 우선 합의된 마을에 대한 인센티브 지급해 줄 것을 요청한다”라고 적혀있다.

한전이 2020년 6월에 작성한 ‘500kv 동해안-신가평T/L 건설사업 우선 합의마을 특별지원 계획’이라는 내부 문건

인센티브가 필요성에 대해서는 “입지 선정 과정에서 정보에 소외된 주민 · 단체의 반대 여론이 확산되고, 부정적 언론 보도가 지속되고 있어 제 2의 밀양 사태 예방을 위한 선제적 대응조치 필요하다”라고 적혀있다. 

송전선 사업에 빨리 찬성하는 마을일수록 더 많은 돈을 주겠다는 이야기에 주민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송전탑 설치로 직접 피해 받는 주민보다 피해를 받지 않는 주민들이 훨씬 많지만, 지원금을 받으면 혜택은 모두가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얘네들(한전)이 하는 그 수법이 뭐냐면 '올해 안 하면 인센티브는 없다'라고 하며 주민들한테 설득하는 거야. 그말을 들은 일부 주민이 다른 주민들에게 '올해 안 하면 몇 억씩 되는 지원금을 포기하게 되니 빨리합시다'라고 부추기고, 그러니까 주민들은 '그래, 그럼 빨리 받자', 이런 식으로 됐던 것 같아... 
- 김정례 / 강원도 평창군 진조리 이장

# 두 번째 전략 - 1:1 각개격파

함께 반대 목소리를 내던 주민들은 갈라서기 시작했다. 어차피 진행될 사업이면 빨리 동의해서 지원금을 더 받자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찬성과 반대 의견이 분분한 상황에서 한전은 한 번 더 움직였다. 사업 진행을 위해서는 마을 전체의 ‘찬성 입장’이 필요했다. 

한전의 직원들은 찬성 측 주민을 찾아가 동의서를 받아달라고 부탁했다. ‘송전탑 반대’를 외치던 주민들의 대오가 인센티브를 지급한다는 한전 설명회 이후 흐트러졌다는 점을 이용했다. 평창군 방림 3리만 놓고 보면 피해 영향권에 놓이는 건 마을 전체 59세대 중 14세대뿐이었다. 찬성 주민들은 송전탑 건설에 직접적인 피해를 받지 않은 지역에 사는 주민들에게서 먼저 동의 서명을 받아냈다. 직접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주민들만 덩그러니 반대 측에 남았다. 한전이 진짜 설득하고 보상해야 할 당사자들이었다

강원도 평창군 방림3리 한전 송전탑 사업 찬성 동의서

피해를 입는 사람이 사실 가장 한전에서 타협을 해야 할 첫 번째 대상이죠. 그런데 그 대상과는 절대 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은 완전히 고립시키고 피해를 입지 않는 주민부터 설득을 하니까 그 사람들은 피해를 입지 않는 주민이니까 당연히 한전에 협조적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거기에 지원금을 주고 큰 세력을 만들어 놓으면 이 사람들은 힘을 못 쓰게 되는  거죠. 
- 류동수 / 강원도 평창군 계촌1리

# 세 번째 전략 - 공론장 무력화

과반의 마을 동의서를 받은 뒤, 한전과의 협상은 ‘마을 대표 5인’에게 위임됐다. 말이 ‘대표단’이지 주민들의 동의를 거치지 않은 인물들이었다. 전통적으로 마을의 중대사를 결정해 온 마을 총회는 유명무실하게 됐다. 반대 입장을 낼 공론장은 사라졌고, 피해 주민들은 더욱 고립됐다.

마을 회의록도 보시면 마을 대표 5명하고만 했어요. 그걸로 한전이 인정을 해 주는 거예요. 이게 총회냐 아니지 않냐 그랬더니 근데 그걸로 다 인정해서 한전이 반대쪽에서 이거 아닙니다라고 얘기하는 주민 의견은 싹 무시하고 
- 이경주 / 강원도 평창군 방림 3리

성공적인 한전의 전략, 결과는 마을 공동체 파괴

한전은 약속대로 일찍 합의한 대가로 방림 3리에 총 8억 원의 특별 지원금을 지급하고 5년 간 매해 4천만 원씩 인센티브를 지급하기로 했다. 한전은 원하는 것을 얻었고 마을에는 돈이 생겼다. 모두에게 좋은 결과였을까. 마을 대표단이 지원금을 송전탑 피해와 무관한 기준으로 나누면서 주민 갈등은 날로 깊어졌다. 그리고 정작 갈등의 원인이 된 한전은 이 문제에서 빠졌다.

한전은 송전탑 사업 찬성 대가로 방림3리에 8억 원의 특별지원금을 지급했다.

한전에서 그냥 돈만 던져주고 너희들끼리 알아서 해라 이게 저는 너무 이해가 안 가요. 전기는 우리만 쓰고 있는 게 아니니까 그래서 그거는 찬성을 하지만 그거에 대한 보상은 정확하게 본인들이 한전에서 나와서 정확하게 해줘야 된다는 게 맞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근데 그거를 마을에 이렇게 던져주면 돈 8억. 천만 원만 던져줘도 난리 날걸요, 아마. 근데 그 8억이란 돈을 던져줬으니 눈들이 얼마나 시뻘게졌겠어요. 
- 계윤옥 / 강원도 평창군 방림 3리

명목상 공동체 파괴를 위해 한전이 앞에 나서서 한 일은 없다. 하지만 이 마을 파괴 사태의 배경에는 밀양에서 평창으로 장소만 바꿔서 반복된 한전의 심리 전략, 그리고 이 비극의 매개가 된 한전의 돈이 있었던 건 부인할 수 없다.

모든 것을 보상이나 인센티브를 가지고 주민들을 설득해서 찬성으로 유도를 하려고 하는 그 접근법 자체가 한전에서 당신들 왜 공동체를 파괴하냐 이렇게 하면 아마 우리는 파괴한 적이 없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거예요. 그렇지만 현재 진행 방식으로 봐서는 결과적으로 공동체를 철저하게 파괴하는 결과밖에 낳지 않습니다.
- 이종한 /전 한국심리학회장

공익법률센터 농본이 한전을 상대로 송전선 특별 지원금에 대한 정보공개소송을 한 결과, 지난 2012년부터 2022년까지 한전이 송전선이 지나는 마을에 지급한 지원금 규모는 전체 2,649억 원인 것으로 드러났다. 평창이 속한 동부사업 구간에는 총 703억 원의 돈이 지급됐다. 한전은 지금까지 이 지원금이 어디에 어떻게 지급됐는지, 지급의 근거는 무엇인지 밝히지 않고 있다. 이 지원금은 국민이 낸 전기 요금에서 나간다.

2012년부터 2022년까지 한전은 송전선 건설을 위해 마을 주민들에게 2649억 원의 특별지원금을 지급했다.

송전선을 건설하는 단계에서 지원되는 특별지원금은 근거 법률도 없고 법령도 없고 그냥 한전 내부 지침에 의해서 돈을 지원하고 있는데 그 근거 지침도 공개 못하고 마을별로 얼마씩 지급했는지도 공개 못하겠다는 게 사실 그게 말이 안 되는 거죠. 동해안 신가평 500kv 초고압 직류 송전선 같은 경우에는 아직도 사업이 확정된 게 아닙니다. 전원개발실시계획 승인이 돼야지 사업이 확정되는 거고 승인 전에 환경영향평가를 거쳐야 되는데 아직 환경평가 절차도 다 끝나지 않은 상황인데 그런데 돈이 뿌려지고 있다는 거죠. 이거는 일종의 초법적인 일이죠.  법이나 이런 거 하고 전혀 무관하게 그냥 돈을 국민들이 낸 전기 요금을 마구 쓰고 있다고 봅니다. 
- 하승수 변호사 / 공익법률센터 농본

이 같은 송전탑 사업 방식도 문제지만, 동해안 일대에 에너지 시설을 세우고 긴 송전망을 늘어뜨려 수도권의 전력 공급을 담당하게 한다는 한국전력의 동해안 송전선 사업 취지에도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나온다. 에너지전환포럼 분석 결과, 2020년 기준 강원도 전체의 재생에너지 자립률은 20%, 평창군만 보면 58%에 달하는 반면, 수도권 66개 시군구 중 49곳은 1%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기준 평창군의 재생에너지 자립률은 58%에 육박하지만, 수도권 66개 시군구 중 49곳은 1%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동해안 송전탑 사업은 마지막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 승인만을 남겨놓고 있다. 제대로 된 숙의와 합의 절차 없이 강행되는 사업으로 인해 강원도 주민들은 졸지에 수도권 전력 공급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송전탑 사업 과정에서 배제됐던 자신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라는 것이 이들의 요구다.

전체적으로 피해 주민들이 제일 문제가 되니까 정부에서도 귀 기울여 주시고 저희 같은 강원도 송전탑 반대 위원회에서는 진짜 목숨을 건 투쟁을 하려고 지금 계속 준비 중에 있으니까 제발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줬으면 좋겠습니다 
- 장순구 / 강원도 평창군 진조리

뉴스타파 신동윤 shintong@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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