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시선] 이환위리, 환부작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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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의 수장(首長)이 메시지를 전달할 때 사자성어(四字成語)를 인용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도 없어 보입니다.
단 네 개의 글자로 자신의 생각을 널리 펼쳐 보일 수 있고, 옛 이야기에 얽힌 깊은 뜻을 에둘러 전할 수도 있어서입니다.
꼬일 대로 꼬인 이 문제들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다면 성장과 퇴보의 갈림길에 선 대한민국호가 뜻하지 않은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다는 것이 허 회장의 판단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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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이환위리(以患爲利)를 꺼내 들었습니다. 이는 '손자병법' 군쟁편에 나오는 말로, 위기를 극복해 오히려 기회로 만든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흔히 이우위직(以迂爲直·길을 우회함으써 곧바로 가는 자를 앞지른다는 뜻)과 한쌍을 이뤄 사용되곤 하는데, 전황이 어려울 땐 '가까운 길을 먼 길인 듯 돌아가는 자가 승리한다'는 우직지계(迂直之計)와 연관이 있습니다. "(세계적 인플레이션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경영환경이 어렵지만 비즈니스 전환 등을 통해 새로운 해법을 찾으면서 더 큰 도약의 시간을 준비하자"는 최 회장의 지혜와 의지가 이 네 글자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셈입니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환부작신(換腐作新)을 거론했습니다. 글자 그대로 낡고 썩은 것을 도려내어 새것으로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출처가 불명확한 이 말은 후한 말 역사서 '춘추좌씨전'에 나오는 제구포신(除舊布新·옛것을 버리고 새것을 펼친다는 뜻)과 그 뜻이 다르지 않습니다. 전방위적 구조개혁을 주문하면서 허 회장이 지목한 제구(除舊)의 대상은 저출산과 고령화, 주력사업의 노후화, 잠재성장률 저하 등입니다. 꼬일 대로 꼬인 이 문제들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다면 성장과 퇴보의 갈림길에 선 대한민국호가 뜻하지 않은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다는 것이 허 회장의 판단인 듯합니다. "이를 위해선 국민과 정치권, 기업이 한마음 한뜻으로 원팀이 되어 힘을 모아야 합니다. 경제계도 기업의 체질개선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매진할 뿐 아니라, 더 적극적인 투자와 고용을 통해 이번 위기가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라고 허 회장은 강조했습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이 언급한 금석위개(金石爲開)도 신년사에 자주 등장하는 사자성어 가운데 하나입니다. 전한 말 학자 유향이 쓴 '신서(新序)' 잡사편에 나오는 이 말은 활을 잘 쏘는 초(楚)나라 사람 웅거자(熊渠子)에 관한 고사에서 비롯됐습니다. 이야기에 따르면 어느 날 웅거자가 밤길을 가다가 길가의 바위를 보고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것으로 생각해 활을 쐈더니 화살이 바위를 뚫고 들어가 깊이 박혔다고 합니다. 즉, 강한 의지력으로 열과 성을 다한다면 딱딱한 쇠붙이도, 돌도 능히 뚫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여리박빙(如履薄氷·살얼음을 밟는 것과 같다는 뜻)에 비유되는 작금의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이런 마음가짐인지도 모릅니다.
jsm64@fnnews.com 정순민 생활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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