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조 적자' 앞에 선 佛 결단…"더 늦게, 더 많이 줄게" 연금 개혁 시동
프랑스 정부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숙원 사업인 연금 개혁을 본격 추진한다. 현행 62세인 연금 수급 최소 연령을 64세까지 상향하는 것이 개혁안의 골자다. 국민이 더 오래 보험료를 내게 하고 연금 수령 시기를 늦춰 기금 고갈을 막겠다는 것이다. 반대 여론이 상당한 상황인데, 노동계는 파업으로 대응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10일(현지시간) AFP·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엘리자베트 보른 프랑스 총리는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연금 개혁안을 공개했다. 연금 개혁안 초안에는 법정 정년을 현 62세에서 2027년 63세, 2030년 64세까지 상향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한국은 법정 정년(만 60세)과 연금 수령 연령(만 65세)이 다르지만, 프랑스는 퇴직 후 연금을 수령하는 연령이 정년과 똑같이 설계돼있다.
수급 자격은 근로기간 요건을 채운 이들만 적용된다.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사람들, 경력 단절을 겪은 여성들의 경우 지금처럼 67세까지 일해야 연금을 받을 수 있다.
반발을 우려해 연금 지급액은 늘릴 방침이다. 보른 총리는 현재 최저임금의 75%인 월 1015유로(약 135만원)에서 연금 상한액을 최저임금의 85%인 월 1200유로(160만원)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 정부는 연금 개혁안을 올여름이 끝날 무렵부터 적용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다만 이번에 발표한 개혁안은 최종안이 아니며, 공청회 등을 통해 야당 및 노조 의견을 수렴, 이를 반영할 계획이다. 이후 오는 23일 국무회의에서 연금 개혁안을 심의한 뒤 다음 달 6일 본회의에 상정할 예정이다.
보른 총리는 "연금 시스템에 변화를 주는 것이 국민들에게 불안과 두려움을 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적자를 늘리는 건 무책임한 것이다. 연금 개혁을 위해 대중의 지지를 모으는 것은 정부의 임무"라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집권 초기부터 연금 개혁을 추진했지만 노조를 중심으로 한 거센 저항에 부딪혀 번번이 성공하지 못했다. 전국적인 반대 시위와 전면 파업을 마주한 프랑스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치자 관련 논의를 잠정 중단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해 하반기 연금 개혁안을 내년에 시행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재추진 의사를 밝혔다. 올해 신년 연설에서는 "2023년은 연금 개혁의 해"라고 천명하며 "우리는 더 오래 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연금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정부가 연금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마크롱 대통령의 언급처럼 프랑스 연금 재정은 현행 제도를 버틸 수 없는 상태다. 프랑스 연금자문위원회는 지난해 9월 보고서에서 2023년부터 연금이 적자로 접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적자 폭은 해마다 국내총생산(GDP)의 0.5~0.8%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적게는 19조원에서 많게는 30조원가량 발생하는 적자를 국가가 충당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연금 수령 연령을 상향하는 개혁안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여전하다. 프랑스 여론조사기관 오독사가 지난 4~5일 진행한 설문 조사에서 법정 정년을 현행 62세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74%를 기록했다. 정부 개혁안대로 64세 퇴직에 찬성하는 응답자는 16%에 불과했다.
야당 역시 비협조적이다. 극좌로 분류되는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와 극우 성향인 국민연합(RN) 등 정당들은 개혁안 통과를 지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노조는 전면적인 파업을 예고했다. 프랑스 주요 노조 8개 단체는 오는 19일 도심 곳곳에서 파업을 개최할 방침이다. 노동민주동맹(CFDT)의 사무총장인 로랑 베르제는 이날 발표된 개혁안을 '최악으로 잔인한 정책'이라고 표현하며 "연금 제도는 위기에 놓이지 않았다. 잔인한 개혁안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비난했다.
박가영 기자 park080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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