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자체 막아선 안되지만"…도 넘은 혐오 발언까지 이대로?
수사·사법당국 적극 조치 목소리…정보통신망법 위반 소지도
(서울=뉴스1) 조현기 유민주 기자 = 전국 곳곳에서 집회와 맞불집회가 이어지면서 양측의 충돌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차마 입에 담기 힘든 혐오 발언이 이어지면서 '선을 넘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법률 전문가들은 헌법에 명시된 '집회의 자유'는 보장돼야 하는 만큼 집회 자체를 원천적으로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집회 과정에서 나오는 모욕과 명예훼손, 사자명예훼손 발언은 제지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수사당국과 사법당국의 적극적인 대응과 판단으로 혐오 발언을 조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3년째 계속되는 위안부 맞불 집회…이태원서 1달째 혐오 발언도 이어져
11일 낮 12시에 서울 서머셋팰리스서울 호텔 앞에서는 제1578차 수요시위가 열렸다. 참석자들은 일본 정부의 전쟁범죄 인정과 사죄를 재차 촉구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일본 정부는 한반도 불법강점, 강제동원, 성노예제, 민간인학살, 온갖 착취와 폭력, 인권침해 행위를 지금이라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진정어린 사죄와 법적 배상을 당장 실시하라"고 요구했다.
수요시위 맞은편에는 이를 비판하는 맞불 집회가 열렸다. 맞불 집회를 중인 한 단체 소속 회원은 "도대체 왜 위안부 집회를 하게 두냐"며 "지금 (정의연의 주장이) 외교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요시위에 참석한 박준성씨(24·남)는 "이 시위는 30년 동안 해왔는데 맞불집회가 왜곡하고 의미를 폄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혐오 발언으로 인해 피해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도 맞불 집회에서는 '이XX의 입을 주리를 틀고 싶다', '매춘녀' 등과 같은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발언을 비롯해 '정신병'이라는 피켓 등 과격한 구호를 들며 시위를 이어갔다.
아이 두 명의 손을 잡고 길을 걸어다던 시민도 기자에게 "정의와 비정의의 싸움 같다"며 "맞불집회에서 도대체 무엇을 주장하는지 이해가 안된다. 납득이 잘 안 된다"고 일갈했다.
정의기억연대 측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적 고소·고발 조치를 하고 인권위에 진정서도 제출했다. 하지만 매주 수요일마다 양측 간 갈등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3월 시작된 경찰 수사는 아직까지도 가해자를 특정하지 못했다며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인권위에도 지난해 1월 진정서를 냈지만, 긴급구제 조치 외에 관련 사안에 대한 최종 결론을 짓지 못하고 있다.
수요시위 참가자들과 위안부 할머니들은 계속 2차 가해에 시달리고 있다.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2019년 12월부터 벌써 만 3년이 지났다"며 "지난해 마지막 집회는 그 해 돌아가신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리는 굉장히 중요한 날이고 그들도 알고 있다. 그런데 그날 고성을 지르고 야유를 퍼붓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힘들었다"고 울먹였다.
종로뿐만 아니라 이태원에서도 특정 단체가 지난달 14일부터 약 1달째 매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에게 혐오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이로 인해 유족들이 극심한 2차 가해와 정신적인 충격에 시달리고 있다. 이에 인권위 조사관이 지난달 30일 이태원 참사 추모제가 열린 시민분향소를 찾아 현장 조사를 진행했다.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는 계속되는 분향소 앞 및 온라인 공간의 혐오 발언에 대해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 특히 시민들에게 시민대책회의 또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으로 관련 내용을 제보할 경우 법적 대응의 근거로 도움이 될 것 같다며 관심을 부탁했다.
◇ 혐오 발언 모욕·명예훼손으로 처벌 가능…수사·사법당국 적극적인 태도 취해야
이주희 민변 변호사는 "유가족에 대한 욕설 및 혐오 발언은 모욕, 명예훼손 죄가 될 수 있다. 온라인으로 송출시 정보통신망법 위반의 소지도 있다"며 "법적으로 검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법률사무소 이유의 박은선 변호사는 "표현의 자유라 할지라도, 사자의 명예를 훼손하도록 둘 수는 없다"며 "'시체팔이'라던가 이런 입에 담기 힘든 표현들은 당연히 명예훼손 또는 모욕죄로 형사처벌 대상"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혐오성 집회가 계속되는 상황에 대해 근본적으로 진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맞불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에겐 왜곡된 자기방어 심리가 작용하고 있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선 우리 사회가 너무 심하게 양극화가 돼 있어 상대방의 아픔과 슬픔에 공감하는 게 많이 떨어졌다는 설명이다.
허지원 고려대학교 심리학부 교수는 "개인의 불안감이나 취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오히려 위안부 할머니, 이태원 유가족들에게 자기방어로 공격적인 발언을 하는 것 같다"며 "이를 심리학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선 사람들이 좀 더 연대하고 유대감을 느껴야 한다"고 분석했다.
김문조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우리 사회가 단순히 경제적인 소득의 양극화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는 양극화 프레임이 굳어지고 있다"며 우려했다. 이어 "사람들의 남의 슬픔이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단절됐다"며 "우리 모두가 상대방의 입장에 좀 더 귀를 기울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choh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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