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공공기관이 쏘아 올린 도시 스마트팜…연대의 손길에 힘입어 쑥쑥 성장

김광수 2023. 1. 1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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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본사 중앙·지역공공기관 9곳 기금 조성해
스마트팜 창업하면 5천만~1억원씩 지원하고
놀리는 국유지·공공건물은 싸게 빌려주고
소외계층·청년 고용에 수출업체도 나와
부산 연제구 동해선 거제해맞이역 1층에 자리한 스마트팜. 이곳에서 재배한 상추 등은 샌드위치 등으로 만들어 판매한다. 김광수 기자

“이 조그만 공간에서 무공해 농작물이 24시간 연중 생산됩니다.”

인공지능기술과 첨단 정보통신을 활용한 식물농장인 ‘스마트팜’을 운영하는 황태연(46) ‘협동조합매일매일즐거워’(즐거워) 대표는 지난 6일 <한겨레>와 만나 “도심 자투리 공간에 스마트팜을 설치하면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기후변화로 발생하는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며 고용문제를 해결하는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즐거워 스마트팜은 국내 최초의 철도역 스마트팜이다. 부산시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인 연제구 동해선 거제해맞이역 1층에 있다. 승강장과 멀리 떨어진 외진 곳에 엘이디(LED·발광다이오드) 조명에 온도·습도·이산화탄소 자동 제어 시설을 이용해 연중 24시간 식물을 키운다. 스마트팜 2개 가운데 하나에선 수확한 상추 등으로 샌드위치 등을 만들어 판매한다. 사전 신청을 하면 스마트팜 견학도 가능하다.

부산 연제구 동해선 거제해맞이역 1층에 자리한 스마트팜. 황태연 협동조합매일매일즐거워 대표가 재배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김광수 기자

모두 합쳐야 100㎡(30여평)에 불과한 스마트팜(2021년 1월 준공)에 근무하는 직원은 모두 16명이다. 정규직 직원 10명 가운데 5명은 지적 장애인은 아니지만 지능이 다소 낮아 소통에 애로가 있는 ‘느린 학습자’다. 느린 학습자들은 배달을 하거나 샌드위치 등을 만든다. 황 대표는 “느린 학습자는 장애인 등록이 되지 않아서 장애인 의무고용 기업에 채용되지 못하고 일반기업에도 취업하기 힘들다. 느린 학습자는 철도와 지하철을 이용하면 배달이 가능하기 때문에 부산도시철도 2호선 국제금융센터역에도 지난해 2월 스마트팜을 추가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느린 학습자들을 채용하기 위해 예비사회적기업을 만들었고 철도와 지하철 역사에 일부러 스마트팜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부산 연제구 동해선 거제해맞이역 1층에 자리한 스마트팜. 황태연 협동조합매일매일즐거워 대표가 이곳에서 자란 모종을 설명하고 있다. 김광수 기자

부산 남구~해운대구를 잇는 광안대교 아래 용호별빛공원에 위치한 컨테이너형 스마트팜(279㎡)은 놀리는 항만부지를 활용한 국내 최초의 식물공장이다. 예비사회적기업인 ㈜도시농사꾼이 지난달 냉동 컨테이너를 식물공장으로 변신시켜 문을 열었다. 냉동 컨테이너 2개에서 송이버섯 등을 키운다. 앞서 도시농사꾼은 지난해 5월 광안대교에서 지름 3㎞ 떨어진 아파트 단지 근처 국유지 자투리땅 242㎡에 냉동 컨테이너 스마트팜을 조성했다.

“일반 컨테이너는 온도와 변색에 취약하지만 냉동 컨테이너는 스테인리스강이어서 녹슬지 않고 스마트기기를 이용해 연중 일정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냉동 컨테이너형 스마트팜을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전정욱(41) 도시농사꾼 대표는 “컨테이너에 수직으로 논·밭을 4~5개까지 설치할 수 있고 한 달 간격으로 수확할 수 있어서 좁은 공간에서 많은 농작물을 생산할 수 있다. 판로만 확보되면 기후변화로 야기되는 식량 부족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도시농사꾼 스마트팜은 견학지로 인기를 끈다. 해마다 불꽃축제가 펼쳐지는 광안대교와 맞은편 센텀·마린시티를 보기 위해 용호별빛공원을 방문한 관광객들과 사전 예약한 유치원생·학생들이 주로 방문한다. 방문객들은 직접 수확을 해서 유상으로 가져가기도 한다.

부산 남구~해운대구를 잇는 광안대교 아래 부산 남구 용호별빛공원에 위치한 컨테이너형 스마트팜은 국내 최초 항만부지형 스마트팜이다. 김광수 기자

도시농사꾼은 청년 실업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직원 12명 모두가 정규직인데 20~30대가 7명이다. 지난해 6월 입사한 강병찬(24)씨는 “낮에 이곳에서 일하고 밤에는 대학에서 스마트팜 관련 수업을 듣는다. 이곳에서 경험을 쌓아서 나중에 스마트팜 회사를 만들 계획이다”고 말했다.

즐거워와 도시농사꾼 스마트팜은 공통점이 있다. 지역 공공기관이 출연한 사회적 연대기금인 ‘부산경제활성화지원기금’이 지원을 했다는 점이다. 기금은 수도권에 있는 본사를 부산으로 옮겨온 한국자산관리공사·한국주택금융공사·주택도시보증공사·한국예탁결제원이 2017년 지역산업 생태계 조성과 지역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돕자고 의기투합하면서 탄생했다. 이후 기술보증기금·부산도시공사·부산항만공사·한국남부발전·한국해양진흥공사가 차례로 합류하면서 기금의 규모를 키웠다. 이들 9개 공공기관은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동안 50억원을 모았다.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실무를 담당하는 간사를 맡았다.

부산 남구~해운대구를 잇는 광안대교 아래 남구 용호별빛공원에 위치한 컨테이너형 스마트팜은 고부가가치 송이버섯 등을 재배한다. 전정욱 대표가 저온성 표고버섯 은화고를 소개하고 있다. 김광수 기자

기금은 스타트업 무이자 대출과 무상 금융투자, 크라우드펀딩, 무료 경영컨설팅 등으로 쓰이다가 지원사업분야가 3년차인 2020년 스마트팜으로 확장됐다. 같은해 11월 스마트팜 시설비를 지원하는 사업가를 찾는 첫번째 공모를 했는데 거제해맞이역 스마트팜이 1호점이 됐다. 박창범 한국자산관리공사 고용성장지원부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스마트팜은 규모가 크지 않지만 적은 자본을 투자해 도심 유휴공간을 활용하고 상시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공모는 두 가지로 한다. 공공기관이 놀리고 있는 땅이나 건물을 저렴한 조건으로 빌려주는 ‘지정공모형’과 선정기업이 공간을 선택하는 ‘자유공모형’이다. 지정공모형에 선정되면 관련 법과 규정에 따라 공시지가의 1%를 임대료를 받는다. 일반 상업 목적의 임대료 5%에 견주면 5분의 1수준이다. 자유공모형은 비싼 임대료를 줘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원하는 곳에 식물공장을 설치할 수 있다.

심사를 거쳐 선정된 스마트팜은 시설 규모에 따라 5천만~1억원을 지원한다. 30㎡ 남짓한 공간의 컨테이너형 스마트팜 제조에 개당 4천~5천만원이 소요되는 점을 고려했고 다양한 계층·집단의 스마트팜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지난 5년 동안 기금 심사위원회는 취약계층 고용 확대와 사회적 이익을 공유하는 예비사회적기업에 주로 기회를 줬다. 이런 방식으로 지금까지 문을 연 스마트팜은 6곳이다. 곧 2곳이 더 문을 열면 지정·자유공모형 각 4곳 등 모두 8곳으로 늘어난다.

부산 남구~해운대구를 잇는 광안대교 아래 남구 용호별빛공원에 위치한 컨테이너형 스마트팜 직원들이 송이버섯 등을 재배하고 쓸모가 없어진 배지를 재활용하려는 곳에 보내기 위해 차량에 싣고 있다. 김광수 기자

서서히 성과도 나오고 있다. 황태연 즐거워 대표는 “지난달 1호점이 개점 2여년 만에 월 매출이 마이너스에서 벗어났다. 초기자본이 부족한 예비사회적기업은 한 푼도 아쉬운데 기금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직접 재배한 작물로 만든 샌드위치 등을 신속하게 고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철도와 지하철을 이용한 배달체계를 구축해서 2025년까지 매출을 50억원까지 달성하고 느린 학습자를 포함해 300여명의 직·간접 고용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도시농사꾼은 저온성 표고버섯(은화고)을 국내 유명 홈쇼핑과 이마트에 진출시킨 데 이어 수출에 나선다. 전정욱 대표는 “스페인과 아랍에미리트 등 3개국에 냉동 컨테이너형 스마트팜을 수출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우수한 한국의 스마트팜 기술을 앞세워 세계 스마트팜 시장 선점에 나서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부산경제활성화지원기금에 참여한 공공기관들은 스마트팜 등을 지원하기 위해 올해부터 5년 동안 70억원의 기금을 추가로 조성한다. 김양수 한국해양진흥공사 사장은 “도시농업인 스마트팜은 지역경제의 선순환과 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 등 이점이 많다. 지역 공공기관이 지역경제 활성화의 마중물 구실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부산/글·사진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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