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금융사고와 블랙박스

2023. 1. 11.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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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박스는 항공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과학자 데이비드 워런이 1956년 처음 설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행기록장치(FDR)와 조종석 녹음장치(CVR)로 구성되어 있고, 사고 전후 각각 25시간, 2시간 이상 기록을 저장할 수 있으며, 이름과 달리 사고 시 수색이 용이하도록 오렌지색 계통을 띠고 있다고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블랙박스는 자동차에 부착이 일반화되어 우리 일상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가 되었다.

금융에서도 사고가 발생한다. 경기침체, 금리 급등 등 경제 환경 변화로 금융회사가 파산하기도 하지만, 횡령, 배임과 같이 어처구니없는 기업 내부의 사고도 발생한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범법자의 적극적인 기만행위가 수반되는 경우가 있으나, 내부의 사전·사후노력에 따라 이를 잡아내는 경우가 늘고 있다. 지난해 금융권 전체가 충격에 휩싸인 상장기업과 은행의 대규모 횡령사고도 내부감사의 결과이다.

횡령, 회계부정과 같은 사고는 주인(principal)과 대리인(agent) 사이의 정보 비대칭 등으로 인해 발생하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보상 등 유인체계와 함께 감독과 견제수단이 필요하다고 한다. 특히 금융회사는 주주뿐 아니라 채권자인 수많은 예금자도 피해를 입을 수 있어 이를 예방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금융당국이 금융사고 사전예방을 위해 내부통제 체계를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개선을 요구하고 있는 이유다.

예금보험제도는 금융회사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보험금을 지급함으로써 예금자를 보호하는데, 그 임무 수행과정에서 예금 대지급뿐 아니라 금융사고를 유발한 금융회사는 물론 부실을 야기한 채무기업을 대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은닉재산도 회수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파산 금융회사의 블랙박스(회계장부와 내부서류 등)를 분석해서 사고 원인을 파악하고 책임소재를 밝히고 있다.

예금보험공사에서는 '예보 아카데미'를 개설하여 파산 관련 교육 프로그램과 자격제도를 운영해왔다. 올해는 변호사, 로스쿨 학생, 감독기구 직원 등에게 프로그램을 개방했는데, 많은 신청자들이 몰려 우리를 놀라게 했다.

앞으로는 금융회사와 차주기업의 내부통제 실패 등의 사례를 연구해 배임 및 횡령 방지와 내부통제 측면에서의 실무 교육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킬 예정이다.

예금보험공사에는 다양한 금융사고 현장이 생생히 기록된 금융회사와 기업의 자료가 축적되어 있는 만큼 이를 활용한 '예보 아카데미'가 금융회사 내부통제 개선 및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기를 기대해 본다.

[유재훈 예금보험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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