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주 지배력 강화에 활용하던 자사주… 금융 당국 ‘제동’

연선옥 기자 2023. 1. 11.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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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 “투자자 권익 보호 위해 자사주 제도 개선 방안 검토”

금융위원회가 자사주 제도 개선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라는 소식에 투자자는 물론 상장사의 관심도 제도 개선 작업에 쏠리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지배주주의 지배력을 높이는 데 자사주를 활용해 왔는데, 이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 기업 집단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고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더 큰 비용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10일 “일반 투자자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자사주 제도에 대한 개선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금융위는 제도를 어떻게 개선할지 구체적인 정책 방향은 결정되지는 않았다고 했지만, ‘일반 투자자 권익 보호’를 명시한 것으로 봤을 때 지배주주가 아니라 주주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자사주를 활용하는 데 정책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기업이 자사주를 활용하는 방안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지배주주의 지배력을 높이는 수단이고, 나머지 하나는 자사주 소각을 통해 전체 주주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미국에선 기업들이 자사주를 매입한 뒤 대부분 소각해 주주가치를 높이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국내 기업의 경우 자사주는 지배주주가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SK 본사. SK는 지난해 2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소각 계획을 발표했다./연합뉴스

대표적인 것이 인적분할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사주의 마법’과 기업 간 자사주 맞교환을 통한 백기사(白騎士·경영권 방어 과정에서 우호 지분) 확보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기업이 인적분할에 나설 경우에는 지배주주가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인적분할로 신설되는 회사는 기존 주주들이 지분율대로 신설법인의 주식을 나눠 갖기 때문에 존속법인은 자사주 지분율에 해당하는 신설회사의 지분을 자동으로 확보할 수 있다. 회사가 분할되면 법인격도 달라지기 때문에 의결권도 부활한다.

그동안 많은 대기업집단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자사주의 마법을 활용했다. 인적분할 방식으로 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별다른 자금 투입 없이 지배주주의 지배력을 키운 것이다. 과거 한화와 신세계가 그랬고 인적분할 절차를 마무리 중인 현대백화점그룹 역시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인적분할 방식을 활용했다.

이후 현물출자 방식의 유상증자를 하면 존속회사에 대한 지배력도 더 강화할 수도 있다. 국내 기업 관계자는 “자사주를 활용하는 것이 국내 기업에는 상당히 효과적인 경영권 방어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기업들은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를 다른 기업과 맞교환하는 방식도 자주 사용한다. 맞교환 방식으로 다른 기업에 자사주를 매각하면 의결권이 부활하기 때문에 우호 지분을 확보해 경영권을 방어하는 효과가 있다.

지난해 현대차는 KT와 7500억원 상당의 자사주를 맞교환하기로 했다. 두 기업 모두 미래 먹거리로 주목하고 있는 자율주행, 도심항공기 분야에서 협력을 공고히 하는 동시에 우호 지분을 확보하는 차원이다. 고려아연 역시 최근 한화, LG화학 등과 자사주를 맞교환하면서 대주주의 우호지분을 늘리고 있다.

하지만 금융 당국은 기업들이 자사주를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하는 관행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은 배당가능이익 한도에서 자사주를 취득할 수 있는데, 기업 자금으로 자사주를 취득하면서 그 혜택이 일부 대주주에 집중되는 것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기업이 자사주를 사들인 뒤 소각하지 않고 이를 보유하는 관행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한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사주의 자산성을 부인하고 자사주의 취득은 곧 소각을 의미하는 것이어야 경제적 실질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지배주주의 자사주 남용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며 “또 자사주 취득의 가장 일반적인 목표인 ‘저평가 신호’(signaling) 효과도 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은 미국 사례처럼 기업이 자사주를 소각해 모든 주주의 보유 지분 가치를 높이는 데 활용하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일부 국내 상장사도 주주 환원 정책으로 자사주 소각을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SK그룹 지주사인 SK㈜는 지난해 2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 계획을 발표했고, KB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는 지난해 각각 3000억원, 15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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