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사금융 구제책' 긴급생계비대출, 국회 예산심사서 '찬밥신세'였다

김나경 2023. 1. 11.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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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정쟁에 '뒷전' 밀린 긴급생계비대출 예산 증액
'표 되는' 지역구 사업 예산 챙기면서 서민금융예산엔 나몰라라
당초 계획보다 작은 1000억원으로 시작할 듯
당국 재원마련 방법 다각적 검토.. 일각선 "은행권 고통분담 안 돼"
12월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1회 국회(임시회) 제3차 본회의에서 2023년도 예산안에 대한 수정안이 재석 273인 찬성 251인 반대 4인 기권 18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2022.12.24. 뉴시스

[파이낸셜뉴스] 금리 부담에 서민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불법사금융으로 내몰리는 걸 막기 위해 최대 100만원 생계비를 대출해주는 '긴급생계비 대출'이 지난해 국회 예산심사에서 뒷전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핸드폰을 개통해서 넘기는 대가로 수십만원을 받는 '핸드폰깡'까지 성행하는 가운데 정작 국회에서 서민금융 지원을 위한 증액에 미온적이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여야 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 사업 예산은 수십억원씩 증액하면서 서민금융 예산에는 손 놓고 있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본예산 미반영된 긴급생계비대출... 與野 정쟁 '뒷전'
11일 파이낸셜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 심사에서 1000억 규모의 긴급생계비대출 예산안이 여야 정쟁에 밀려 중점 논의 안건에서 빠져 있었다. 예결위 고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서민금융 예산을 책정할 때 긴급생계비대출 증액을 논의한 기억이 없다"라며 "대통령실, 공공주택 예산 등으로 워낙 파행이 심한 데다 12월 2일(예산안 처리 법정시한)로 시한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걸 논의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한 예결위원도 "긴급생계비대출과 관련해서 증액 질의나 논의가 없었다"라며 "여야 원내대표 간 논의에서 있었을 수는 있는데 예결위에선 이야기가 없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집권여당·정부가 "불법사금융 구제책"으로 약속한 긴급생계비대출 논의가 여야 정쟁에 '찬밥신세'로 전락한 셈이다. 당정은 지난해 11월 6일 민생금융점검 협의회를 갖고 불법사금융으로 빠질 수 있는 취약계층을 위해 긴급생계비대출 제도를 만들기로 했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당시 브리핑에서 "휴대폰깡까지 급하게 쓰면서 사채시장으로 가야하는 분들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가 제도를 새로 만들어서 구제해야겠다고 해서 논의가 깊이 있게 진행됐다"라며 "당에서 정부에 신속하게 해달라고 주문했기 때문에 1개월 내에 제도를 선보이고 3금융권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한 바 있다.

하지만 여야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공공주택, 대통령실·경찰국 예산과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등이 최대 쟁점이 되면서 원내대표와 여야 정책위의장, 예결위 간사가 참여하는 '3+3협의체'에서도 긴급생계비대출 예산은 주요 안건으로는 다뤄지지 않았다. 3+3협의체에 속한 한 의원은 통화에서 "여당측이 크게 요청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다만 최저신용자의 대출한도를 높여주기 위한 특례보증 예산(280억원), 전월세 세입자를 위한 대환대출 예산(140억원)을 증액했다"라고 했다.

불법사금융 구체책 예산 증액에 소극적이었던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지역구 예산은 속속 챙겼다. 여당 지도부는 지역구 예산을 정부안과 비교해 300억원 이상 증액했으며, 야당에서도 예결위 핵심 인사들과 원내지도부 의원들이 수십억원대 지역구 예산을 증액 편성한 것으로 나타나 비판이 일었다.

은행에 고통분담하나...당국, 재원마련방안 검토 중
이런 상황에 긴급생계비대출 규모도 당초 계획보다 줄어든 1000억원으로 책정될 것으로 보인다. 당국에서는 당초 1조 2000억원까지 규모를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예산 미반영으로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자금 마련은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지만 출시 전까지는 (1000억원 규모를) 마련할 방법이 있다"라고 밝혔다. 서민금융진흥원의 국민행복기금을 활용하는 방안, 은행연합회를 통해 자금을 출자하는 방안 등도 거론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긴급생계비대출이 성공하면 내년 본예산에 편성, 확대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 예산 미반영으로 은행권에 고통분담을 또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 정무위원은 통화에서 "은행연합회를 통해 은행들에 자금출자를 할당하는 건 관치"라며 "정부가 근거도 없이 은행에 정책적으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윤영덕 민주당 의원이 지적한 '내구제 대출', 지난해 8월 수원 세 모녀 사건을 비롯해 서민·취약계층을 위한 정책금융 필요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앞선 긴급 자금지원 정책도 효과적인 수단이었다는 평가다. 60세 이상 연금수급자를 대상으로 한 노후긴급자금(실버론)은 대출금액의 75%가 전월세 보증금을 충당하는 데 쓰이는 등 생계비에 실질적으로 쓰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특수고용직 노동자 등을 위한 코로나19 긴급 고용안정지원금은 서버 접속에 차질을 빚을 정도로 신청자가 몰렸었다. 개인 대출규제에 막힌 서민들이 법정최고금리 20%에 육박하는 현금서비스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긴급생계비대출 또한 신청자가 몰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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